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에 붙은 공포의 ‘빨간딱지’…꺼지지 않는 ‘전세사기’ 불씨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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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경매 매물 696건…성동구보다 77배 많아
경매 나온 빌라 가보니…“11회 유찰, 예상 낙찰가는 바닥”
31일 부동산 경매 사이트 ‘경매알리미’에 올라온 서울 강서구 경매 매물 ⓒ경매알리미 캡쳐
1일 부동산 경매 사이트 ‘경매알리미’에 올라온 서울 강서구 경매 매물 ⓒ경매알리미 캡쳐

대규모 전세사기를 저지른 ‘빌라왕’의 주무대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다세대 주택 수백채가 무더기로 경매에 나왔다. 2022년 전국을 강타한 전세사기 매물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전세사기의 여진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강서구, 서울시내 압도적 경매 물량 1위”

1일 부동산 경매 사이트 ‘경매알리미’에 따르면, 강서구에 나온 경매 매물은 696건으로 집계된다. 경매 매물이 많은 순으로 서울 시내 자치구를 줄 세워 보면 강서구가 압도적 1위다. 인근 지역과 경매 물량을 비교해 봤더니 △성동구(9건) △동대문구(18건) △강동구(29건) △영등포구(42건) △서대문구(46건)로 강서구와 확연한 차이가 났다. 서울에서 가장 경매 물량이 적은 성동구(9건)와 견줘보면 강서구가 77배 많다.

강서구 경매 매물은 대부분 화곡동 빌라에서 나왔다. 시사저널이 경·공매 데이터 기업 ‘지지옥션’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강서구 빌라 경매는 459건 이뤄졌는데 이중 화곡동이 400건(87%)을 차지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그 배경에는 ‘무자본 갭투기’를 이용한 ‘빌라왕’ 김아무개(사망 당시 42세)씨의 전세사기가 있다. 무자본 갭투기란 자본 없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으로 빌라 등을 매입하는 투기성 거래다. 전세사기는 임대인이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잠적하거나 경매로 넘기는 등 교묘히 빠져나가는 수법으로 이뤄져 왔다.

김씨는 2017년 6월부터 사망 전까지 수도권 일대에 걸쳐 1500여채에 이르는 빌라를 사들였다. 이중 강서구 화곡동에서만 122채를 매입해 보증금 84억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서는 김씨와 같은 무자본 투기 세력이 빌라 공급이 많은 화곡동에 마수를 뻗치면서 이곳이 전세사기 진앙지가 됐다고 보고 있다.

화곡동 일대가 경·공매 물량으로 빽빽하게 차있는 지도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전세사기 피해자의 눈물”, “동네가 초토화됐다”는 등 안타깝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경매로 나온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 우편함에 법원 경매 컨설팅 전단지가 들어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경매로 나온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 우편함에 법원 경매 컨설팅 전단지가 들어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감정가 3억인데…낙찰가는 5분의 1 수준”

이날 오후 12시께 찾은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촌. 주변 김포공항 때문에 고도제한이 걸려 층수가 낮은 빌라들이 밀집해 있었다. 경매에 나온 한 빌라를 가보니 입구에 “정리가 어려운 빌라 및 오피스텔을 전문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100% 매매 성사시켜 드리겠다”는 컨설팅 업체의 전단지가 보였다. 경매로 나온 해당 호수의 우편함에는 수령하지 않은 건강보험료 고지서, 통신비 청구서 등이 가득 쌓여있어 오랫동안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듯했다.

5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빌라는 ‘경매알리미’에 2021년 11월 법원에 경매로 나와 지금까지 11회 유찰됐다고 돼있었다. 감정가는 3억여원에 이르지만, 낙찰가는 5분의 1 수준인 6482만원으로 예측됐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은 경매에 부쳐진 주택을 우선 매수권으로 ‘셀프 낙찰’을 받고 이를 재매각하고 있다. 보증금을 회수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지만, 이마저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손해를 떠안는 실정이다.

화곡동에서 20년 동안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해 온 A씨는 “얼마 전 한 청년이 ‘집을 좀 팔아 달라’고 급하게 찾아왔다”며 “사정을 들어보니 집주인이 연락이 안 돼서 결국 자기가 경매로 낙찰를 받고 매각하는 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지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전세사기 여파는 향후 1~2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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