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恨 맺힌 아시안컵 잔혹사, 황금세대가 끝낸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31 11:05
  • 호수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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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아시아 호랑이’인데 1960년 이후 한 번도 정상에 못 서
‘손흥민-황희찬-이강인-김민재’ 최강 라인업…숙적 일본과 결승 격돌 시나리오도

한국 축구는 아시아 최강을 자처한다. 월드컵 본선 최다 출전 기록(10회 연속 포함 총 11회)과 최고 성적(4강)만 보면 대륙 내 최고의 경쟁력을 지녔다는 자체 평가에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그래서 아시안컵은 몇 번 우승했나?”라는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이 적어진다. 대륙별 최강팀은 4년 주기로 열리는 대륙축구연맹 주관 대회로 가려진다. 아시아 최고 위상의 대회는 누가 뭐래도 아시안컵이다. 실제로 아시아축구연맹(AFC)도 아시안컵 우승 횟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 최강자는 일본이다. 아시안컵 정상에 4번 올라 최다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만 3차례 우승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각각 3번 우승했다. 한국은 그다음이다. 1956년 원년 대회, 그리고 서울에서 열린 1960년 2회 대회를 연속으로 우승하고 그 후 한 번도 정상에 서지 못했다. 초창기 1·2회 대회는 단 4개 팀만 참가해 자웅을 겨루는, 지금과는 규모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미니 대회였다. ‘아시아의 호랑이’는 무려 반세기 넘게 아시안컵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한국은 준우승을 가장 많이 한 팀이다. 4번이나 결승전에서 아쉬움을 삼켰다. 2015년 대회가 가장 최근의 일이다.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5전 전승을 기록했지만, 조별리그에서 이미 꺾었던 개최국 호주에 연장 접전 끝에 1대2로 패하고 말았다. 직전 대회인 2019년에는 8강에서 복병 카타르에 일격을 당해 일찍 탈락했다.

ⓒ EPA 연합·REUTERS·DPA 연합·PA 연합

클린스만호,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라인업 완성

이런 한국 축구의 아시안컵 잔혹사는 대회의 가치를 얕잡아본 우리 축구계 풍조에서 비롯됐다. 월드컵과 함께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높이 산 반면 정작 아시안컵에는 비중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1992년에는 실업 선수로 구성된 대표 2진을 아시안컵 예선에 보냈다가 탈락해 본선에도 나서지 못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1996년 대회에서도 8강에서 이란에 2대6으로 참패하는 쇼크까지 경험하고 나서야 아시안컵 경시 풍조는 사라지고 최정예 멤버가 나서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2010년대 들어 아시안컵을 향한 대한축구협회의 의지도 강해졌다. 아시안컵 성적은 FIFA랭킹 산정 시스템에서 월드컵 본선 다음으로 비중이 높다. FIFA랭킹이 월드컵 본선 시드 배정으로 직결되다 보니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2011년은 3위, 2015년은 준우승을 기록하며 우승에 점점 다가서는 듯했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 체제에서 6개월 만에 치른 2019년 대회에서는 8강에 머물렀다.

이번 아시안컵은 2023년 대회로 표기되지만 2024년 1월에 열린다. 2023년 6월에 개최 예정이던 대회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이 개최권을 포기하며 연기됐기 때문이다. 새 개최국 선정을 위한 투표 당시 한국도 유치에 도전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아시안컵 우승의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해 한국 개최를 추진했지만, 카타르에 큰 표 차로 밀려 무산됐다.

