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 82년의 한국인, 17년은 골골거린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4.01.01 07:35
  • 호수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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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수명, 66.3세에서 2년 만에 65.8세로 줄어들어
‘건강하지 못한 비만’ 증가세가 원인

통계청이 발표하는 ‘생명표’는 특정 연령의 사람이 향후 몇 살까지 살 수 있는지를 추정한 통계표다. 최신 자료인 ‘2022년 생명표’를 보면 2022년에 태어난 아이는 82.7년(남자 79.9년, 여자 85.6년) 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까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년이고,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기대수명 80.6년보다 약 2년 길다.

문제는 이 기대수명이 전년보다 약 1년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1970년 62.3년이던 한국인 기대수명은 꾸준히 늘어나 2021년 83.6세로 최고치에 도달한 후 2022년 내림세로 돌아선 것이다. 기대수명이 82.7세라도 그동안 건강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대수명에는 건강하게 사는 구간(건강수명)과, 질병이나 사고로 아픈 시기(유병 기간)가 있다. 2022년 출생아의 건강수명은 65.8년(남자 65.1년, 여자 66.6년)으로 예상된다. 유병 기간은 16.9년(남자 14.8년, 여자는 19년)이다. 즉, 한국인은 약 65년 동안 건강하게 지내고 약 17년 동안 골골거린다는 의미다. 특히 여자의 유병 기간은 남자보다 길다. 

기대수명 감소보다 더 심각한 것은 건강수명마저 내림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2020년 건강수명은 66.3년이었는데, 불과 2년 만에 0.5년 줄어든 65.8년이 된 것이다. 또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2020년 건강수명(70.9년)과 비교하면 5.1년이나 감소했다. 게다가 2022년 건강수명 65.8년은 2012년 65.7년과 비슷하다. 결국 지난 10년 동안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늘어나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한국인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모두 감소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한국인의 기대수명·건강수명 정점 찍고 내리막

2023년 11월 서울의 한 호텔에 18개국 장수 전문가 약 2000명이 모였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마련한 국제포럼으로, 유엔(국제연합)이 지정한 ‘건강 노화 10년(2021~30년)’ 계획을 추진하는 자리였다. 건강 노화란 노년기에 건강하고 좋은 삶을 영위한다는 개념으로 건강수명과 맥이 통한다. 이처럼 건강수명은 세계적인 관심사지만 우리 건강수명은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 배경에 비만이 있다. 질병관리청은 최근 중대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만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국내 비만율이 높은 시·군·구 10곳 중 8곳의 건강수명이 전국 평균 70.9년(2020년 기준)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돼, 해당 지역은 건강관리에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비만율은 심상치 않다. 비만율은 체질량지수(MBI)가 25kg/㎡ 이상인 사람의 분율을 말한다. 전국 19세 이상 성인 약 23만 명을 대상으로 한 지역사회 건강조사 자료를 보면 국내 비만율은 2022년 기준 32.5%다. 전반적으로 남자(40.2%)가 여자(22.1%)보다 비만율이 높다. 비만율이 가장 높은 연령은 남자는 30대(51.4%), 여자는 70대(30.6%)로 집계됐다. 30대 남자는 2명 중 1명이 비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셈이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신체활동마저 감소했다. 중등도 이상 신체활동 실천율은 2017~19년 23.5%에서 2020~22년 21%로 떨어졌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비만은 높은 위험성에 비해 질환이라는 인식이 낮다. 또 비만은 중대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의료비 가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비만은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 실천 등 경각심을 갖고 꾸준히 잘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비만율 32.5%…‘건강한 비만’도 심근경색·뇌졸중 위험도 높여

비만도 유형이 있는데, ‘건강하지 못한 비만(MUO)’과 ‘건강한 비만(MHO)’으로 나눠볼 수 있다. 건강하지 못한 비만은 비만이면서 대사증후군 지표가 2가지 이상인 경우다. 건강한 비만은 비만이지만 대사증후군 지표가 없거나 1가지만 있는 경우다. 10년간 한국인의 비만 유형을 추적한 결과, 건강하지 못한 비만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유철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팀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국민건강조사 자료를 이용해 국내 20세 이상 성인 전체 인구를 분석했다. 대사증후군 지표로는 허리둘레(남자 90cm 이상, 여자 80cm 이상), 중성지방(150mg/dL 이상), 고밀도 콜레스테롤(남자 40mg/dL 미만, 여자 50mg/dL 미만), 혈압(130/85mmΗg 이상 혹은 고혈압약 투약 중), 공복혈당(100mg/dL 이상 혹은 혈당조절약 투약 중)이 있다. 

분석 결과, 한국인의 비만 유병률은 10년간 상승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32.1%에서 2017년 34.4%로 높아진 것이다. 특히 남성에서는 전체적으로 비만 유병률이 상승했고, 그 가운데 건강하지 못한 비만 인구가 약 25%에서 약 30%로 늘어났다. 여성에서는 비만 유병률의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지만 대사적으로 건강한 비만이 다소 증가했다. 이러한 남녀 간 차이는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20·30대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황유철 교수는 “대사 지표를 분석해 우리나라의 건강한 비만과 건강하지 못한 비만의 유병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비만이더라도 건강하지 못한 비만은 앞으로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향후 젊은 인구, 특히 남성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강한 비만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 보건연구소가 2021년 연구한 바에 따르면, 건강한 비만인 사람은 건강한 사람보다 심근경색·뇌졸중 위험이 18% 높으며 심부전 위험과 호흡기 질환 위험은 무려 각각 76%와 28% 높다. 건강한 비만의 3분의 1은 3~5년 이내에 건강하지 못한 비만으로 바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사망자 중 74.3%(약 28만 명)는 만성질환으로 사망했다. 비만과 높은 콜레스테롤혈증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학 발전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 수명을 깎아먹는 것은 염증과 퇴행성 질환인데 이들의 주요 원인이 비만이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평생 조절하면서 사는 이유는 그것들이 다른 합병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만도 많은 병을 유발한다. 따라서 비만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질환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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