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전면전 피했지만 국지전은 불가피…주총 결과 주목되는 이유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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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진·최윤범 재선임 안건 상정에 정면 충돌 피해
영풍, 배당 등 일부 의안에 반기…반대표 결집 시동
표결 통해 우호지분 윤곽 드러날 듯…분쟁 서막 오르나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지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장형진 영풍 고문을 중심으로 한 장씨 일가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최씨 일가가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선 정면 대결을 피하게 됐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올해 기타비상무이사 임기 만료를 앞둔 장 고문을 재선임하기로 결정하면서다.

하지만 표 대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대주주인 영풍이 배당과 정관 수정 등 일부 의안에 대해 반대 방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이번 주총을 계기로 경영권 분쟁이 본격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해 11월15일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에서 열린 니켈 제련소 기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해 11월15일 울산 울주군 고려아연에서 열린 니켈 제련소 기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지붕 두 가족’ 사상 첫 주총 표 대결

21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단일 최대주주 영풍(25.28%)은 전날 공시를 통해 고려아연의 3월 정기 주주총회 안건 중 배당 및 정관 변경의 일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표 대결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한 지붕 두 가족’ 75년 경영 속 두 일가의 주총 대결은 처음이다.

먼저 영풍은 배당금 축소를 문제 삼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고 2023년 결산 배당금을 5000원으로 확정하는 안건을 의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영풍은 “지난해 6월 중간 배당으로 주당 1만원을 배당한 것을 합산하면 지난해 현금배당액은 주당 1만5000원으로, 전년의 2만원보다 5000원 줄어든다”며 “이익잉여금이 약 7조3000억원으로 여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배당금을 줄인다면 주주들의 실망이 크고 회사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돼 주가가 더욱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영풍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배당이 이뤄지도록 수정 동의 안건을 제출했다.

영풍의 주장에 고려아연은 “당사는 주주친화적인 배당성향과 주주환원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배당주”라고 반박했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2023년 기말 배당 5000원에 더해 중간배당 1만원과 1000억원의 자사주 소각을 포함하면 주주환원율은 76%를 넘는다. 2022년(50.9%)에 비하면 주주환원율이 크게 높아진 셈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영풍 주장대로 5000원을 추가 배당할 경우 주주환원율은 96%에 달한다”며 “자사주 소각 등의 사안은 빼고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배당 관련 안건은 회사 경영상황, 글로벌 경기전망, 비용요인, 영업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 등 다양한 요인을 감안해 책정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고려아연 주장에 대해 영풍 측은 최근 2년간 이익 규모와 이익률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배당률이 올라간 것이라며 2022년 이후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 등으로 320만 주가 늘어난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영풍은 신주인수권 및 일반공모증자 등과 관련한 정관 변경에도 반대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정관에서 이제까지 외국 합작법인에만 제3자 배정을 할 수 있도록 했으나 이번 주주총회를 통해 이를 삭제한다는 방침이다. 이럴 경우 국내법인에도 제3자 배정이 가능해진다.

영풍 측은 표준정관은 창업 초창기 기업 운영에 필요한 정관을 손쉽게 제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라며 표준정관으로 사업을 계속 운영할 경우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체하기 어려워 업력이 오래될수록 기업의 역사와 전통, 사업의 특성을 반영한 정관으로 수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기업을 운영한지 수십 년이 넘은 상황에서 표준정관 도입은 상식에 어긋난다는 주장인 셈이다.

아울러 영풍과 고려아연은 동업 경영으로 회사 설립 초기 동의와 약속을 통해 정관을 만들었다면서 이러한 정관을 일방적으로 변경한다는 것은 양사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서로간의 약속을 깨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정관 변경은 상장사 97%가 도입한 상법상 표준정관을 도입하는 안건으로 상장사협의회가 권고하는 사항“이라며 “오랜 기간 정비하지 못했던 과거의 정관을 표준화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를 반대하는 것은 대한민국 및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경영을 하겠다는 취지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경영권 분쟁 전초전 초읽기…지분 매입 확대하나

당초 재계에서는 두 일가가 이번 주총에서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오는 3월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윤범 회장의 이사회 임기가 동시에 만료되는데 재선임 안건 상정 여부에 따라 주총에서 두 일가가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아연은 창업주 3세인 최 회장 취임 이후 최씨 일가 측에서 지분 확보에서 나서면서 계열분리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장 고문과 최 회장의 재선임 안건이 상정되면서 이사회 구성을 둘러싼 전면전은 피하게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영풍이 일부 의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하면서 사상 처음 안건 통과를 놓고 두 일가의 표 대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재계에선 이번 주총을 시작으로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주총 결과에 따라 두 일가의 우호세력 지분 윤곽이 드러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안건 가결 혹은 부결에 따라 패배한 쪽은 지분 매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재 최 회장 측이 33%, 장 씨 측이 32%로 비슷한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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