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때 후계자 내정된 김정은, 딸 주애도 일찌감치 ‘낙점’
  •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31 08:05
  • 호수 178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대 걸쳐 세습된 북한, 김주애로 4대째 세습도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
김정은이 얼마나 더 오래 건강 유지하며 딸 지원할 수 있을지가 관건

2022년 11월부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딸 김주애와 함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장면을 참관하고, 북한이 김주애에게 김정은 다음가는 의전을 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김주애의 위상을 둘러싸고 매우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이 2022년 11월19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김주애의 모습을 공개했을 당시 필자는 분석 자료를 통해 “만약 이후에도 김정은이 중요한 현지지도에 그의 딸을 자주 동행시킨다면 이는 김정은의 딸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같은 달 27일 북한이 김주애의 모습을 두 번째로 공개하면서 그에 대해 ‘존귀하신 자제분’ 그리고 김정은이 ‘제일로 사랑하시는 자제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 등을 근거로 “김정은이 김주애를 벌써 후계자로 내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항공절을 맞아 2023년 11월30일 딸 주애와 공군사령부를 방문해 시위비행을 참관했다고 12월1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쳐

김여정의 초고속 승진, ‘남존여비’ 의미 없어

그런데 당시만 해도 대다수 전문가는 필자의 이 같은 해석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북한이 핵과 ICBM 개발을 통해 ‘미래세대’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김주애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23년에도 김주애가 김정은의 공개활동에 자주 동행하고, 각종 행사에서 2인자에 해당하는 의전을 받으며, 열병식 때 김정은과 함께 ‘주석단 특별석’에 앉은 김주애에게 박정천 원수가 무릎을 꿇고 귓속말을 하는 모습 등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김주애를 보는 전문가들과 정부의 시각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김주애를 후계자로 보는 데 신중한 입장이던 통일부도 최근에는 “김주애의 세습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보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2000년대 초중반 필자가 북한 내부의 고용희(김정은의 모친) 개인숭배 문건 등을 근거로 북한이 3대 권력세습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을 때 당시 한국의 일부 전문가는 “21세기에 3대 세습이 가능하겠는가”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김정일이 자신은 권력을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부정확한 대북 소식통의 ‘정보’를 근거로 필자의 주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북한이 2012년 7월7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의 모란봉악단 시범공연 관람 시 그의 부인 리설주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당시 대다수 전문가와 언론은 이 여성이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정일 시대의 경험에 비추어 “북한 사회에서 부인을 공식 행사에 데리고 나오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반면에 필자는 “이번에 공개된 인물은 김여정보다 나이도 훨씬 들어 보이고, 공연장에서 김정은 옆에 서서 함께 박수를 치는 모습과 퇴장할 때 따라 나가는 모습을 보면 여동생의 모습이 아니라 ‘퍼스트레이디’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럼 왜 이렇듯 전문가들과 정부는 평양 주석궁 내부의 변화를 정확히 분석하는 데 실패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과거의 기억에 갇혀 있고 ‘희망적 사고’를 가지고 북한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필자가 2000년대 초중반에 북한의 3대 권력세습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을 때 당시 진보적 성향의 일부 전문가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현재 필자가 북한의 4대 권력세습 가능성에 대해 지적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북한에서의 권력세습이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바라보고자 하는 그들의 시각 및 ‘희망적 사고’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타입의 MZ세대 지도자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시대의 권력승계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김정은이 후계자를 조기에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북한처럼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나라에서 여성이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단언한다.

그런데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북한에서 ‘백두혈통’ 김여정의 승진 속도는 그의 고모 김경희와 항일 빨치산 2세의 대표주자인 최룡해 그리고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의 과거 승진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김여정은 2014년 26세의 매우 젊은 나이에 한국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직에 올랐는데, 이는 김경희가 30세에 당중앙위원회 국제부 부부장을 맡은 것보다도 빠른 것이다. 김여정은 2016년 28세에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출되어 북한을 움직이는 약 100명 내외의 핵심 엘리트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최룡해가 만 36세, 그리고 김경희가 만 42세에 ‘당중앙위원회 위원’직에 선출된 것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김여정은 다시 2017년 29세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어 북한을 움직이는 최고위 파워 엘리트 30인 내외의 그룹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최룡해가 60세에, 장성택이 64세에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된 것과 비교해도 30년 이상 빠른 것이다.

