이재명 ‘비례’ 출마로 선회할 듯…한동훈, 용산·종로 ‘상징성’ 잡는다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5 10:0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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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격전지 분석…‘정치 1번지’ 종로, ‘권력 산실’ 용산, ‘입법권력’ 영등포
與 김무성·이인제·최경환, 野 박지원·천정배·정동영 등 ‘올드보이’의 귀환

이제 정치의 시간이다. 내년 4·10 총선의 개막을 알리는 예비후보자 등록이 12월12일 시작되면서 여야 주요 인사들의 움직임도 본격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총선 시계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여야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 ‘필승 카드’도 속속 꺼내놓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와 중도 확장력이 큰 거물급 인사(인물)들과 함께 꼭 차지해야 하는 승부처(지역)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거대 양당은 지금 모두 121석이 걸린 수도권(서울 49석, 경기 59석, 인천 13석)이 총선의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판단 아래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여야는 대표적인 스윙보터 지역인 서울이 핵심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계산 아래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과 ‘한강벨트(한강 인접 8개 구)’ 등 주요 거점 지역의 판세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여야 모두에서 최근 새롭게 감지되는 승부처도 있다. 양당은 ‘정치 1번지’ 종로, ‘권력의 산실’ 용산, ‘입법권력’ 국회가 위치한 영등포 등 상징성이 큰 세 축이 서울 승부의 전체 판세를 좌우할 수 있다는 계산 아래 공을 들이고 있다. 이에 여야는 격전지로 떠오른 세 축을 기준점으로 누구를 내보낼지 ‘선수 배치’에도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부터)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부터) ⓒ시사저널 박은숙

‘선거 이끌 조커’ 한동훈, ‘용산·종로·비례’ 검토

여당에서 지금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인물은 단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분위기 반전을 이끌 대중적 인지도와 확장성을 가진 인물로 제일 먼저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은 ‘서울 49곳의 지역구 중 우세한 지역이 6곳에 불과하다’는 내부 분석까지 나와 암울한 상황이다.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유일하게 맞대결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 한 장관이 구원투수로 등판해야만 지지율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한 것이다.

그래서 한 장관의 출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직자 사퇴 시한(2024년 1월11일)을 며칠 앞둔 연말연초에 거취를 밝힐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지역구 중 한 곳은 서울 용산이다.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의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이끌고 호소하는 데 잘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 한 장관이 용산에 출마한다면, 현역 의원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과는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여권에서는 권 의원이 정부 요직이나 윤 대통령 곁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도 점친다.

한 장관을 둘러싼 관심은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총선을 이끌 여당의 간판으로서 전면에 나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한 장관은 지난 11월말 ‘이준석 신당’의 여파가 여권을 집어삼키는 위기 상황에 대구 방문 등 광폭 행보를 보이며 순식간에 이 전 대표에게 쏠렸던 스포트라이트를 뺏어온 바 있다.

국민의힘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한 장관이 당의 얼굴이 되어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여권 전체의 공감대가 크다”며 “비대위원장, 선대위원장, 공관위원장 등 다양한 위치에 대한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12월13일 김기현 체제가 붕괴되자 당장 여권에서는 ‘한동훈 비대위’ 카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총선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키 플레이어’다. 원 장관은 일찌감치 이재명 대표의 지역구이자 보수정당의 대표적 험지인 인천 계양을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존재감을 드러냈다. 혁신위원회의 험지 출마 요구에 꿈쩍도 않던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과 차별화된 행보여서 더 주목받았다. 인천 계양을은 2010년 보궐선거 한 번 외엔 줄곧 민주당 계열 후보가 당선된 지역이다.

 