결국 한국은 중동 무대에서 64년 만의 한 풀이에 나서야 한다. 어느 대회보다 우승에 대한 희망도 크다.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라인업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주장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황희찬(울버햄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주축이 된 황금세대다. 이들 외에도 이재성(마인츠), 조규성(미트윌란), 황인범(즈베즈다), 오현규(셀틱), 정우영(슈투트가르트), 홍현석(헨트) 같은 유럽파가 대표팀의 공격과 허리를 책임진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2023년 11월18일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팬 오픈트레이닝에서 훈련하고 있다. ⓒ뉴시스

전력의 주축 유럽파들, 현재 절정의 컨디션 자랑

유럽파 대부분이 현재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도 우승 희망을 높이는 요소다. 손흥민은 소속팀 토트넘에서 주장을 맡으며 해리 케인의 이적 공백을 완벽히 메우는 중이다. 11골을 기록하며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도미닉 솔란케(본머스)에 이어 EPL 득점 랭킹 4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과의 월드컵 2차 예선 2차전에서 멀티골을 터트리며 아시아 역대 최고 선수의 위력을 과시했다. 황희찬도 EPL 진출 후 자신의 커리어 최고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확 달라진 결정력을 앞세워 10골을 넣으며 득점 랭킹 6위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지난여름 덴마크 수페르리가로 진출한 조규성도 미트윌란에서 전반기에 8골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3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미드필드 라인업도 역대급이다. 박지성·손흥민의 뒤를 이어 한국 축구 최고의 재능으로 꼽히는 이강인이 카타르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표팀의 중심으로 도약했다. 지난여름 마요르카를 떠나 세계적인 클럽인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며 자신감이 한층 올라갔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최근 A매치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4골 3도움)를 올리며 손흥민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이재성·황인범·홍현석 등도 소속팀에서의 꾸준한 경기력을 대표팀으로 이어가며 함께 합을 맞추고 있다.

수비의 중심엔 단연 김민재가 있다. 유럽 진출 3년 차에 발롱도르 최종 후보 30인에 뽑힌 김민재는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부동의 주전 자리를 점했다. UEFA가 선정한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베스트11에 뽑히는 등 한번 붙은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모습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김민재의 컨디션과 체력이다. 소속팀에서 대부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끊임없이 출전하다 보니 지난해 11월 들어서는 집중력이 흔들리는 모습이 노출됐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지난해 12월26일 대표팀 선수를 일부 소집한 클린스만 감독은 분데스리가 휴식기를 맞아 국내에 입국했음에도 김민재를 부르지 않고 휴식을 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수비라인에는 김민재 외에 유럽파가 없지만 정승현·김영권(이상 울산) 등이 아시아 무대에서 안정감을 보여주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아시아권 팀들과 치른 4차례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1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김승규(알 샤밥)와 조현우(울산)의 강력한 경쟁 체제가 구축된 골키퍼 포지션도 아시아 정상권이다. ‘불법촬영 혐의’를 벗기 전까지 대표팀에서 제외되는 황의조의 공백이 잠시 변수로 떠올랐지만,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막강한 스쿼드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12월26일 K리거와 휴식기 중인 유럽파를 소집해 서울에서 훈련에 돌입했다. 이후 새해 1월2일 출국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적응 훈련을 갖는다. 1월6일 이라크와의 공식 평가전을 통해 전술 완성도를 높이는 최종 테스트를 거친 후 1월10일 결전지인 카타르 도하에 입성한다. 바레인·요르단·말레이시아와 E조에 속한 한국은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면 결승에서 일본·호주 등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숙적 일본과의 결승전 대진은 현재로서는 가장 확률이 높은 시나리오다. 일본 역시 역대 가장 많은 유럽파를 보유한 만큼 탄탄한 전력을 자랑한다. 카타르월드컵에서 독일·스페인을 꺾으며 16강에 오른 일본은 그 후에도 흐름을 타며 A매치 8연승을 달리고 있다. FIFA랭킹 17위로 이란(21위), 한국(23위)을 밀어내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20위권 내에 진입해 있다. 하지만 토너먼트 대회에서 중요한 에이스의 영향력 면에서 한국이 앞선다는 점, 일본 최고의 선수인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튼)가 최근 발목 부상으로 아시안컵 참가가 불투명해진 것이 큰 변수다. 최근 일본 축구에 밀린다는 인상을 받는 한국 축구는 최정예 멤버가 나서는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해 대륙 최강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증명하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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