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론 풀리는데 가계부채 잡힐까…‘정책 엇박자’ 목소리 나오는 이유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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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R 규제 강화에도…정책대출로 인한 가계부채 우려 제기
신생아특례대출·청년 대출 등 내년 시행 앞둬
금리 인하도 대출 수요 자극…한은 “DSR 예외 대출 축소해야”

정부가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계획을 발표하는 등 가계부채 잡기에 나섰지만, 가계 대출 증가세를 잡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새로운 정책 대출이 줄줄이 예정된 데다 금리 인하 기대까지 겹쳐 대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어서다.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내년부터 전 금융권의 변동금리형·혼합형·주기형 대출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DSR 제도가 시행된다. 대출 기간 중 금리 상승 가능성을 감안해 DSR 산정 시 일정 수준의 가산 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연 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1.5%의 가산금리를 붙이면 대출 한도는 5000만원가량 줄어든다. 정부가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가계 빚 조이기에 나선 것이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금리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대출 금리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특례보금자리론, 가계부채 급증 원인으로 지목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우리나라 3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로 전 세계 61개국 중 4번째로 높다. 전 세계 평균의 1.6~1.7배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을 경우, 거시 경제와 금융 안정을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줄이기에 본격 나섰지만 ‘정책 엇박자’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내년에 정책대출 자금이 대거 풀리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27조원 규모의 신생아 특례대출이 시행된다. 신생아 출산 무주택 가구 중 연소득 1억3000만원 이하, 주택 가액 9억원 이하 요건을 갖추면 최대 5억원까지 최저 1.6% 금리로 주택구입자금을 빌릴 수 있다. DSR 규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20~30조원 규모의 청년 대출 정책도 스트레스 DSR 제도와 어긋날 수 있다. 정부는 내년 2월 ‘청년주택드림 청약통장’을 출시하고, 청약에 당첨된 만 34세 이하 무주택 청년에게 연 2.2% 금리로 분양가의 80%까지 대출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 역시 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해당 상품들이 흥행을 기록하면 가계부채는 또 증가할 수 있다.

실제 정부의 정책대출은 가계부채 급증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국내 가계부채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지난달 은행권 잔액은 5조7000억원 늘었다. 이 중 특례보금자리론과 버팀목·디딤돌대출 등 정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1%에 달했다.

DSR 규제 없이 연 4%대 금리를 제공한 특례보금자리론이 큰 인기를 끌면서, 가계대출 폭증의 도화선이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행 1년 만인 다음 달 판매 중단을 앞두고 있지만, 그동안 특례보금자리론은 부동산 규제 완화 역할을 하며 가계부채 증가의 주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비판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주택금융공사는 특례보금자리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책모기지를 다시 검토 중이다.

금융당국에서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앞서 가계부채가 2분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서자 한국은행은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정책모기지 공급을 조절하고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점검하면서, 차주의 DSR 규제 정착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당분간 대출 증가세를 적절히 관리해 향후 금융 불균형 확대 흐름을 완화하는 데 정책적 노력을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연말까지 하락 흐름을 이어간다고 하더라도 내년 특례보금자리론이 재개되고 신생아특례대출 등이 새롭게 시행되면서 정책금융이 가계대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내년 정책금융의 내용과 규모, 그리고 가계대출에 미칠 영향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이 기준금리를 소폭 인상하거나 동결하면서, 긴축 재정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반응이 팽배하다. ⓒ pixabay
미국을 중심으로 내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pixabay

금리 인하 기대감도 대출 수요에 영향

내년 중 기준금리도 대출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시사하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그간 고금리에 잠잠하던 ‘영끌’ 심리가 살아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거세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실제 지난달 주담대 금리는 6개월 만에 하락 전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이 새로 취급한 주담대 금리는 연 4.48%로 10월 대비 0.08%포인트(p) 하락했다. 5월 이후 6개월 만의 하락세다. 내년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주담대 준거 금리로 활용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난 22일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연중 최저치인 3.793%까지 내려갔다.

한은은 28일 펴낸 ‘2023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가계신용의 경우 DSR 적용범위 확대, 변동금리대출 스트레스 DSR 도입 등 이미 발표된 가계대출 관리 대책이 차질 없이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또 “DSR 미적용 가계대출을 축소해 나감으로써 채무상환능력에 따라 대출을 실행하는 원칙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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