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째 ‘38선’ 못 넘긴 이재명 리더십, 시험대에 서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2 14:05
  • 호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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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과의 만남 의도적으로 피하는 모습…송영길 구속에 ‘무너진 도덕성’
민주당 지지율, 지난해 10월 38% 찍은 이후 30%대 초반 정체

‘이재명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섰다. 위기는 복합적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래된 정치 격언이 있는데,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은 ‘부패’와 ‘분열’이라는 악재에 동시에 노출돼 있다. ‘도덕적 우위’를 정치적 자산으로 내세워왔던 제1야당은 이제 도덕불감증을 넘어 ‘도덕적 파산’ 상태에 내몰려 있다. 분열 양상도 심각하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에는 ‘더불어’가 없다. 배타적 팬덤은 배타적 언어를 낳았고, 민주당의 ‘민주’라는 제1의 가치마저 뒤흔들고 있다. 그렇게 이재명 대표와 지난 대선에서 경쟁했던 이낙연 전 대표는 탈당을 시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김부겸 전 총리가 12월18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 VIP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재명의 민주당, ‘부패와 분열’ 복합 위기 빠져

강령에 ‘모든 공직자의 부정부패 엄단’을 명시한 민주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힌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직전 당대표다.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뿌려진 ‘돈봉투’의 최종 수혜자로 지목됐던 송영길 전 대표는 12월18일 밤 구속됐다. 혐의 내용은 간단하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송 전 대표가 불법 정치자금 6600여만원을 받은 후, 이를 300만원씩 나눠 현역 의원 20여 명에게 전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중간 전달책으로 구속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윤관석 의원은 법정에서 실제 돈봉투가 의원들에게 전달된 사실을 인정했다.

정치에서는 이슈보다 이슈를 다루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큰 악재도 제대로 대응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지만, 국민 눈높이에서 벗어난 방식을 택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실체적 진실은 재판에서 최종 확인되겠지만, 정당의 최대 행사인 전당대회와 관련해 소속 의원 20여 명이 돈봉투 의혹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당 전체의 도덕성이 뒤흔들리는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12월19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어떤 발언도 나오지 않았다.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송 전 대표가 “탈당한 개인”이라며 “당 공식 입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앞서 ‘코인 투기’ 의혹이 불거진 김남국 의원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를 한다고 하더니 김 의원이 탈당하자 이후 ‘모르쇠’ 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그런데 이번에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민주당의 분열 양상도 심상치 않다. 이낙연 전 대표는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3총리(이낙연·정세균·김부겸)가 이재명 대표를 포위하려 했던 이 전 대표의 전략은 이재명 대표가 거꾸로 정세균·김부겸 전 총리와의 만남을 성사시키며 일단 무산됐지만, 이 전 대표는 ‘연말까지’라는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하며 하루에 1%포인트씩 신당 가능성을 높이며 이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실무적으론 신당 준비에 이미 착수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 전 대표의 탈당이 현실화한다면 민주당에는 그 자체로 악재일 수밖에 없다. 정치는 지지 기반을 넓히면 이기고 좁히면 진다. 100명이 넘는 의원이 이낙연 신당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당장은 이낙연 신당에 대한 부정 여론이 높지만, 향후 그 여파는 지금의 예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와 민주당 대표를 지냈고, 이재명 대표와 치열한 대선 경선을 치른 이 전 대표의 탈당은 2015년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 이후 가장 큰 분열”이라면서 “지금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갈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와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당내 친명 의원을 대거 동원해 ‘이낙연 신당’에 대한 부정 여론을 키우는 동시에, 자신은 이 전 대표를 외면하며 ‘신당 김 빼기’ 전략을 펼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의 이런 모습을 두고 소탐대실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재선 의원은 “이 전 대표에게 회군의 명분을 일정하게 주고, 자연스럽게 총선 과정에서 역할도 맡기고 하는 모습을 취했다면 정치에서 중요한 대의와 명분 모두 이 대표가 취하게 됐을 것”이라면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백기 투항’ 하라는 식으로 대하니 설사 회군을 하더라도 플러스 효과는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작은 정치”(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양향자 한국의희망 당대표가 11월28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연대와 공생’ 주최 ‘대한민국, 위기를 넘어 새로운 길로’ 학술포럼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尹 싫지만, 민주당이 대안도 아냐” 여론 냉랭

민주당에 닥친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당장 여권과의 쇄신 경쟁에서도 뒤처지고 있다. ‘윤핵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김기현 대표 사퇴, 비상대책위원회 전환까지 속전속결 변화가 여당에선 이어지고 있는데 민주당은 ‘쇄신 무풍지대’라고 할 만큼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친명(親이재명)계 의원 지역구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비명(非이재명)계 인사들이 당 예비후보 심사에서 줄줄이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공천을 둘러싼 내홍이 극심해지는 양상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매서운 정권 심판’ 여론에도 민주당이 그 반사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년 총선 전망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 심판론’은 ‘정권 지원론’을 압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도 좀처럼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민주당 역시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에 갇혀 반사이익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에 이어 최근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 등 여권에 악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실제 시사저널이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대표로 취임(작년 8월28일)한 이후의 여론조사 추이를 분석해 보니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민주당은 1년 넘게 정당 지지율이 38%를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작년 10월 2주 차에 38% 지지율을 기록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같은 수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올해 4월 4주 차에 37%를 찍은 이후에는 한 번도 35%를 넘어서지 못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친명계 원외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가 12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이낙연 전 대표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결과는 지금의 여론이 “윤석열 대통령은 싫지만 민주당을 대안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냉랭한 민심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내년 총선 전망을 두고 낙관론이 팽배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권 심판론이 거센 만큼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압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상당한 것이다. 당내 일각에선 ‘강서 압승’이 역설적으로 독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보궐선거 승리 이후 쇄신 동력이 떨어졌고, 민생과 경제에서 민주당만의 의제를 설정하는 대신 윤석열 정부의 실정 비판에만 당력을 집중했다는 비판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지금 민주당은 여론이 요구하는 쇄신과 개혁은 외면한 채 공천에만 목을 매고 계파 갈등만 벌이고 있다”면서 “야당이 기댈 데는 국민밖에 없는데, 혁신이 없다면 매서운 심판론은 언제든 민주당을 향할 수 있다. 우린 국민에게 ‘왜 민주당을 찍어야 하는가’라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180석 갖고 뭘 했다고 또 표를 달라고 하나’라는 질문에는 차마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말로만 위기를 말하고 실제로는 위기감이 없는 게 민주당과 이 대표가 초래한 진짜 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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