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떡하나요”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까지 직격탄
  • 정윤경·강윤서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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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환자 덮친 의료공백…진료도 입원도 연기, 또 연기
“아이 수술 때 전공의 꼭 필요해”…환자 가족 발 동동
집단휴진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2월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정문을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2월2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정문을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최근 정부 조치에 따라 정상적인 진료가 이뤄질 수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 진료를 받아야 하는 증상이 발생한 것이 아니면 이번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진료를 연기하시기 바랍니다. 진료가 매우 지연돼서 당일 내원한 모든 환자를 진료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30개월 된 자녀의 소아정형외과 진료를 20일로 예약한 김아무개(26)씨는 전날 서울대학교병원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김씨는 “갑자기 오늘 아침에 진료를 봐줄 수 있다고 번복해서 병원을 찾았는데 전공의 사직으로 진료가 지연돼 결국 집에 가야 한다”고 발걸음을 돌렸다.

전공의들의 집단휴진을 하루 앞둔 2월19일 서울대학교병원이 환자 보호자에게 보낸 메시지 ⓒ독자 제공
전공의들의 집단휴진을 하루 앞둔 2월19일 서울대학교병원이 환자 보호자에게 보낸 메시지 ⓒ독자 제공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전공의들이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집단휴진에 들어가면서 ‘의료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았지만 수술·입원 연기 등으로 의료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정오께 찾은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1층에는 소아환자와 보호자 300여 명이 진료나 입원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소아환자의 보호자 A씨는 “여기저기서 진료 거부를 당해 4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했다”고 했다.

어린이병원 진료실 앞에서 만난 안아무개(44)씨는 “3세 딸이 얼마 전 간 이식을 받아 갑자기 딸에게 열이라도 나면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다른 환자가 전날 병원으로부터 퇴원 통보를 받았다는 얘기를 해줬다. 입원 환자도 전부 내보내는 분위기인데 입원 수속이 가당키나 하겠나”라고 전했다.

당장 입원·수술을 앞둔 소아청소년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림프종을 앓는 7세 환우를 데리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함아무개(41)씨는 “우리 아이는 언제 위급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혹시라도 아이가 수술을 받게 되면 전공의들이 꼭 필요하다고 들었다”며 “아이가 수술할 때 의사가 부족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정말 불안하고 심란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정기 검진을 계속 받아야 하는데 파업 때문에 예약도 못하고 일정도 밀릴까 봐 제일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만난 B씨는 이날 전신 마취 수술을 앞둔 6세 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B씨는 “수술이 연기되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며 “수술을 못 하게 됐다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자식 수술을 앞둔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이 무겁다”고 전했다.

전공의들이 집단휴진에 나선 2월20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료진이 대화를 나누며 직원 전용 출입구를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전공의들이 집단휴진에 나선 2월20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료진이 대화를 나누며 직원 전용 출입구를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인파를 뚫고 지나가던 한 의료진은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진료에 차질이 없느냐’는 질문에 “별 차이 못 느끼고 있다. 아직까지 평소랑 똑같다”며 선을 그었다. 서관 암 센터에서 응급의료센터로 이동하던 또 다른 의료진은 전공의 근무중단에 대해 “전할 말 없다. 관심 없다”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빅5 병원 중 하나인 세브란스병원은 이날 병원 곳곳에 “전공의 사직 관련으로 진료 지연 및 많은 혼선이 예상된다”며 “특수 처치 및 검사가 불가한 경우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였다. 세브란스병원의 안과 등은 사실상 개점휴업인 상태고 외래 진료도 대폭 줄였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경우 당장 21일부터 수술 일정을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기준 수술을 30% 줄였다. 서울성모병원도 사실상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전날 밤 11시 기준 수련병원 100곳 전공의 절반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이중 4분의1인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근무중단을 예고한 시점이 이날 오전인 만큼 이탈 행렬에 합류한 전공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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