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희생론’에 호응한 장제원·김기현…다음 차례는 김대기 비서실장?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5 12:05
  • 호수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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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패색 여전한 집권 세력…진짜 책임은 대통령실이 져야 한다는 여론 확산
비대위 전환하는 與, 위원장에 김한길·한동훈·원희룡·인요한·안철수 등 거론

일패도지(一敗塗地), 절망적 위기로 치닫던 집권 세력에 반전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장제원 의원, 김기현 대표 등 이른바 인적 혁신의 걸림돌이 치워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건 첫 단추일 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집권 세력을 구성하는 당·정·대 가운데 당 지도체제가 바뀌고 있을 뿐 정(정부)과 대(대통령실)의 인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설익은 밥상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에선 한덕수 총리, 대통령실에선 김대기 비서실장에게 국정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서도 두 사람 가운데 한 명 정도는 인책될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집권 세력이 고른 당·정·대 쇄신으로 대반전의 계기를 잡을 것인지, 또 멈칫거리다 헤어날 수 없는 패배의 늪으로 다시 빠져들지 연말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안별로 하나씩 짚어보자.

2022년 12월 친윤계 의원 모임인 국민공감에서 마주친 김기현 전 대표(왼쪽)와 장제원 의원 ⓒ시사저널 박은숙
2022년 12월 친윤계 의원 모임인 국민공감에서 마주친 김기현 전 대표(왼쪽)와 장제원 의원 ⓒ시사저널 박은숙

① ‘윤심’은 김기현에 울산 불출마까지 요구

“저는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대표직을 내려놓습니다. 지난 9개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신(新)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정상화와 국민의힘, 나아가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을 안고 진심을 다해 일했지만,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소임을 내려놓게 되어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2월13일 사퇴하면서 남긴 말이다. 올 초 3·8 전당대회에서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에 힘입어 당대표로 선출된 지 9개월 만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물러남에도 역시 윤심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 결심 전 30시간은 침묵과 잠행의 시간이었다. 12월12일 친윤(親윤석열)계 핵심으로 김-장 연대를 함께 이뤘던 장제원 의원의 총선 불출마가 김 전 대표를 압박했다. 김 전 대표는 연탄 나눔 봉사활동과 정책 의원총회 등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비서실장인 구자근 의원 등 일부 측근의 의견을 청취했다고 한다.

 

이준석과 만난 데 대해 한때 ‘반란 조짐인가’ 우려하기도

용산 대통령실은 김기현 대표가 지역 사람들에게 “울산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리에 긴장했다. 게다가 그가 잠적 중이던 12월13일 오전 이준석 전 대표와 회동했다는 사실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김기현의 반란 조짐은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그날 오후 김기현 대표의 전격 사퇴 선언문이 나오고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음을 확인한 후 용산은 비로소 안도했다.

김 대표는 552자의 짧은 사퇴 입장문을 SNS에 올렸을 뿐 직접 마이크 앞에 서진 않았다. 용산의 요구엔 따르겠지만 그리 흔쾌한 결단은 아니라는 분위기가 읽혔다. 그는 이준석 전 대표와 만난 것과 관련해 “제가 이준석의 신당에 참여하는 것 아니냐는 낭설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오히려 저는 신당 창당을 만류했다”는 글을 추가로 올리기도 했다. 김기현-이준석 회동에 대해 둘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날개 돋친 듯 떠돌았기 때문이다. 실제 둘의 만남 사실을 밝힌 것도, 그 자리에서 “김기현 대표의 거취를 많이 얘기했다”는 내용을 공개한 것도 이준석 전 대표였다. 김 대표의 사퇴에 진정성이 있느냐, 사퇴하는 판에 너무 부적절한 만남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게 무리는 아니었다. 김 전 대표가 두 번에 걸쳐 ‘반란의 뜻이 없다’는 메시지를 내놔야 했던 긴박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용산과의 관계에서 여전히 남은 뇌관은 있다. 김기현 전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울산 출마 여부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용산 쪽 사정을 아는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표직 사퇴는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김 전 대표는 희생도 보여야 한다. 희생은 울산 지역구 출마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윤 대통령의 뜻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엑스포 유치 실패 등 국정 실패 책임론이 제기되는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왼쪽 사진)과 한덕수 국무총리 ⓒ시사저널 임준선·박은숙

② 김대기·한덕수는 무풍지대냐

과정이야 어떻든 김기현 전 대표가 당권을 내려놓고 물러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빠르게 재편될 것 같다. 이와 함께 당내에 대통령실과 정부를 향한 불편한 기류가 감돌고 있어 주목된다. 왜 책임과 희생을 국민의힘만 짊어져야 하느냐는 반발이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무풍지대냐는 항변이다. 책임과 희생의 다음 차례는 용산 대통령실과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표적은 구체적으로 김대기 비서실장과 한덕수 국무총리 두 사람이다. 대통령실에 대한 비판적 기류는 비단 김기현 전 대표 주변에서만 감지되는 것이 아니다.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있을 뿐 여당 안팎에서 광범위하게 분출하고 있다. 사실 거의 모든 여론조사는 일관되게 윤 대통령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의 책임과 희생 문제는 그다음 얘기였다.

