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욕하다 닮아버린 개혁신당의 파국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5: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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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식 팬덤정치 드러나···새로운 정치적 대안의 출현 고대하던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

제3지대 빅텐트는 결국 무산됐다. 개혁신당 이낙연 공동대표는 2월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준석 공동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부실한 통합 결정이 부끄러운 결말을 낳았다”고 머리 숙이며 “다시 새로운미래로 돌아가 당을 재정비하고 선거체제를 신속히 갖추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 금태섭 대표의 새로운선택, 이원욱·조응천 의원의 원칙과상식이 발표했던 4개 세력의 합당 선언이 11일 만에 파기된 것이다.

이런 파국의 결말은 신당 세력 공동의 타격을 의미한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거대 양당 체제 아래에서 제3지대 신당 세력은 하나로 힘을 합쳐도 경쟁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런데 결국 통합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신당 세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광경들이 이어졌다. 기존 양당의 정치행태와 다르지 않은 밥그릇 싸움, 진흙탕 싸움의 모습을 보였으니 자신들이 새로운 대안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이낙연 공동대표와 이준석 공동대표가 결별 전인 2월13일 개혁신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낙연 공동대표와 이준석 공동대표가 결별 전인 2월13일 개혁신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준석 사당’ 의도했다는 비판 피할 수 없어

총선을 불과 50일가량 앞둔 중대한 시점에 이들은 어쩌다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한 것일까. 한마디로 통합 개혁신당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결과다. 한때 이준석 대표를 “우리 정치에 매우 드문 인재”라고 치켜세웠던 이낙연 대표는 이준석을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우를 범했다. 지난 대선 때도 윤석열이나 김종인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던 이준석이었다. 그런 이준석 대표가 생각한 통합은 철저하게 자신이 주도하는 개혁신당을 의미했다. 자신이 만든 개혁신당이 민주당 출신의 다른 신당 세력들을 흡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개혁신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총선 캠페인과 정책 결정 등에 대한 전권을 이준석 공동대표에게 위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낙연 공동대표는 허수아비가 되는 셈이다. 이낙연은 나가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해당 행위자에 대한 심사를 위한 심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의결했는데, 이는 배복주 정의당 전 부대표의 합류에 대해 비토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효율성을 이유로 이준석 대표 1인이 전권을 행사하겠다는 당 운영 방식은 ‘이준석 사당’을 의도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했던 일방적인 통치의 문제점을 본인이 똑같이 재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윤석열에게는 ‘바람풍’ 하라면서 자기는 ‘바담풍’ 한 것이다.

특히 정의당 출신 류호정 전 의원과 배복주 전 부대표의 개혁신당 합류에 대한 이준석 대표의 비토 입장은 갈등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준석 대표는 “류호정 전 의원의 주장들이 개혁신당 내에서 주류적인 생각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가능성이 약하다고 본다. 하지만 류 전 의원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막을 수 있는 방법론이 우리에게 존재하느냐에 대해서는 또 약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새로운선택에 소속된 류 전 의원의 참여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젠더관이 당내에서 주류적 생각이 될 수는 없음을 못 박은 것이다. 이 대표의 ‘이대남’ 노선을 비판해온 류 전 의원의 역할에 대한 선긋기였다. 개혁신당은 ‘이대남’ 노선을 추구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배복주 전 부대표의 합류에 대한 이준석 대표의 비토는 더욱 격하게 나타났다. 이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배 전 부대표는 전장연 시위를 옹호해 왔으며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장애·여성 인권활동가로서 활동해온 만큼 이 정체성으로 비례대표가 되어 정책과 법을 만들고 싶은 각오가 있다”고 합류의 배경을 언론 인터뷰에서 말하니 이준석 대표는 기가 찼던 것이다. 그래서 이준석 대표는 배 전 부대표를 향해 “법적 대표인 내 권한 내에서 공직 후보자 추천이나 당직 임명 등의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통합 개혁신당의 주류 시각은 (통합 전) 개혁신당 당원들의 생각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여러 세력이 통합했어도 개혁신당의 주류는 자신이 만든 개혁신당의 당원들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2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혁신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모습. 오른쪽부터 김종민, 조응천 최고위원, 이준석, 이낙연 공동대표, 양향자 원내대표, 금태섭 최고위원 ⓒ 시사저널 박은숙
2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혁신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모습. 오른쪽부터 김종민, 조응천 최고위원, 이준석, 이낙연 공동대표, 양향자 원내대표, 금태섭 최고위원 ⓒ 시사저널 박은숙

신당을 하겠다던 사람들 함께 패배자 돼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인물이 있다면 당내 논의를 거칠 일이다. 정치적인 논의와 절차를 거쳐 비례대표 후보나 지역구 후보 여부에 대한 여러 가지 판단을 당 차원에서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당 차원의 논의조차 없이 당 대표 개인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누구누구는 안 된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는 것은 사당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낙연 공동대표에게도 책임이 적지 않다. 본인이 표현한 대로 ‘부실한 통합 결정’으로 정치 세력의 통합과 결별을 아이들 장난처럼 하게 된 데 대한 책임이 따른다. 이낙연 대표로서도 정치적 리더십과 신뢰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결과가 됐다.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이준석식 팬덤정치다. 이준석 대표의 지지자들은 연령적으로는 20·30대, 이념적으로는 보수 성향 층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가 이낙연 대표 등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과 통합을 선언하자 지지자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특히 이준석 지지자들은 류호정과 배복주 합류에 크게 반발했다. 결국 이준석 대표는 자기 팬덤들의 반발을 진정시키기 위해 류호정이나 배복주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태도를 드러내며 급기야 자신이 전권을 갖는 ‘이준석 당’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는 민주당에서 ‘개딸’ 정치 소리를 듣던 이재명식 팬덤정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욕하면서 닮아버렸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이준석 대표가 배복주를 비토하고 전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금태섭의 새로운선택 등의 존재감이나 입장이 보이지 않았던 점이다. 이번 사태로 망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신당을 하겠다던 사람들이 함께 패배자가 됐다. 거대 양당 정치에 등 돌리고 제3지대 새로운 정치적 대안의 출현을 고대하던 많은 사람에게 실망만 안겨준 꼴이 됐다. 

그들은 조금도 개혁적이지 않았다. ‘개혁신당’이라는 당명에서 ‘개혁’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됐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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