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당 합병’ 족쇄 풀고 ‘초격차’ 끈 다시 조인다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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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 판결
회장 취임에도 조용한 행보 벗어나 경영 보폭 넓힐 듯
오는 3월 등기이사 복귀 관심사…대형 M&A는 언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리스크’ 부담에서 벗어났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에 대해 검찰 기소 3년5개월여 만에 무죄 판단을 받았다. 향후 검찰의 항소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2016년 국정농단 의혹에 연루된 이후 계속된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향후 이 회장의 행보도 한층 가벼워질 전망이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정당성을 사실상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은 셈이라 경영 보폭이 전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잇는 비전 제시를 비롯해 대규모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집행유예 아닌 무죄…사법리스크 완전 해소까진 2~3년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은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 이후 법원을 나선 이 회장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검찰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11월 결심 공판에서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 근간을 훼손하고, 각종 위법이 동원된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어 항소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검찰 측이 항소를 진행할 경우 대법원 판단까지는 최소 2~3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당장의 경영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평가다. 우선 이 회장의 혐의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항소심 과정에서도 한결 부담을 덜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아닌 무죄라는 점에서 삼성 측은 더욱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등기이사 복귀 통해 본격 책임 경영 나서나

이에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22년 10월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활동에는 제약이 있었다. 공판 출석으로 해외 일정 수행에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고, 재판 과정에 영향을 줄 만한 대외적인 행동이나 발언은 크게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재계에선 이번 무죄 판결로 인해 전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등기이사 복귀다. 이 회장은 2019년 10월 사내이사 임기 만료 이후 미등기 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한 미등기 임원이다.

하지만 이미 회장직에 오른 지 1년이 넘었고 ‘책임경영’을 위해 등기이사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르면 오는 3월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 등기이사 선임이 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 회장은 이날 판결 이후 “등기이사 복귀 계획은 있나”라는 질문에 답하지는 않았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이은 새로운 비전 제시 여부도 관심사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 인재 양성, 투자, 기술력 등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대외적인 메시지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삼성 안팎에서는 ‘뉴삼성’에 관한 청사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세탁기 영상’ 보고 신경영 선언…‘아이폰 영상’ 이후 비전 제시?

이런 가운데 이 회장은 올 초 사장단 회의에서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를 비교하는 영상을 시청하며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세탁기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사내 고발영상을 보고 출장지인 프랑크푸르트로 임원들을 불러 모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을 발표한 것과 겹친다는 해석이다.

대규모 투자, 특히 대형 M&A 가능성도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2017년 전장업체 하만 인수 이후 매년 M&A 가능성을 언급해왔지만 이렇다 할 결과물은 없었다. 인수 후보로 올랐던 기업들의 몸값이 올라간 이유도 있지만 대형 투자를 결정할 총수의 부재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재계에선 삼성전자가 올해 본격적으로 M&A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초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대형 M&A는 착실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는 뭔가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M&A와 관련해 삼성 측도 지난 연말 조직 정비를 통해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신사업 발굴을 목적으로 미래 사업 부문을 담당하는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해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을 단장에 임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1심이긴 하지만 무죄 판결에 이재용 회장은 물론 삼성그룹 전체가 한시름 덜었다”며 “사법리스크 부담은 일부 해소했지만 대내외적으로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이 회장의 경영능력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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