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불길 뛰어든 대가 ‘月 8만원’…“죽어야만 주목 받나”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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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진화수당 24년째 동결…간병비는 日최대 6만원대
야간 출동 간식비도 ‘3000원’ 머물러…“라면 먹으며 버텨”
화재 진압을 끝낸 소방관이 현장에 생수가 없어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공병삼 소방위 제공
화재 진압을 끝낸 소방관이 현장에 생수가 없어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공병삼 소방위 제공

“불과 두 달 전 제주에서 한 소방관을 떠나보내고 쓰라린 가슴을 달래기도 전 경북 문경 화재로 두 분의 젊은 소방관을 또 다시 보냈다. 죽어야만 주목받는 조직인 소방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책임져야 한다. 선거철이면 소방관 지원을 담은 공약이 잇따르지만 이내 사라지고 만다. 이제라도 소방관들의 요구에 국회와 정부가 책임지고 해답을 찾아와야 할 차례다.”

또 다시 동료를 잃은 소방관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절규와 호소를 쏟아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현장의 외침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처우 개선은 제자리 걸음이라며 ’말’이 아닌 실질적 개선과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24년째 8만원인 ‘화재진화수당’…간병비 지원도 열악

5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북 문경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가 목숨을 잃은 고(故) 김수광 소방장과 박수훈 소방교를 애도했다.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동료들이 쓰러질 때마다 처우 개선 약속이 반복되지만 식대나 수당조차 수십년째 바뀌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화마에 뛰어든 대가로 받는 ‘화재진화수당’은 24년째 월 8만원에 멈춰있다. 이 수당은 1990년 월 4만원으로 신설된 후 11년 만인 2001년 월 8만원으로 인상됐다. 이후 13년이 흐른 현재까지 동결이다.  

산불 등 진압이 어려운 화재와 ‘대형화재’(사망자 5명 이상 또는 사상자 10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화재)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는 바뀐 게 없는 셈이다. 

출동건수에 비례해 받는 ‘출동가산금’도 3000원에 묶여 있다.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할 경우 처음 3000원을 받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출동 때는 받지 못한다. 네 번째 출동 때 다시 3000원을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내근직 근무자는 받을 수 없다.    

22년 차 소방관 김동욱 소방위는 “수십년 전부터 소방관들이 수당을 인상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매번 묵살되다가 소방관들이 순직하고 나니까 또 지원책이 거론된다”며 “무늬만 국가직 공무원”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그는 “화재 대응 단계가 올라가면 내근직 근무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도 화재 진압에 투입된다”고 주장했다. 소방관 내근직을 다른 직업과 동일선상에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방관이 공무 수행 중 부상을 입어도 간병비 지원은 열악하다. 현행 소방관 간병비는 하루에 4만4000원에서 6만7000원 사이다. 민간 시세와 비교하면 3분의1 수준이다.

소방관이 민간보험을 가입하려고 해도 고위험 직종으로 분류돼 보험료가 높게 책정되거나 가입이 거절되기도 한다. 21년 차 소방관 공병삼 소방위는 “15년 전 급성 출혈성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민간 보험을 들려고 하니 보험사로부터 거절당했다”라며 “장내 출혈은 제때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교대 근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특징인데 당시에는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해 간병비 지원도 못 받았다”고 호소했다.

소방관들이 출동벨 소리를 듣고 컵라면을 먹다 말고 화재 현장으로 떠난 모습 ⓒ공병삼 소방위 제공
소방관들이 출동벨 소리에 컵라면을 먹다 말고 화재 현장으로 떠난 모습 ⓒ공병삼 소방위 제공

“자장면 값 2.8배 올랐는데 27년째 간식비는 그대로”

밤이나 새벽 시간대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에게 지급되는 간식비가 ‘1인당 3000원’으로 책정된 점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에게는 인당 3000원의 ‘출동간식비’가 지급된다. 출동 횟수에 상관없이 한 번 지급되며, 구조·구급 상황에 출동하는 소방관들은 30분 이상 활동을 해야 받을 수 있다.

공 소방위는 “밤새 화재 진압을 하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된다.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 먹으려면 3000원의 간식비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며 “별 수없이 동료들과 서에 들어와서 라면을 끓여먹는다. 구내식당에 김치 정도는 있으니까 밥솥에 남아있는 밥을 말아서 야식으로 먹는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마저도 매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덜 배고픈 날에는 참기도 한다”고 했다. 

1997년 도입된 간식비는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고 28년째 3000원으로 동결돼있는 상태다. 서울과 세종, 충북, 전북 등만 5000원으로 인상했고 나머지 소방본부는 30여년 전 그대로다.

서민 체감 물가를 잘 나타내는 자장면 가격을 비교해 보면 물가 상승률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 등에 따르면, 1997년 자장면 값은 2500원 정도였지만 2023년 12월 7000원을 넘어섰다. 김밥 한 줄 가격은 3323원(2023년 12월 기준)이다. 대다수 소방관들이 하루 간식비로 김밥 한 줄도 못 사 먹는 셈이다.

한편 여야는 지난 1일 경북 문경 순직 소방관들을 잇따라 조문하면서 앞다퉈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화재진화수당을 언급하며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동결돼 있다)”며 “저희가 즉각 인상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소방관의 근무환경이나 안전장구, 이런 부분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더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개선책 논의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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