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애물단지 ‘용인 경전철’ 뒤에 그들이 있었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3 13: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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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공약으로 졸속 추진하고 수요 예측 연구용역 엉터리 진행
주민소송 파기환송심에서 214억여원 지급 청구하라 판결

경기도 동남부에 위치한 용인특례시는 경전철을 운행하고 있다. 수도권 전철의 한 노선으로 기흥구 구갈동에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까지 15개 역이다. 용인 경전철은 한때 ‘꿈의 경전철’로 불렸으나 혈세 먹는 애물단지가 됐다. 용인 경전철 사업에는 1조32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6월 완공됐지만 시행사인 캐나다 봄바디어와 최소수입보장비율(MRG) 등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면서 3년간 운행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용인시는 국제중재법원까지 간 끝에 패소해 7786억원(이자 포함 8500여억원)을 물어줬다. 이후 MRG 방식에서 운영비 부족분(295억원)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사업계약을 변경했다. 용인시는 이후 칸서스자산운용으로부터 3000억원을 조달하면서 용인경전철(주) 주주로 참여시키는 대신 캐나다 봄바디어 등 기존 투자자와는 결별했다.

용인 경전철은 2013년 4월부터 본격 운행에 들어갔지만 매년 적자가 누적되면서 용인시는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용인 경전철이 본격 추진된 것은 1999년 후반이다. 당시 예강환 후보는 그해 치러진 용인시장 보궐선거에서 ‘경전철 추진’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뉴시스
ⓒ 시사저널 이종현·뉴시스

너도나도 공약으로 내건 시장 후보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은 너도나도 ‘용인 경전철’을 주요 공약으로 올렸다. 이 선거에서 이정문 후보가 예강환 시장을 꺾고 당선된다. 이 시장은 2002년 9월에 봄바디어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 교통 수요 예측은 교통개발연구원(현 한국교통연구원·KOTI)에 용역으로 발주했다.

그런데 연구 용역 결과는 의외였다. 봄바이어컨소시엄이 제시한 것보다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2006년 기준으로 두 배, 2010년 기준으로는 세 배나 부풀려진 수치였다. 보통 민자사업의 경우 사업자는 교통 수요(예상 운임 수입)를 최대한 늘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만 최소 운영 수입 보장금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협상에서 유리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KOTI의 교통 수요는 사업자 측보다 낮아야 하는데도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용인경전철 사업은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한편에서는 계속 부실·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언론에서도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했다.

검찰도 여론을 주시하고 있었다. 2011년 9월 관할 수원지검은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해 내사에 들어갔다. 이후 한 시민이 당시 용인경전철㈜ 김학필 대표를 고발했고, 용인시의회에서도 수사를 의뢰해 왔다. 검찰은 내사에서 수사로 방향을 틀었다. 차맹기 특수부장(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은 특수부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검사와 수사관, 공인회계사 등 총 22명으로 초대형 수사팀을 꾸렸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경전철 사업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고, 관련 자료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주변에는 파봤자 허탕일 거라며 수사를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설사 죄를 밝혀내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수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차맹기 부장은 정공법을 택했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용인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경전철 사업을 민자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용인 경전철 사업이 부실로 추진되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야기할 것이 뻔했다”며 “국민들은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검찰이 국민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서비스가 무엇이겠는가. 이런 문제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로 총체적 부실 덩어리 드러나

수사팀은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한 후 용인시청과 용인경전철(주) 사무실 등을 잇따라 압수수색했다. 또 하청업체 등의 사무실에도 수사관들을 보내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닥쳤다. 수사팀은 휴일도 잊은 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약 6개월간 수사를 벌인 끝에 비리 전모를 밝혀낸다. 검찰 수사 결과 ‘용인 경전철’은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공약과 졸속 추진, 국책연구원의 엉터리 용역, 눈과 입을 다문 시의회와 언론이 합작한 ‘총체적인 부실 덩어리’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를 통해 먼저 KOTI 연구 결과가 사업자보다 높게 부풀려진 의문이 풀렸다. 한마디로 KOTI의 연구 진행 과정은 주먹구구식이었고, 결과는 엉터리였다. 수요 예측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구 통행 조사’도 하지 않았다. 해외 경전철과의 수요 비교도 생략했다.

더욱이 사업자인 봄바디어컨소시엄과 연구원들은 깊게 유착되어 있었다. 사업자 측은 연구원들에게 봄바디어 본사 방문과 시설 견학을 주선했다. 수요 예측 담당 연구원은 봄바디어의 용역업체에 중요 자료를 넘기기도 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연구원들에게는 선물이 제공되었다. 이런 유착 관계의 성과물이 바로 ‘용역 결과’였던 것이다. 연구원은 더 나아가 용인시에 봄바디어가 생산한 경전철까지 추천했다.

이로 인해 용인시의 협상력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사업자 측이 제출한 교통 수요를 줄일 명분도 사라졌다. 그때부터 용인시는 봄바디어컨소시엄에 질질 끌려갔다.

2004년 7월 용인시는 봄바디어컨소시엄을 사업시행자로 최종 선정한다. 이때 사업자 측은 용인시에 30년간의 MRG 약정을 요구했다. 시는 이를 수용했다. 실제 운임 수입이 예상치의 90% 미만이면 그 차액을 시가 메워준다는 내용이다. 같은 해 8월 봄바디어가 지분 60%를 소유한 용인경전철(주)을 설립한다.

