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판도라 상자 열었다”…‘몰래녹음’ 인정에 충격 빠진 교단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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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아들 특수교사 ‘정서학대 유죄’에 교육현장 탄식
교원단체 “교실이 감시의 장으로 변질…교육 의지 상실”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2월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2월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A씨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웹툰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 특수교사가 유죄 판결을 받자 교육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교육단체는 특수교육 뿐 아니라 전체 공교육 장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주씨의 아들이 자폐가 있는 장애 아동인 점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몰래 녹음’ 외 다른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어렵다며 이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너 싫어’ ‘버릇이 고약하다’ 등 A씨의 일부 발언이 학생을 향한 정서 학대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교육계는 판결에 즉각 반발했다. 불법 녹취 자료가 증거로 채택된 데 법리적 모순이 있고,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경기도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나란히 성명을 내고 “불법 몰래 녹음을 인정해 학교 현장을 사제간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수교육 여건상 교사가 지도과정에서 강하게 제지하고 혼자 넋두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이런 것만 몰래 녹음해 처벌한다면 어느 교사가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국교직원노조도 논평을 내고 “교육활동을 아동학대로 왜곡한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며 “교육방법이 제한적인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로 해당 교사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전국특수교사노조도 “대한민국 특수교육은 미래를 잃었다”고 성토했다. 정원화 특수교사(전국특수교사노조 정책실장)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이번 판례가 앞으로 교사들에게 미칠 영향이 두렵다”며 “장애 학생이 언제든 녹음기를 써서 교사의 사소한 꼬투리까지 녹취하는 게 가능해졌다. 녹취 당한 교사는 유죄가 선고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 교사는 이번 판결과 ‘학부모에 의한 무단 녹음 행위와 유포는 불법’이라는 최근 대법원 판례가 충돌하는 점도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저희가 지켜온 ‘장애 학생도 학생과 똑같은 존재’라는 교육 기조와 정반대”라며 “장애학생을 ‘학생’과 구분 짓게 되면 통합교육에도 악영향이 미친다. 결국 모든 교사가 교육에 대한 의지를 상실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A씨 변호인도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김기윤 변호사는 “(피해 아동 측이)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인정했는데 경기도교육청 고문 변호사로서 재판부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며 “몰래 녹음에 대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경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A씨의 또 다른 변호인 전현민 변호사는 “피고인 측은 그간 교사의 해당 발언이 정서적 학대로 보기엔 어렵다고 주장해왔다”면서 “피해 아동이 장애 아동이고, 그 당시 (피해 아동이 연루된) 학폭 사건이 있었다 보니 아동을 강하게 훈육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발언이 나온 전체 경위와 과정까지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호민 “몰래 녹음, 자녀 보호 방법이었을 뿐”

한편 주씨는 A씨의 유죄 판결에 대해 “여전히 무거운 마음”이라며 “자기 자식이 학대 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부모로서는 전혀 반갑거나 기쁘지 않다”고 심경을 전했다.

주씨는 “이 사건이 장애 부모와 특수교사들 간에 어떤 대립으로 비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둘은 끝까지 협력해서 아이들을 키워나가야 하는 존재”라며 “열악한 현장에서 헌신하는 특수교사들께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특수교사 선생님의 사정을 보면 혼자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가중된 스트레스가 있다”며 “특수반도 과밀학급이어서 제도적 미비함이 겹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몰래 녹음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선 장애 아동 보호를 위해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향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자기 의사를 똑바로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녹음 장치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의사 전달이 어려운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수 있을지 다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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