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교사 동원말라”…‘폭탄 돌리기’된 늘봄학교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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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 10명 중 9명이 ‘늘봄학교’ 전면 도입 반대
공무원노조 “지방 공무원 업무 가중…정식인력 충원 없어”
지난 3월2일 오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입학식에서 1학년 학생들이 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1학년 학생들이 교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 달 신학기를 앞두고 교육계가 들끓고 있다. 저녁 8시까지 초등학생을 학교에서 돌봐주는 ‘늘봄학교’의 시범 운영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돌봄 주체인 이해 당사자들이 전부 집단 반발에 나서고 있어서다. 이들은 정부가 교육 주체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졸속 추진’을 했다며 분노를 표했다. 결국 정부는 늘봄학교 운영의 핵심인 실무진조차 설득하지 못한 채 총선을 앞두고 발표를 서둘렀다는 비판을 직면하게 됐다.

7일 교육부에 따르면, 늘봄학교는 올해 1학기부터 초등학교 2700곳에 시범 운영되고 2학기에는 전국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된다. 늘봄학교는 초등학교에서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원하는 학생에게 다양한 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제도로,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고안한 정책이다. 학교가 출·퇴근 시간대 아이를 맡아 맞벌이 부부나 저소득층의 돌봄 부담을 국가가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설익은 늘봄학교 확대 정책에 현장은 우왕좌왕

그러나 늘봄학교 업무에 관여하게 될 일선 교사, 지방직 공무원, 교육 공무직 그 어느 쪽도 늘봄학교 업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초등학교 교원 10명 중 9명은 늘봄학교 전면 도입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시사저널이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원 1만1101명 중 92.4%(1만252명)가 늘봄학교 전면 도입에 반대했다. 이들은 늘봄학교 운영 교사에게 ‘승진 가산점’을 부여하거나 ‘수당’을 지급하는 유인책에도 각각 83.4%, 56.9%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업무 가중’이다. 정부는 기간제 교원 2250명을 한시적으로 배치하고, 하반기엔 공무직·단기 계약직 등 6000명을 채용해 현장 교원에게 업무 전가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지난해 일부 지자체에서 늘봄학교를 시범 운영하는 동안 담당 인력을 구하지 못해 교원이 투입된 적도 있다”며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이기백 전국교직원노조 초등위원회 사무국장은 “소규모 학교는 교감이 늘봄학교 총괄 업무를 맡기도 하는데, 관리자인 교감이 교사에게 업무 지시를 하면 교사 입장에서 어떻게 거절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교사들은 늘봄 전담 조직이 생긴다고 해도 담임교사가 학교폭력이나 안전사고 등의 책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결국 사건 수습은 담임교사가 맡고 이 과정에서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국장은 “담임교사는 태권도 학원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도 해결해달라는 학부모 민원을 받아내고 있다”며 “현장에서 나오는 우려를 해소하지도 않고 정부가 설익은 발표를 내놓는 것은 당장 4월 총선 표심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경기도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아홉 번째,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경기도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아홉 번째,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교사들은 늘봄학교 업무를 지자체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국 시도교육청 공무원들은 학교 내 설치된 늘봄학교의 총괄 업무도 거부하는 상황이다. ‘서이초 사건’ 등으로 교권 수호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들끓자 정부가 ‘교권 눈치 보기’에 나서 공무원이 투입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전태영 전국공무원노조 교육청본부 사무차장은 “늘봄학교 업무로 시설·급식·회계 등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텐데 정식 인력 충원에 대한 계획은 정부가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포장지만 잘 싸서 정책을 발표하고 지방직 공무원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은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사에게 분리된 늘봄학교 업무를 맡게 될 교육 공무직의 부담도 상당하다. 정부가 늘봄학교에 지원한 모든 학생을 받겠다고 하면서 업무를 해낼 비정규직이 과밀 돌봄 스트레스에 놓였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박성식 정책국장은 “늘봄학교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돼있어 우왕좌왕하는 현장이 상당수라 결국 돌봄 전담사의 업무만 가중되게 생겼다”며 “업무 가중에 따른 처우개선의 약속 없이 정책 홍보에만 급급한 모습이 총선을 겨냥한 움직임이지 않겠나”라고 비판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늘봄학교 전국 확대는 꼭 추진해야 하지만 지역, 학교별 여건이 모두 달라 쉽지 않은 과제”라며 “교육부, 교육청, 학교 등 교육당국도 노력하겠지만 선생님, 학부모, 지자체, 관련 기관, 단체 등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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