KOTI가 잡은 경전철의 하루 이용 승객은 16만 명이었다. 반면 용인시가 2010년 경기개발연구원을 통해 분석한 결과 3만 명 미만으로 나왔다. 무려 13만 명의 차이가 난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용인시는 경전철 개통 후 30년 동안 용인경전철㈜에 약 2조5000억원을 보상해야 했다. 용인시가 경전철 공사를 완공하고도 개통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정문 전 시장은 사업 진행 과정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용인시 실무진이 13회 이상 문제점을 보고했으나 사업을 강행했다. 실시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용인시의회의 의결을 받아야 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이 전 시장은 용인시의회와 언론 등의 감시·비판 기능도 무력화시켰다. 그는 이를 위해 봄바디어에 경비를 요청했다. 이 돈(최소 1억2000만원 이상)으로 3회에 걸쳐 용인시의원 18명과 시민 등 총 37명에게 미국과 캐나다 여행을 주선했다. 용인시의회 의원 21명 중 18명이 여기에 참여했다.

이들의 방문은 겉으로는 경전철 견학이었으나 실제로는 골프, 도심 관광 등을 위주로 한 해외여행이었다. 이들에게는 최고급 호텔 등을 제공했으며 당시 용인경전철㈜ 김학필 대표가 현지에서 직접 안내했다.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이정문 전 시장에게 칼끝을 겨눴다. 실제 그의 이권 개입 사실이 드러난다. 용인 경전철 시공사를 압박해 자신의 동생이 운영하는 전력업체에 하도급을 주도록 한 것이다. 두 곳의 업체는 총 38억7000만원의 전기공사 하도급을 이 전 시장의 동생에게 주었다.

자신의 측근이 운영하는 업체에도 하도급을 주도록 요구해 19억원의 차량기지 공사 하도급을 받도록 했다. 이 대가로 1만 달러를 받았다.

검찰 수사에서 용인경전철㈜ 김학필 대표가 용역 대금을 과다 계상한 후 차액을 돌려받는 등의 방법으로 사업비 중 4억원을 횡령한 사실도 밝혀졌다. 김씨는 봄바디어의 국내 자회사인 BTK의 자금 2억원과 봄바디어가 인천도시철도 2호선 민자 사업권을 취득하기 위해 만든 컨소시엄의 자금 2억원도 횡령했다.

검찰에 따르면 캐나다 국적의 김씨는 사실상 봄바디어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 그는 봄바디어가 용인 경전철 사업권을 획득하자 470만 달러(약 45억원)를 받았다. 김씨는 또 성공 보수금을 스위스은행 계좌에 은닉했다가 아내(캐나다 국적)의 차명 계좌를 통해 국내로 들여온 후 부동산 구입 등에 사용했다. 그리고 성공 보수금에 대한 소득세 12억5700만원을 포탈한 것이 드러났다.

봄바디어는 이와는 별도로 김씨에게 해마다 4억~5억원씩 총 19억원을 활동비와 접대비로 지급했다. 검찰은 이 경비는 공무원이나 사업 관련자 등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정문 전 시장을 직무상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하도급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부정 처사 후 제3자 뇌물수수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하고, 용인경전철(주) 김학필 대표는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에서 이정문 전 시장은 징역 1년에 추징금 1만 달러, 김 대표는 징역 1년이 선고됐다.

2013년 10월 용인 시민들은 용인시가 이정문·서정석·김학규 전 시장 등 책임자들에게 1조232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으라며 주민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김학규 전 시장과 그의 보좌관 박아무개씨 등 일부의 책임만 인정하고, 다른 전직 시장이나 KOTI 등의 책임은 주민감사 청구에 포함돼 있던 게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직 시장 등의 책임을 추가로 따져봐야 한다며 재판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KOTI 같은 민간투자사업의 계약 당사자에게도 주민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2월14일 서울고법 행정10부(부장판사 성수제)는 주민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심과 달리 용인시가 전직 용인시장 등에게 214억여원의 지급을 청구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현 용인시장이 이정문 전 용인시장, KOTI, 담당 연구원에게 총 214억6000여만원을 용인시에 지급하도록 청구하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 전 시장의 후임 시장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지방자치단체의 민간투자사업 실패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공무원들의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가 됐다.

용인 경전철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2013년 4월19일 오후 용인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용인 경전철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주민소송단이 2013년 4월19일 오후 용인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10여년 걸린 주민소송 일부 승소 이끌어

용인 시민들이 주민소송을 낼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은 용인 경전철에 대한 검찰 수사였다. 당시 검찰 수사는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한 민자사업에 대한 최초의 수사로 기록됐다. 이전의 민자사업에 대한 수사는 공무원 뇌물수수 등 단편적인 것에 그쳤었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밝혀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몇 명을 기소하느냐는 실적 위주의 수사에서 벗어나 천문학적인 피해를 야기한 원인과 문제점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검찰은 수사 과정과 결과를 정리해 백서로 발간했는데, 민자사업 수사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차맹기 변호사는 용인 경전철 수사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구조적 비리가 잠재돼 있다. 검찰 수사는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비리를 발본색원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당시 수사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회 발전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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