실제로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는 물론 엑스포 유치 실패 등 연전연패 국정 실패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희생하는 이가 용산과 정부에선 없었다. 당 지도부에만 정치적 인책이 가혹하게 휘몰아쳤다.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는 “최근 대통령실 참모 교체나 6개 부처 중폭 개각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선거용 개편, 총선 진용 짜기 개각으로 인식하지 국정 실패에 대한 반성과 책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당직자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김태우 후보를 낸 것이나 엑스포 유치에 국정 에너지를 집중한 것은 결국 윤 대통령이었다는 점을 거론했다. 특히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정보 실패는 치명적이었으며 이 부분은 김대기 실장이, 1년간 쏟았던 총체적 국력 소모는 한덕수 총리가 각각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사과는 적절했지만 인적 문책이 없어 국민 눈높이엔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 특검법안에 휘발유 뿌린 격”

다른 핵심 당직자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수백만원짜리 디올백 선물 수수 사건에 대해서도 반드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권자의 관심과 야당의 공격 표적은 부적절한 처신을 한 김 여사에게 꽂혀 있다. 대명천지에 당의 인적 쇄신만으로 ‘김건희 스캔들’이 잦아들 것 같은가. 12월 하순 민주당이 통과를 벼르고 있는 김건희 특검법안에 휘발유를 뿌린 격이다”고 탄식했다. 그는 일단 김 여사 스스로 대국민 사과 등의 조치를 취해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 인적 책임 조치가 따라야 할 텐데 결국 김대기 비서실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였다.

한편 대통령실과 내각의 사람들이 무더기로 총선 출마 대열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적지 않다. 국민의힘 소속 한 전직 의원은 “당에는 지역까지 버리라며 희생을 요구하면서 용산 참모들은 줄줄이 출마하겠다는 건 내로남불 아닌가. 왜 모든 책임을 당만 혼자 뒤집어써야 하나”라고 했다. 이런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안’ 등이 처리될 때 반란표가 나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③ 인요한은 실패하지 않았다

혁신위를 이끌었던 인요한 전 위원장은 한때 중진과 지도부의 험지 출마 등 요구를 당사자들이 거부하면서 ‘실패한 이상주의자’로 추락했었다. 그러나 윤심이 최종적으로 장제원 의원과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였음이 확인되면서 인 전 위원장은 거름 역할을 했고, 절반의 혁신은 그 이상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12월8일 윤 대통령이 당시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대통령실로 함께 불러 3자 오찬을 한 것이다. 주류 및 기득권 희생을 요구한 혁신위를 지도부가 냉담하게 거부하면서 혁신위의 조기 해산이 결정된 이후의 일이었다. 윤 대통령은 ‘혁신위의 성공은 50%’라는 인 위원장의 발언을 언급하며 “혁신위가 큰 역할을 했다. 미진한 부분은 당이 잘 반영해 완성하면 100%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발언으로 윤심은 그 후 일련의 사태에서 드러나듯 김 전 대표에 대해 인 전 위원장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재평가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 들어설 당 비상대책위 위원장 후보로 인 전 위원장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 다음 날인 12월14일, 윤재옥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 주관으로 최고위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지도체제 전환을 결의했다. 윤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의 스펙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고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분, 총선 승리라는 지상과제를 달성할 능력과 실력이 있는 분이라는 기준으로 물색해 보겠다”고 밝혔다. 윤 원내대표의 선택엔 당연히 윤심이 작용할 것이다.

국민의힘과 용산 대통령실 안팎에선 윤 대통령이 가장 자주 연락하는 사람 중 한 명인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유력한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한다. 다만 김 위원장 측은 통화에서 “제안받은 바도 없고 정해진 바도 없다”고 했다. 역시 윤 대통령의 멘토 격으로 잘 알려진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도 후보감이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 간판급 주자로 부상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비대위원장 후보군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총선 승부가 수도권에서 결판난다는 점에서 수도권 중진인 안철수(경기 분당갑)·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을) 의원의 이름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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