이재명, ‘병립형 회귀-비례 출마’ 카드 만지작

그렇다면 과연 계양을에서 ‘이재명 대 원희룡’이라는 빅매치를 보게 될까. 최근 여의도에서는 새로운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이 대표는 계양을 출마 혹은 다른 험지 지역구 출마보다는 비례대표 후순위로 출마해 전국 유세를 자유롭게 펼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총선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이낙연 민주당 후보에게 발이 묶였던 상황을 재현하지 않겠다는 속내도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판단에는 선거제 개편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여야는 내년 총선의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지난 4월10일)을 8개월이나 넘긴 지금까지도 선거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원내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아직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선출을 지난 총선에서 실시했던 준연동형과 20대 총선까지의 방식인 병립형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불출마를 선언한 이탄희 의원 등 비명계 의원들이 연동형 비례제 사수를 거듭 주장하고 있지만 최근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는 ‘현실론’이라는 명분 아래 병립형 비례제로의 회귀로 가닥을 잡고 있다.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는 ‘병립형으로 가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현실론’에 상당히 마음이 기운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원심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친명계로 재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비례대표 공천을 다수 할 수 있는 병립형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병립형일 때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더 많이 배출한다. 시사저널이 12월11~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일이 총선이라면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하겠냐’는 질의에 민주당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45.9%, 국민의힘 36.7%, 정의당 2.3%, 기타 정당 10.6%, 잘 모름 4.5%였다. 이 수치를 병립형 비례제에 대입하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비례대표 22석, 국민의힘 17석, 정의당 1석, 기타 정당이 7석을 얻게 된다. 즉 친명계 인사들을 비례대표에 전진 배치하고 자신은 후순위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리고 전국 유세로 선거를 진두지휘한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양당은 정치 1번지 종로에도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종로는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가 위치했다는 점에서 정치 1번지의 상징성을 지녀왔다. 대통령실이 종로에서 용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징성이 퇴색했음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역사가 있기에 양당은 물론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은 모두 종로를 주목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 주요 정치인들의 종로 출마설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하태경 의원이 지난 10월 3선을 한 부산 해운대갑 지역구를 떠나 종로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종로 현역으로 있는 최재형 의원도 지역구 사수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한동훈 장관의 등판설도 계속 거론된다. 민주당에서는 21대 총선 때 종로에서 당선된 바 있는 이낙연 전 대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출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두 인물 모두 중량급 인사라 실제 종로에 출마한다면 단숨에 종로는 내년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종로의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곽상언 변호사도 거물급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곽상언 변호사(왼쪽부터) ⓒ시사저널 이종현, 뉴시스

검사장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친구인 석동현은 불출마 가닥

‘입법권력’ 국회가 위치한 영등포도 전체 승부를 좌우할 승부처로 꼽힌다. 영등포의 판세가 인근 구로, 양천, 동작 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공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감독원장은 기업·금융범죄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에 그를 보좌하며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국정농단 사건 등을 수사했다.

이번 총선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인적 쇄신’으로 표현되는 물갈이와 ‘올드보이의 귀환’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치 베테랑들의 연이은 출마 선언이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가장 주목받고 있는 보수 텃밭인 대구와 부산 지역에서 대규모 물갈이가 있을지 여부가 관심거리다. TK(대구·경북)에서조차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하락하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내년 총선에서 ‘영남 싹쓸이’를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당 창당을 시사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현역 의원 ‘물갈이론’을 부각하며 자신의 출마 가능성까지 내비치는 등 대구에서 본격적인 세 결집에 나섰다. 당내 중진 및 친윤(친윤석열) 의원의 용퇴론이 거세지는 것 역시 민주당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산에서 국민의힘은 지역구 18석 전석 석권을 목표로, 민주당은 절반인 9석 확보를 목표로 예비후보 등록을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사상과 중·영도, 부산진을 등에 가장 많은 예비후보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사상의 맹주 격이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서태경 전 청와대 행정관과 신상해 전 부산시의회 의장 등 야권 예비후보만 등록을 마쳤고, 여권 예비후보는 아직 없는 상태다. 하태경 의원(해운대갑)이 일찌감치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한 것을 두고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검사장 출신인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출마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지만, 석 처장은 불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 출신 출마를 부담스러워하는 여권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올드맨’들의 귀환도 관심사다. 20대 총선을 끝으로 여의도를 떠난 김무성 전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19·20대 의원 시절 자신의 지역구이던 부산 중·영도 출마를 권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인제 전 의원도 정치권 복귀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12월12일 자신의 옛 지역구인 충남 논산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도 경북 경산시에서 내년 4·10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경산시에서 17대 국회부터 4선을 연이어 한 최 전 부총리는 지역에 거주하며 지역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당적은 없는 상태다.

민주당에선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고향인 전남 해남·완도·진도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5선에 도전한다. 목포에서 3선을 한 그는 이번에 옆 지역구로 옮긴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자신이 4선을 한 전북 전주 출마를 시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전 장관도 자신이 재선을 한 광주 서구을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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