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부부 ‘몰래 녹음’ 증거 인정됐다…특수교사 ‘학대 유죄’ 파장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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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자폐 아동 특성 고려해 녹음 증거능력 인정된다 결론
교육계 “후폭풍 일 것”…침묵 깬 주씨 “대립으로 비치지 않길”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2월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2월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정서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에 대해 법원이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최대 쟁점이었던 주씨 부부의 '몰래 녹음'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교육계의 우려 속 판결을 둘러싼 파장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1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무효화 해주는 판결이다. 

 

法 "장애 아동에 대한 정서학대 여부, 녹음 외 확인 어려워"

재판부는 이 사건의 쟁점인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주씨 부부는 A씨의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등교하는 아들의 외투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보냈고, 이 녹취록을 근거로 경찰 수사와 검찰 기소가 이뤄졌다. 

곽 판사는 "통신비밀보호법이 규정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면서도 "그러나 대화의 녹음행위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그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이미 4세 때 자폐성 장애로 장애인으로 등록됐으며,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아동학대 범행을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점, 피해자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모친 입장에서 신속하게 이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CCTV가 설치된 어린이집이나 방어 및 표현 능력이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이뤄진 교실과 달리 이 사건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맞춤 학습실에서 소수의 장애 학생만 피고인의 수업을 듣고 있었으므로 말로 이뤄지는 정서학대의 특성상 녹음 외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모친의 녹음행위는 정당행위로 인정된다"며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장애 아동이 학대 피해를 온전히 진술하기 어렵고,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부모가 교사 언행을 정확히 파악할 다른 방안이 없는 점을 고려해 몰래 녹취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재판부는 교사의 전체 발언 가운데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이야기하는 거야.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라는 부분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곽 판사는 해당 발언이 자폐성 장애를 가진 피해자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표현에 해당한다며 "'너', '싫어'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부정적 의미나 피고인의 부정적 감정 상태가 그대로 피해자에게 전달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할 위험이 충분히 존재하고, 특수교사인 피고인의 미필적 고의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녹취록에 담긴 "밉상이네, 머릿속에 뭐가 들었어" 등 나머지 발언에 대해선 "혼잣말 형태로 짜증을 낸 것으로 학대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했다. 

곽 판사는 "피고인은 특수교사로서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오히려 짜증을 내며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학대해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그러나 전체 수업은 대체로 피해자를 가르치고자 하는 교육적 목적 및 의도에 따라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는 점, 실제 피해자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어느 정도의 해를 끼쳤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법정에는 지난해 8월 입장 표명 이후 반년간 침묵해 온 주씨와 그의 부인도 참석했다. 주씨 부인은 유죄 판결이 나오자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일부 방청객은 재판부가 특수교사 혐의를 인정하고 선고유예 판결을 내놓자 야유와 탄식을 쏟아내기도 했다. 

앞서 A씨는 2022년 9월13일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주씨 아들(당시 9세)에게 여러 차례 부적절 발언을 하는 등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 

7월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사 생존권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br>
2023년 7월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사 생존권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교육계 "대한민국 전체 후폭풍"…주씨 "제도 개선 필요" 

이번 판결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이 '교사 동의 없이 부모가 몰래 한 녹음은 증거 효력이 없다'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 교육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이날 선고 직후 경기교육청 북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특수교육 전체에 후폭풍을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고 유감을 표했다.

임 교육감은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며 "몰래 녹음한 것이 법적 증거로 인정돼 교육현장이 위축될까 우려된다. 교육현장에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한탄의 말이 들린다"고 말했다. 

주씨는 판결이 나온 후 법정을 나오며 "열악한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분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이 사건이 장애 부모와 특수교사들 간에 어떤 대립으로 비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둘은 끝까지 협력해서 아이들을 키워나가야 하는 존재"라고 당부했다.

그는 "특수교사 선생님의 사정을 보면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가중된 스트레스가 있었고 특수반도 과밀학급이어서 제도적 미비함이 겹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며 "또 학교나 교육청에서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는데 (재발을 막기 위해선) 여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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