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시설” vs “골칫거리” 찬반 논쟁 속…광주시, ‘오페라하우스’ 건립 속도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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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2000석 규모 개관…기본계획 수립 등 용역 착수
다목적 공연장으론 시민 고급문화 향유 ‘제한적’ 
‘소프트웨어·재원 확보·관람 수요’ 충분한지 의문

광주시가 국제적 수준의 전문 예술극장인 가칭 ‘오페라하우스’ 건립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전문 예술극장 건립을 두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필수시설이라는 광주시의 입장과 공연 수요 등 현실을 무시한 전형적인 예산 낭비사례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시민문화단체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광주시는 상급 뮤지컬, 오페라 등을 즐기기 어려운 지역 실정을 고려해서 오페라하우스 건립 추진에 발벗고 나섰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가 고급문화 소외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지 주목된다. 그러나 천문학적 재원 확보와 함께 “기존 문화예술회관 운영도 신통치 않은데 잘 될지 의문”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아 산 넘어 산이다. 

광주시가 국제적 수준의 전문 예술극장인 가칭 ‘오페라하우스’ 건립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전문 예술극장 건립을 두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필수시설이라는 광주시의 입장과 공연 수요 등 현실을 무시한 전형적인 예산 낭비사례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시민문화단체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광주시가 국제적 수준의 전문 예술극장인 가칭 ‘오페라하우스’ 건립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전문 예술극장 건립을 두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필수시설이라는 광주시의 입장과 공연 수요 등 현실을 무시한 전형적인 예산 낭비사례로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시민문화단체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상징적 시설”

광주시는 특정 장르 전문공연을 선호하는 문화적 수요에 맞춰 국비 1500억원, 시비 1500억원 등 3000억원을 들여 오페라 하우스 건립을 추진 중이다. 2028년까지 부지면적 5만㎡, 연면적 5만㎡에 1500석~2000석 대공연장과 400석의 소공연장 등을 갖춘 전문 예술극장을 개관하는 게 목표다. 서울의 K-컬처, 대구의 문화예술 허브와 더불어 광주에 공연관광 허브를 조성해 문화허브 트라이앵글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다목적 공연장과 달리 전문 예술극장은 오페라, 뮤지컬 등 문화예술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차별화된 공연장이다.

시는 찬반 논쟁 속에 건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전문 예술극장 건립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분석 등 수행 기관을 선정했다. 용역 기관은 내년 1월부터 1년 동안 부지 선정, 총사업비, 규모 등 연구 결과를 광주시에 제공한다. 조사과정에서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 사업 구상 단계부터 지역 여론과 시민의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국가재정법 등에 따른 타당성을 확보해 국비를 유치하려면 규모, 운영 계획 등을 세밀히 검토해 비용 대비 편익을 분석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광주시는 설명했다. 기본 계획은 국제적 수준의 공연 예술을 무대에 올리고, 평상시에는 시민이 누리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운영 전략을 담게 된다.

(가칭) 광주오페라하우스 배치도 ⓒ광주시
(가칭) 광주오페라하우스 배치도 ⓒ광주시

전문 공연장 소외지역…전국투어서 제외 ‘일쑤’ 

시는 그동안 대형 공연시설이 부족해 시민들의 고급 공연문화 향유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입장이다. 대부분 공연장이 다목적, 소규모인 지역 여건 탓에 세계적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 투어 일정에서 빠지는 등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가 제한됐다고 광주시는 건립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기존 문화예술회관은 290억여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마치고 다음 달 ‘예술의 전당’으로 새롭게 개관한다. 무대, 음향, 관람석 등을 대폭 개선했으나 전문 공연장이 아닌 다목적 시설이어서 정상급 오페라 등을 소화하기에는 여건이 여의찮다는 것이다. 실제 ‘오페라의 유령’ 제작사가 지난 3월 기술적인 검토를 했지만, 결국 공연은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광주시의 문화 공연시설 보유현황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아시아 최대 복합문화기관으로 꼽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1000여석의 대극장이 있지만 객석과 무대 구분이 없는 블랙박스형 극장으로 전문공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두원 광주시 문화기반조성과장은 “문예회관의 낡은 시설을 뜯어고치고 공연 장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꿨지만 공연장 갯수 자체가 부족하고 세계적 뮤지컬과 오페라를 유치할만한 시설은 전혀 없는 게 문화도시 광주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광주지역 예술인들의 오페라 등 공연 참여 기회, 인재 육성 등의 확대와 소규모 오페라 축제 개최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광주시의 설명이다. 특히 창작공연 제작을 위한 예술가들의 교류·협업은 물론 공연예술계 진출을 원하는 미래 예술인 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플랫폼 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기대감이다. 

