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 수수료 없앴더니 판치는 ‘환치기’?…은행권, 꼼수 막기 골몰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0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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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무료 환전’에 환투기꾼 등장…결국 1회 입금한도 제한
수수료 경쟁에 시중은행도 합류…“‘환리스크’ 관리 철저히 할 것”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모습 ⓒ연합뉴스

토스뱅크가 지난달 출시한 외환통장의 1회 입금한도를 1000만원으로 제한했다. 환전 수수료가 없는 외환통장을 악용한 일부 고객들의 ‘환치기’가 발견돼서다. 은행권에서 무료 환전 서비스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외환 투기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토스뱅크는 지난 5일 ‘외환통장 상품에 1회 입금한도를 1000만원으로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토스뱅크는 기존 월 환전 30만 달러(약 4억원)의 환전 거래 한도만을 두고 있었는데, ‘환치기’ 과열 현상이 포착되자 1회 환전 한도를 도입한 것이다.

환치기는 통상 은행 등 외환업무취급기관을 통하지 않고 세금이나 수수료를 회피할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외환 거래를 말한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는 불법 행위다. 토스뱅크에서 발생한 이 같은 거래 행위는 규모가 크지 않아 불법의 소지는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단타’ 차익을 노린 환투기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앞서 토스뱅크는 지난달 18일 외환을 사고팔 때 모두 환전 수수료가 없는 외화통장을 출시했다. 월 한도도 4억원에 달하는 데다 전 세계 17개 통화에 대해 100% 환율 우대 혜택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란 평을 얻었다. 재환전도 무료로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출시 3주 만에 ‘제로’ 수수료를 이용해 한 번에 1000만원 이상을 다빈도로 환전하는 투기성 거래가 확인됐다. 소수의 투기성 이용자들이 이 같은 거래 행위를 반복하자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1회 입금 한도를 1000만원으로 제한했다는 게 토스뱅크의 설명이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통해 환전에 일시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고객은 전체 고객 0.1% 내외로 그 수가 매우 적지만, 이들의 환전액이 전체 환전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등 우려되는 수준의 과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정부에서 허가 받은 외국환은행으로서 보다 보수적으로 소비자보호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내린 조치”라고 밝혔다.

김승환 토스뱅크 외환 서비스 프로덕트오너(PO)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외환 서비스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외환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토스뱅크 제공
김승환 토스뱅크 외환 서비스 프로덕트오너(PO)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외환 서비스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외환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토스뱅크 제공

환전 수수료 ‘제로’ 물결 퍼진다…환투기 횡행할까

현재 은행권에선 환전 수수료 ‘제로’ 경쟁에 불이 붙었다. 토스뱅크의 외환통장 출시 이후 무료 환전 서비스는 시중은행으로 옮겨붙는 모습이다. 

하나은행은 토스뱅크 외환통장 출시 당일 26종 통화에 대해 환율 우대 100%를 적용하는 하나카드의 ‘트래블로그’ 체크카드 발급을 전국 영업점에서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오는 14일 전 세계 30종 통화에 대해 100% 환율 우대 혜택을 제공하는 ‘쏠(SOL) 트래블 체크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토스뱅크의 외환통장 등장 8일 만에 ‘쏠(SOL) 트래블 체크카드’ 출시를 예고한 바 있다.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이에 KB국민, 우리, 농협 등 다른 은행도 환전 무료화 서비스 출시를 검토중이다.

그간 시중은행은 외화를 살 때와 팔 때 수수료를 책정해왔다. 미 달러 기준으로 대다수 은행의 일반영업점에서 1.75%의 수수료를 적용하는 식이다. 은행은 여기서 발생한 차익을 바탕으로 조달 비용, 운영비 등을 충당하는 등 수수료 이익을 얻어왔다. 

때문에 은행이 환전 수수료를 100% 면제한다는 것은 비이자이익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결국 일부 역마진을 감수하고서라도 고객 유치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은행권에 번지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전 수수료를 포기한 것을 마케팅 비용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며 “당초 개인에게서 얻는 수수료 수익도 크지 않아, 수수료를 조정해서라도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 간 수수료 경쟁이 본격화 되면 환치기와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요 은행의 환전 수수료 부담이 사라지면서 투기성 이용자들의 수요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에선 투기 문제를 인식하고 관리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도 서비스 출시에서 발생할 '환치기'와 같은 리스크를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이 같은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거래 모니터링 등 면밀한 안전장치를 마련 중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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