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아닌가요?”…의사 집단사직에 총알받이 된 간호사들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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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공백’에 업무 급증…불법 경계서 불안감·혼선 가중
간호협회, 정부 PA 활용 방침에 “반대”…제도개선 요구 커져
2월2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2월2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이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의료현장 최일선에 선 간호사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집단사직에 돌입한 전공의들이 현장을 이탈하면서 의료공백과 각종 민원 부담이 간호사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면서다. 정부가 내놓은 대응책조차 간호사들을 불법의 경계로 몰아넣으면서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다. 

21일 소속 전공의 대부분이 자리를 비운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진료와 안내로 쉴새 없이 움직이는 간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의료 물품을 갖고 이동하던 한 간호사는 출근 직후 업무파악 중에 있다면서 “재원환자 수가 줄고 업무 일정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병동 소속 간호사들이 ‘전공의’를 언급하며 근무표 조정 관련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병실 복도를 지나던 간호사들은 ‘의료 공백으로 업무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복잡하다”며 “식사 시간이 거의 없어 얼른 가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 담당 업무를 간호사가 대신하면서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불안감과 혼선도 가중되고 있다.

‘빅5’ 병원 소속 간호사로 추정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케모포트(정맥을 통해 심장 근처의 굵은 혈관까지 삽입되는 관) 주사를 넣는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시행한다”면서 “(해당 업무를 간호사가 해도) 불법 의료행위가 아닌지”를 묻는 글을 올렸다.

작성자가 게시한 ‘케모포트 지원간호사 운영’이라는 제목의 안내문에는 ‘간호사 1명 배치’, ‘2월20일부터 시작’, ‘주말에도 평일과 동일하게 운영’, ‘사전교육’ 등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소형 의료 장치에 해당하는 케모포트는 국소마취 후 피부 절개가 필요한 의료행위다. 간호사가 아닌 외과의 등 의사가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전공의 집단사직 여파에 이를 시술할 의사가 부족해지면서 간호사에게 이 업무를 맡기는 병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간호사들은 “우리 병원에선 이미 하고 있었다”며 현장에서의 만연한 업무 떠넘기기를 꼬집기도 했다.  

2월2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2월2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시사저널 강윤서

‘유령 신세’ PA 간호사…간협 “업무 범위 명확히 할 것”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료 공백이 점차 커지면서 간호사들의 불법적 의료 행위를 부추기는 관행도 재조명 되고 있다. 정부가 집단행동 장기화에 대비해 PA(진료보조) 간호사 활용을 검토한다고 했지만, 정작 현실에선 ‘무면허 의료행위’에 상시 노출돼 법적 보호조차 받을 수 없는 처지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3년여 간 PA 간호사 인력은 2만 명을 넘긴 것으로 추계되지만 이들 모두 법적 보호를 못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PA는 수술·검사·응급상황 등에서 의사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를 뜻한다. 국내 의료법상 간호사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만 가능하지만 사실상 국내 PA 간호사들은 수술 동의서 서명, 드레싱, 배설관리(인공항문·방광) 등 수술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전공의가 부족한 대학병원 필수의료 분야에서 PA의 역할과 필요성이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의료법에는 PA 면허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다. 현행법상 PA로 불리는 간호사들의 의료행위 상당 부분이 불법이라는 의미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정부의 PA 간호사 활용 방침과 관련해 사전 협의한 바 없다”며 “정부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PA를 투입하는 방침에 응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간협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임시방편으로라도 PA 포함 모든 간호사를 본래 업무 외 의사 업무에 투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동원령’ 예고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 관계자는 “전공의 업무중단이 본격화된 어제(20일) 간호사들에게 불법적인 업무 지시가 내려졌다는 신고가 벌써 접수됐다”며 병원의 불법 지시사항을 취합해 입장을 표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간협은 꾸준히 PA 간호사 업무범위를 명확히 해달라는 의사를 표명해왔다. 하지만 의사 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사각지대 해소는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4월 의료법에 존재하는 간호 관련 내용을 별도의 법안으로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표결이 진행, 결국 폐기됐다. 

간협은 병원과 의사 지시에 따라 고난도 의료행위를 수행하면서도 이에 따른 모든 책임까지 간호사들이 전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기형적 구조를 서둘러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간협 관계자는 “대부분 진료부서 소속인 PA들은 승진도 거의 안 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유령 같은 존재”라며 간호 인력 업무 범위에 대한 논의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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