광주시는 건립 후보지로 당초 2022년 사들인 옛 신양파크호텔 부지를 염두에 뒀으나 협소한데다 민간으로부터 매입한 땅에 대규모 공연 시설을 짓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여론에 따라 국립광주박물관 인근 시유지 등 2~3곳을 후보지로 물색하고 있다.

부산항 북항에 건립 중인 '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부산시
부산항 북항에 건립 중인 '부산오페라하우스' 조감도 ⓒ부산시

전국 지자체, 앞다퉈 ‘오페라하우스’ 건립

전국의 지자체들도 앞 다퉈 다목적보다는 특정 분야 전문 공연장 건립을 선호하는 추세다. 부산시는 오는 2025년과 2026년 각각 개관을 목표로 부산국제아트센터와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강원도와 원주시도 오는 2032년 4월 개관을 목표로 원주시 반곡동 옛 종축장 부지 일원(2만㎡)에 지하1층, 지상3층, 2000석 규모로 추진될 계획이다. 강원 오페라하우스는 2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구오페라하우스(1500석 규모)보다 500석이 많은 규모인 문화시설이 된다.

울산시도 오페라하우스를 울산교 인근 태화강에 지상 5층(높이 30m), 1만5000㎡(연면적 5만여㎡) 규모로 지을 예정이다. 공연장은 3000석 규모로, 2026년 공사를 시작해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지난 8월부터 ‘오페라하우스 건립 타당성 및 기본구상 용역’을 진행 중이다. 용역은 내년 상반기 중 끝나고, 하반기엔 사업 기본계획을 수립한다는 게 울산시 구상이다.

인천시도 지난 2019년 2월부터 아트센터인천 2단계 사업으로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본격 추진했고 현재 타당성 조사 중이다. 오페라하우스는 연면적 2만2500㎡에 객석 1439석, 전막 공연이 가능한 4면 전환무대시설, 첨단음향장비 등을 갖추며, 개관은 2027년 예정이다.

 

가뜩이나 열악한데…‘혈세 낭비’ 우려

하지만 일각의 부정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우선 혈세 낭비 우려가 나온다. 일부 시민·문화 단체는 1년 365일 중에 몇 차례나 오페라 공연을 하게 될지도 의문인데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대형 오페라하우스를 꼭 지을 필요가 있느냐고 우려하고 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 유지·보수·운영에 100억원 이상의 대구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광주 오페라하우스가 새로 문을 열면 열악한 광주시 재정에 50억~100억원의 혈세가 해마다 추가 편성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지역 문화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공연 인프라 확충을 위한 오페라하우스 개관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지역의 오페라·발레 공연 관람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선행적으로 검증해봐야 한다. 무작정 대형 전문공연장 문을 열었다가 감당하기 힘든 적자가 누적돼 지역공동체의 골칫거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치밀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 달라.”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대구시
20년 전통을 자랑하는 1500석 규모의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대구시

“제2 광주문화예술회관 될라” 

‘제2의 문화예술회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팽배하다. 전문극장이 오페라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외부 공연팀을 초청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거나 기획사 등에 무대를 빌려주는 다목적 공연장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 공연계의 시각이다. 

“하드웨어적 문제뿐 아니라 오페라하우스에 내용을 채울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마련하고 채울 것인지도 당면 문제다. 또 광주시에서 건립을 검토하고 있는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공연에 손색이 없어야 하고 제작극장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렇지 못해 다목적 공연장으로 전락하면 극장의 차별화 없이 온갖 작품을 섞어놓은 비빔밥이 되고 수준이 떨어질 것이다. 해외 오페라하우스는 오케스트라를 두고 있다. 오페라하우스에 상주하는 예술가들이 있어야 지역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 

해외에서 오페라하우스는 ‘제작극장’으로 운영하며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합창단원, 오케스트라단원, 발레단원 등을 채용해 육성한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 등이 제작극장에 속한다. 

국내에서는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제작극장 방식으로 운영한다. 대구시가 운영하는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소속 직원인 예술감독 주도로 연출자, 지휘자, 성악가, 무대·의상·영상 디자이너 등을 섭외해 작품을 만들고 상주단체인 합창단(40명), 오케스트라단(40명)과 함께 공연한다. 연간 10개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1개 작품당 4~8회 공연하는 방식이다 .

광주시 관계자는 “오페라하우스는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시설물이 될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 구호만 외친다고 인구 유출 등 지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발전해야만 지속가능한 도시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높은 수준의 공연을 보려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 지역민에게 문화예술 공연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측면에서 전문 예술극장 건립은 지역 균형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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