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영웅보다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싶었다”
  •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30 13:05
  • 호수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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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노량》에서 이순신 역 열연한 김윤석

대체 불가의 연기를 선보여온 김윤석이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할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최후의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 역으로 분했다. 김윤석은 신중하면서도 대담한 카리스마를 지닌 ‘장군’ 이순신의 모습과 깊은 고뇌를 지닌 ‘인간’ 이순신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표현하며 찬사를 받고 있다. 현재 영화는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넘겼다.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에 이어 성탄절 당일에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내며 《서울의 봄》과 함께 연말 극장가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대한민국 흥행의 역사를 기록한 영화 《명량》과 2022년 여름 최고 흥행작 《한산: 용의 출현》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자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영화로, 지난 10년간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향해 달려온 김한민 감독과 제작진의 대장정 마침표다.

애초 《명량》을 기획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는 업계의 의견이 많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웅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세계 해전 역사상 손꼽히는 전투를 스크린에 옮긴다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던 것. 그러나 김한민 감독은 최민식의 《명량》을 시작으로 박해일의 《한산: 용의 출현》, 김윤석의 《노량: 죽음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시리즈, 세 명의 캐스팅이라는 획기적인 기획을 영화로 완성해 냈다.

김윤석은 《모가디슈》 《1987》 《남한산성》 《타짜》 등 장르를 불문하고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스크린을 장악해온 대한민국 대표 배우다. 최후의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김윤석은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부터 부담감이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장을 넘길수록 흥미롭게 빠져들어 출연을 결정했고,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했다는 후문이다, 김윤석은 “우리 민족에게 횃불 같은 분을 연기한다는 게 영광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최후의 전투를 앞둔 상황이니만큼 《명량》과 《한산: 용의 출현》에서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모두 담고,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노량: 죽음의 바다》 개봉 직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윤석을 만났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역사수업’을 방불케 할 만큼, 이순신 장군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극에 대한 여운도 진하게 느껴졌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 소감부터 알려 달라.

“예매량이 좋다고 들었는데 설레기도 하고 불안한 마음도 있다. 얼마 전에 무대 인사를 다녀왔는데 잘되는 영화는 무대 인사를 가면 관객들의 반응이 다르다. 이 영화는 그것과 결이 조금 달랐다.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먹먹해하는 분들이 많았다.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모든 국민이 아는 ‘이순신’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당연히 부담스럽다. 이순신 장군이라는 배역 자체가 너무나 무게감이 큰 배역이다. 이전 《명량》과 《한산》에서 연기했던 두 배우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3~4년 전쯤 모로코에서 《모가디슈》를 촬영할 때 제안을 받았다. 사실 영화를 촬영하는 중에 다른 작품의 시니라오를 본다는 게 실례다. 그래서 촬영이 없을 때 몰아서 읽었다. 시나리오 자체만 보더라도 굉장했다. 밀도가 있었다.”

이 작품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초등학교 때 김진규 선생님이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던 《성웅 이순신》을 단체 관람한 적이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수레를 타고 묶여서 서울로 압송될 때 백성이 우는 장면과 장군님이 돌아가실 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 장면이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방금 언급한 명대사,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를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하고 싶었나.

“이 장면을 연기할 때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 있었다. 사실 장군님이 그 말을 한 상황은 전장이 최고조였을 때다. 아비규환인 그 상황에서 이 위대한 영웅의 죽음을 위대하게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우성치는 전쟁터 안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역사 속 위대한 장군의 모습이 아닌, 400년 전에 7년 전쟁을 겪고 살다 간 50대 군인의 죽음이다. 그 모습을 진실되게 표현하고자 했다.”

내가 알던 이순신 장군과 연기하면서 알게 된 이순신 장군은 뭐가 다르던가.

“이순신 장군은 철두철미하게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노비 병사도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게 했다. 또 이순신 장군님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명량’과 ‘노량’ 사이라고 한다. 압송돼 의금부에 가서 고문을 당하고 나올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자식이 왜구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실제로 죽은 아들의 시신을 잡고 우는 장면을 연기할 땐 말을 잇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덜덜 떨리더라. 그만큼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다. 이후 장군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매일 악몽을 꾸고 식은땀과 각혈을 했다. ‘노량’을 앞둔 시기가 이순신 장군에게는 가장 피폐하고 외롭고 힘들었던 때였다. 우리에겐 영웅이지만 4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군인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불행한 인물이다. 압도적인 승리를 했음에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람이기도 하다.”

김한민 감독과 작업하면서 느낀 점도 궁금하다.

“비워낼 줄 아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사운드가 정말 필요한 장면에서 오히려 사운드를 완전히 빼는 식이었다. 그것이 결국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고, 전쟁을 일으킨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작품은 《명량》 때부터 약 10년 동안의 기록이고 준비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더 길게 준비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아마 이순신 장군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일 것이다. 경의를 표한다.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질리는 사람이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웃음).”

《난중일기》를 읽었나.

“안 읽었다. 남의 일기를 보는 게 좋은 건가?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역사 속에 이순신 장군님의 성향은 말수가 적고 웃음이 적고 남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장군님이 자신의 일기가 세계기록유산이 될지 아셨을까. 그런 분이 자기 일기가 천하에 공개되는 걸 좋아하셨겠나(웃음). 김한민 감독이 그 외에도 자료를 많이 보내줬다. 그 자료들로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 가치, 각자의 입장들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이지만 역사적 상황을 간접 경험했다. 소감도 궁금하다.

“착잡한 감정이 든다. 병자호란에는 100만 명이 죽었고, 임진왜란에는 400만 명이 죽었다. 특히 임진왜란은 1598년까지 7년 동안 계속됐고,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끈질긴 저항을 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500년을 버틴 단단한 나라인데 이렇게 무너졌다. 왕이 도망가도 백성들은 항복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조선의 의병들이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아픔의 역사가 있지만 힘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좋은 영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이 보여야 한다. 사람의 삶이 보여야 한다. 허황된 삶이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 보여야 한다. 《노량》은 400년 전 이야기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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