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낙서 테러’ 누가 사주했나…“SNS 의뢰, 10만원 받아”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0 18: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대 男女 피의자, 온라인 통해 지시·돈 받았다 진술
배후 실체 확인 및 추적…구속영장 신청 여부 검토
12월16일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담장에 스프레이로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표시한 낙서테러가 발생했다. 문화재청은 담장 훼손 현장에 임시 가림막을 설치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훼손 현장을 보존처리 약품을 이용해 세척하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16일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담장에 스프레이로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표시한 낙서테러가 발생했다. 문화재청은 담장 훼손 현장에 임시 가림막을 설치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훼손 현장을 보존처리 약품을 이용해 세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복궁 담벼락에 '스프레이 낙서 테러'를 벌인 10대 피의자들이 범행을 지시한 '제3의 인물'이 있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돈을 건네고 담벼락 훼손을 지시한 인물을 추적 중이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재물손괴 혐의로 체포된 임아무개(17)군과 김아무개(16)양은 이날 경찰 조사에서 사주를 받고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고 주장했다.

임군과 김양은 "SNS를 통해 불상자로부터 '불법영상 공유사이트 낙서를 하면 돈을 주겠다'는 의뢰를 받고 그 사람이 지정한 장소에 지정한 문구를 스프레이로 기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실제로 피의자들은 지난 16일 새벽 1시42분께 인적이 없는 틈을 노려 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영화공짜' 문구와 함께 '○○○티비', '△△' 등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적었다.

두 피의자는 의뢰자로부터 총 10만원을 두 차례에 걸쳐 나눠 받았다고 한다. 범행 도구인 스프레이는 피의자들이 직접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들의 SNS 접속·대화 기록 등을 분석해 배후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확인한 후 추적에 나설 방침이다. 담벼락에 적힌 불법 공유 사이트 측은 이번 사건과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복궁 담장을 스프레이로 낙서해 훼손하고 도주한 10대 피의자 2명이 범행 사흘 만인 12월19일 경찰에 붙잡혀 서울 종로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경복궁 담장을 스프레이로 낙서해 훼손하고 도주한 10대 피의자 2명이 범행 사흘 만인 12월19일 경찰에 붙잡혀 서울 종로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연인 관계인 10대 피의자들은 전날 저녁 경기도 수원에서 각각 체포돼 오후 9시30분께 서울 종로서로 압송됐으며, 체포 직후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은 미성년자임을 고려해 부모 입회 하에 이날 오후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체포영장 시한(48시간) 만료 전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문화재 훼손 행위를 중대범죄로 엄정하게 처벌하겠다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피의자들의 연령과 진술 내용, 도주·증거인멸 우려, 형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모방범행'을 저지른 후 자수한 20대 남성 A씨는 지난 18일 조사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문화재에 낙서를 하는 행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경복궁 두번째 낙서 피의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의 일부 ⓒ연합뉴스
경복궁 두번째 낙서 피의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의 일부 ⓒ연합뉴스

A씨는 경복궁 담장이 첫 낙서로 훼손된 다음날인 17일 오후 10시20분께 경복궁 영추문 왼쪽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특정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 등을 쓴 혐의로 입건됐다. 그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튿날 오전 11시45분께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

A씨는 특정 가수와 앨범 제목을 적은 이유에 대해선 "팬심 때문이고 홍보 목적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조사를 받고 귀가한 A씨는 이날 오전 자신의 블로그에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며 "죄송합니다. 아니 안죄송해요. 전 예술을 한 것 뿐이에요"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미스치프'는 2019년 결성된 미국 아티스트 그룹이다.

A씨는 "다들 너무 심각하게 상황을 보는 것 같다"며 "그저 낙서일 뿐이다. 숭례문을 불태운 사건을 언급하면서 끔찍한 사람으로 보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A씨는 17일 범행 직후에도 '인증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등 반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낙서 범행에 앞서 전시회 예술품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달 19일 서울 대림미술관 미스치프 전시회에서 전시된 모자를 훔쳐 달아나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훔친 모자를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렸고 범행 과정 등을 자신의 블로그에 후기로 남기기도 했다.

경찰은 조만간 A씨를 다시 불러 범행 동기 등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