1994년의 북한 김일성(왼쪽), 김정일 부자 ⓒ연합뉴스

김일성 때 권력 사유화돼 체계적 세습 진행

북한의 1대 지도자 김일성은 자신의 아들 김정일을 1974년에 후계자로 지도부 내에서 공식 지명하고서도 그를 1980년 노동당 6차 대회 때 비로소 공개했다. 그것은 김일성이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전무후무한 권력세습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크게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942년생인 김정일은 어린 시절부터 김일성의 아들로 특별대우를 받으며 성장했다. 김정일의 대학 시절 그의 동료들은 그를 ‘김정일’로 부르지 않고, ‘수상님 자제분’으로 불렀다. 현재 북한 노동신문도 김주애에 대해 김정은의 ‘자제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김정일의 김일성종합대학 재학 시절에 각 분야 최고 실력자들이 그의 ‘가정교사’로 배정되었다. 그리고 김정일은 고학년이 되면서 당대회와 정치위원회, 내각회의 등 국가 전반의 주요 회의에 참석해 현장수업을 받았다.

2010년의 북한 김정일(왼쪽), 김정은 부자 ⓒ연합뉴스
2010년의 북한 김정일(왼쪽), 김정은 부자 ⓒ연합뉴스

조기 후계자 낙점, ‘김정은 건강’ 작용한 듯

1964년 대학 졸업 직후 김정일은 중앙당과 내각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당과 정부의 업무를 파악했다. 그리고 1966년부터 당의 최고 핵심기관인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고, 1969년에는 27세의 매우 젊은 나이에 한국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직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1974년 32세에 김정일은 당 지도부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이 같은 김정일의 초고속 승진과 후계자 조기 지명은 이미 김일성 시대에 권력이 사유화되어 ‘권력세습’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시점과 공식적으로 지정되는 과정은 그의 아버지 김정일 사례와 큰 차이가 있다. 필자가 2021년 미국에서 만난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 부부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은의 8세 생일날(1992년, 김정일이 만 50세 때) 그에 대한 찬양가요인 ‘발걸음’이 김정일과 그의 핵심 측근들 그리고 김정은 앞에서 공연되었고 김정일은 이때부터 측근들에게 “앞으로 내 후계자는 정은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냐는 김정은 이모부의 지적에 대해 당시 김정일은“나를 닮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김정일은 김정은을 1992년에 후계자로 내정하고도 그것을 소수의 측근들만 알게 했기 때문에 김정은은 오랫동안 그의 이복형 김정남이나 친형 김정철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외부 세계의 억측으로 마음고생을 했다. 그리고 김정일이 2008년 뇌혈관계 이상으로 쓰러졌다가 회복되면서 서둘러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해 1984년생인 김정은은 24세의 매우 젊은 나이에 2인자 자리에 올라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함으로써 그가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르기까지 3년간 권력승계 작업을 초고속으로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은까지 북한에서 권력이 3대에 걸쳐 세습되었으므로 또 한 차례 세습이 이루어진다 해도 북한 간부들은 그것을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 같은 상황에서 김정은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하고 조기에 후계수업을 시작한 것은 그의 과거 경험과 건강 상태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2023년 5월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에 김정은의 몸무게는 140kg 중반대로 심각한 수면장애를 겪으면서 술과 담배에 더 기대고 있다고 보고했다. 김정은의 이 같은 초고도 비만 상태를 고려할 때 그가 당뇨와 고혈압 등 성인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쓰러진다고 해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김주애 위에 아들이 있다는 정부의 초기 판단은 부정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김주애가 김정은의 첫째 ‘자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김정은이 그의 부친 김정일처럼 젊은 나이에 뇌혈관계 이상으로 쓰러졌다가 회복되면서 갑자기 김주애를 후계자로 지명한다면 김주애가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서는 김주애가 과연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 ‘급변사태’를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확산될 수도 있다.

따라서 김정일이 김정은의 8세 생일날 그를 후계자로 내정한 것처럼, 김정은도 김주애를 조기에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했다면 일찍부터 후계수업을 시작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공개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김주애가 과연 북한의 4대 ‘수령’이 될 수 있을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김정은이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건강을 유지하며 김주애를 지원할 수 있을지에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

☞연관기사
딸 주애에 쏠린 외부 관심 즐기는 김정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