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시간’ 속 1등 내준 삼성…반등 발판은 법원 손에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5 12: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도체·스마트폰 시장서 글로벌 기업에 밀려…‘초일류’ 지위 흔들
‘분위기 전환’ 절실한 삼성…집유·무죄 선고시 향후 행보 탄력 예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운명의 날’이 밝았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결과가 5일 나온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지 약 3년5개월 만이다. 이 회장의 선고 결과에 재계 안팎의 관심이 몰리는 이유는 지금이 삼성의 ‘분위기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에서 경쟁사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동안 햇수로는 9년째, 100차례 넘게 법정에 서면서 발목을 잡혀 온 이 회장의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대법원까지 재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무죄나 집행유예 판결이 나올 경우 이 회장의 ‘운신의 폭’이 비교적 넓어지면서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1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반도체 1위’ 타이틀 인텔에 뺏겨…2년만

취임 이후 이 회장이 줄곧 강조해왔던 ‘초격차’라는 키워드가 무색하게, 총수의 ‘재판의 시간’을 거친 삼성전자는 지난해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에 1위를 내줬다. 특히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분야에서의 패배는 뼈아프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자리를 인텔에 내줬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전 세계 반도체 업체의 2023년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인텔의 지난해 매출은 487억 달러로 399억 달러를 기록한 삼성을 제쳤다. 인텔이 1위를 탈환한 것은 2년 만이다.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11% 감소했고, 메모리 부문의 매출은 전년보다 37% 줄었다. 인텔의 매출도 전년 대비 16.7% 감소했지만 삼성전자의 매출 감소 비중(37.5%)이 더 컸다. 서버 및 PC칩 등으로 사업 영역이 분산돼있는 인텔이 반도체 매출 감소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 매출 비중은 7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집중도를 낮추기 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매출 기준 시장 점유율은 12.5%(2023년 3분기·트렌드포스)에 불과하다. 57.9%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서버 등 대량의 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인 HBM 시장 주도권은 SK하이닉스에 내줬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4세대 HBM인 HBM3를 양산하고, 지난해에는 12단 적층 HBM3를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새로운 AI 서버 시장에 주목한 SK하이닉스는 초창기부터 AI GPU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지닌 엔비디아와 협력해왔다.

삼성전자는 AI 확산으로 수요가 폭증하는 HBM의 판매량을 늘려 실적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시설 투자에 역대 최대 금액인 53조7000억원을 투입하고, 올해 HBM 공급 물량을 2.5배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에 대한 선고는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 삼성의 ‘초격차 투자’ 행보뿐 아니라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고 전체 매출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대형 인수합병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시계’는 2017년 전장 사업강화를 위해 하만을 인수한 이후 멈춰 있는 상황이다.

17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 위치한 SAP센터에서 개최된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갤럭시 S24' 시리즈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미국 새너제이에 위치한 SAP센터에서 개최된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갤럭시 S24 시리즈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스마트폰 출하량서 애플에 밀려…13년 만에 1위 내줬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경쟁사인 애플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 출하량 점유율은 전년보다 2.3% 하락한 19.4%였고, 애플은 전년보다 1.3% 상승해 20.1%의 점유율을 보였다.

애플의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은 2억3460만대로 삼성전자의 출하량(2억2660만 대)를 넘어섰다. 그동안 비교적 고가의 아이폰을 판매하는 애플은 ‘매출’에서, 중저가 전략을 함께 쓰는 삼성전자는 ‘출하량’에서 1위를 지켜왔지만, 지난해에는 출하량 점유율마저 애플에게 추월당한 것이다.

삼성은 인도나 남미, 아프리카 등 국가에서 중저가형 스마트폰인 A시리즈를 통해 출하량을 견인해온 바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며 가격을 중시하는 중저가 스마트폰 소비자들의 수요는 줄었고, 경기에 영향을 덜 받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 비중은 커졌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선호 현상이 나타나자, 전체 출하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애플의 출하량은 3.7% 상승했다. 나빌라 포발 IDC 연구원은 “공격적 판매 정책과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이 프리미엄 제품 구매에 부담을 줄였다”고 분석한 바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S시리즈와 Z시리즈 등 프리미엄 라인에 집중 전략을 펼치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샤오미 등 다양한 브랜드가 중저가 전략으로 득세한 것도 시장 상황에 영향을 줬다. 샤오미의 시장 점유율은 12.5%까지 늘었고, 오포는 8.8%, 트랜션은 8.1%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면서 동남아나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격 경쟁력을 보였다.

‘세계 최초 AI 스마트폰’의 흥행을 이어가야 한다는 과제도 이 회장 앞에 놓였다. 삼성전자는 최근 내놓은 갤럭시 S24 시리즈를 통해 애플과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점유율 격차를 좁혀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600달러 이상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애플이 71%, 삼성전자가 17%로 큰 격차를 보인 바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