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의사 증원’ 이유로 파업하는 유일 국가…희소가치 고수하려 해”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19 17: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들 “의료 체계 비슷한 日·주요국, 증원 반발한 파업 無”
의협 “의료 체계·의사 인력 배치 다른 나라와 비교 못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준비하는 가운데 2월12일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준비하는 가운데 2월12일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가시화 된 가운데 국민 목숨과 건강을 볼모로 한 ‘대정부 투쟁’이 한국에서만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 파업을 두고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희소가치를 고수하려는 한국 사회의 이상한 고집”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대척점에 선 의사 단체는 “의료체계가 다른 외국과 우리나라를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반발한다.

전공의 줄사직으로 병원 ‘블랙아웃’이 불가피해 진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의대 증원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사이 주요국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의사 수 확대에 속도를 냈고, 증원 자체에 대한 의사의 집단 반발은 없었다는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해외 의사 파업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의사들이 의대 증원을 반대해서 파업한 경우는 없다”며 “의사가 정부에 반발해 집단행동 한 경우는 주로 임금이나 연금 인상 목적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의대 증원이라는 정부 정책 자체에 반대해 대규모 파업이나 집단행동에 돌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과 의료체계가 유사한 일본의 사례를 짚었다. 그는 “일본은 2008년 이후로 의대 정원을 약 1600명 늘렸는데 의사 파업이 없었다”며 “일본 의사들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공익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고령화 추세에 맞춰 지역 의료 수요를 추계한 ‘지역 틀’을 적용해 지난 10년간 의사 인원 4만3000여 명을 늘리고 의대 정원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차이점은 의사를 대표하는 단체의 구성 및 역할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의사 파업을 연구해온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일본이 의사 파업 없이 의대 증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의사협회 구조로도 짚어볼 수 있다”며 “일본의 의사협회는 간선제지만 한국은 직선제로 선출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선제로 선출된 한국 의협은 의사들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서 행하는 ‘이익단체’ 역할에 그친다”며 ”전문가 단체로서 의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내부 규율의 역할은 거의 시행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일본 뿐 아니라 독일과 영국도 각각 의대 정원을 6000명과 6361명 확대하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이를 막기 위한 의사 단체 반발이나 집단행동은 없다. 

한국보다 인구가 많은 독일(8317만 명)은 공립 의과대학 총 정원이 9000명에 달하지만 정부는 이를 1만5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토마스 슈테펜 독일 연방보건부 차관은 지난해 이기일 복지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독일의 의대 정원 또한 충분치 않아 연내 5000명 이상을 증원하려고 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독일에는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가 없다”고 전했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영국(6708만 명)도 2020년에 의대 42곳에서 8639명을 뽑았고, 2031년까지 1만5000명으로 확대된다. 

2월1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관계자가 가운을 손에 들고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2월19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관계자가 가운을 손에 들고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전하는 ‘증원 합의’…해외는 의사가 더 반긴다? 

외국에서 의대 증원을 둘러싼 진통이 적은 것은 공공의료 비중이 높고, 부족한 의사 수에 대한 깊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해외의 경우 정부가 구체적 대안을 내놓으며 정책을 추진하지만 한국은 설익은 대책을 반복해 내놓는 탓에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외국은 의사 인력 확대로 ‘내 파이가 줄어든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고 했다. 정 교수는 “기본적으로 주요 선진국에선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율과 공공병원 자체 규모가 매우 크다”면서 “의사가 충분히 공급돼야 의료 현장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해 오히려 의대 정원을 찬성”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체계가 뒷받침 되니 의정 간 합의가 도출될 필요 없이 의대 정원 확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의사단체가 직접 나서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한국과 정반대”라고 전했다. 

반면 한국은 ‘의대 열풍’에 따른 과도한 경쟁으로 의사의 희소가치를 고수하려는 직역 내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필수 의료계에 의사가 안 모이는 데 대해 소득이 적다는 이유가 제기된다”면서 “하지만 일반적인 국민 관점에서는 그마저도 고임금에 속한다”고 했다. 이어 “의사들 사이 임금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 결국 고임금이 보장된 인기 과로 사람이 몰리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입체적인 계획 없이 의대 증원 정책을 시행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지난번 의대 증원 규모 발표 전에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대책이 너무 추상적이었다”며 “지역완결형 필수의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대 증원 발표만 전했다”고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는 20일 병원을 떠나겠다는 전공의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하며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타협 가능성은 요원하다. 의사 단체는 한국과 외국의 의료 시스템이 엄연히 다른 상황에서 의사 집단행동을 불법으로 몰고 가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다.   

박명하 대한의사협회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정부와의 타협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 회장은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을 통보하고 해당 정책의 진행 속도와 시점을 의료계와 타협하지 않겠다고 겁박한 상황”이라며 “이렇게까지 강경 대응한다면 저희로선 분노와 투쟁 열기를 더 키울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박 회장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사단체가 파업에 돌입한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다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당초 의료체계와 의사 인력 배치 방법이 완전히 다른 해외 사례와 우리나라를 아예 비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한국과 달리 선진국들은 공공의료 시스템이 자리 잡았기에 오히려 의사 수가 늘어날수록 의사 1인당 업무량이 줄어들기에 의대 증원을 찬성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나라와 의료체계가 유사한 일본 또한 의대 정원 감소에 나선 적 있다”고 반박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