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허는 당이 웂어, 더 지켜보고 찍을겨”…충청 민심은 ‘표류 중’
  • 충청=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4 12:00
  • 호수 1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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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 격전지 르포① 충청]
민심 ‘바로미터’…尹 대통령 심판 vs 야당 심판 여론 ‘팽팽’
공주·부여·청양, 정진석-박수현 세 번째 리턴매치

“여당은 뭐 하는지도 몰겄고, 야당은 맨날 쌈박질만 혀. 잘허는 당이 웂어. 누가 더 잘허는지 지케 보구 찍을겨. 나는 이번이 젤로 어렵다니께”(충남 부여 거주 73세 김아무개씨), “원래는 항상 찍던 당이 있었는데 점점 고만고만한 것 같아서요. 사람이나 공약들 좀 보고 투표하려고요. 신당들도 나왔는데 거기도 한번 지켜봐야겠죠”(충남 홍성 내포신도시 거주 30대 성아무개씨).

4·10 총선을 50일도 채 안 남긴 시점에 시사저널이 직접 찾아가 만난 충청 유권자 다수는 이번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선뜻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선택 보류’ 상태다. 충청권은 항상 선거 때마다 민심의 ‘바로미터’로 평가된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역대 선거에서 충청 지역에 깃발을 꽂은 당이 전국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충청권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늘 엎치락뒤치락해 왔다. 즉 충청 유권자들은 한쪽 진영에 무조건적으로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최근 선거들만 봐도 알 수 있다.

2020년 총선에선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전체 의석 28석(충남 11석, 충북 8석, 대전 7석, 세종 2석) 가운데 민주당이 20석,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8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2년 후 대선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50.1%를 얻으며 45.9%의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4.2%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같은 해 치러진 6월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대전·세종·충남·충북 등 4개 광역단체장을 모두 차지하며 충청의 선택을 받았다. 또다시 2년의 시간이 흘러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는 그 표심의 향방이 어디로 향할까.

2월20일 공주시 상왕동 주민간담회에서 지역주민과 인사하는 정진석 의원(왼쪽 사진)과 2월21일 공주 산성시장 상인과 악수하는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 시사저널 임준선
2월20일 공주시 상왕동 주민간담회에서 지역주민과 인사하는 정진석 의원(왼쪽 사진)과 2월21일 공주 산성시장 상인과 악수하는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 시사저널 임준선

“정진석 6선 달성” vs “박수현 삼세판 탈환”

시사저널은 2월20일과 21일 충남 공주와 부여, 홍성과 예산, 세종 등 충청 일부 지역을 찾았다. 공주·부여·청양은 5선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과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19대 공주 국회의원)의 세 번째 재대결이 확정되며 충청권 내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두 사람은 지난 20대, 21대 총선에서 연달아 맞붙었다. 결과는 두 번 모두 정 의원의 승리. 다만 두 선거 모두 단 3.2%포인트, 2.2%포인트 차이로 초박빙이었다. 두 사람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각 당으로부터 일찌감치 단수공천을 받으며 빅매치를 확정했다.

2월20일 오후 정진석 의원의 공주 상왕동 주민간담회 참석 일정에 동행했다. 주민 한 명 한 명의 민원과 고충을 귀 기울여 듣던 정 의원을 향해 한 60대 주민이 “6선 당선돼서 국회의장 꼭 되셔유”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자 정 의원은 “제가 국회의장이 되고 안 되고는 두 번째 문제고 우선 우리 당이 이겨야 한다. 그래야 윤석열 정부가 힘차게 비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윤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운명공동체라 생각한다”며 “윤석열 정부 성공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각오”라고 강조했다.

이튿날 오전엔 공주 산성시장을 찾아 인사하는 박수현 전 수석의 뒤를 따랐다. 박 전 수석은 시장 상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물가가 너무 올랐다. 선거운동하기도 죄송하다. 힘내시라”고 인사했다. 이따금 쓱 지나가던 주민들이 다가와 박 전 수석의 손을 잡으며 “이번엔 꼭 되셔서 공주를 많이 발전시켜주시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박 전 수석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역 민심과 관련해 “민심의 큰 흐름에 변화가 있는 것이 느껴진다. 첫째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빨리 무너져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정 의원이 너무 오래 했다’는 피로감도 상당히 있다”고 했다.

2월21일 오전 장이 열려 있는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2월21일 오전 장이 열려 있는 충남 공주시 산성시장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이 이틀간 만난 다수 충청 유권자들 인식의 특징 중 두드러진 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기류였다. 부친이 공주 출신으로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현재 충청 민심의 평가는 냉랭했다. 예산시장에서 만난 50대 여성 여아무개씨는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별로 존경받을 만한 대통령은 아닌 것 같다. 김건희 여사만 떠오른다”며 “충청 출신이라지만 충청에 뭘 해줬는지도 기억이 나는 건 없다. 여당에 표를 주기는 싫다”고 말했다. 공주에 거주하는 76세 윤아무개씨 역시 “대통령이 되더니 야당과도 대화를 하지 않고 치우친 생각들로 국민들도 분열시키고 있다”면서 “견제를 할 수 있는 건 국회밖에 없으니 국회마저 여당이 많아지면 분열이 더 커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반면 한동훈 위원장에 대해선 다수 유권자로부터 대체적으로 “안정돼 보인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 점은 주목됐다.

 

충청 여론조사…여야 지지율, 오차범위 내 접전

야당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았다. 부여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만난 70대 김아무개씨는 선거 전망을 묻자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도 여러 아쉬움이 있는 게 맞지만, 지난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너무 많이 당선돼서 지금 (정부가) 일을 못 하게 하지 않나. 이번 선거에서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민의힘이 어느 정도는 이겼으면 좋겠다”며 “야당 대표가 항상 의혹에 시달리고 재판도 여러 개 받는 것도 확실히 비정상적이라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 혹은 야당 및 이재명 대표에 대한 심판 여론이 팽팽한 가운데 인물 및 공약은 물론 추후 공천 상황 등 변수들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36세 이석환씨는 “아직 어느 당에 표를 줄지 모르겠다. 공천 때마다 정치인들이 싸우는데 그러면 정이 뚝 떨어진다. 인물도 보겠지만 당이 못하면 표를 주기가 싫은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다수의 유권자가 아직 표심을 못 정하고 있는 만큼 이번 충청권 선거도 초박빙 승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1대 총선 충청권에서 10%포인트 격차 내 박빙 결과가 나온 지역구는 절반 이상인 17개다. 그중 11개 지역은 5%포인트 격차 내 초박빙 승부였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2월15일부터 17일까지 전국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여론조사에서 ‘내일이 선거일이라면, 지역구 후보 중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대전·세종을 포함한 충청권은 민주당 34%, 국민의힘 31%로 집계되며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나타났다.(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1.8%p, 응답률 13.2%,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월21일 오후 충남 홍성군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2월21일 오후 충남 홍성군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충청권에서 현재까지 여야의 단수공천 및 경선 등을 통해 대진이 확정된 지역구는 공주·부여·청양을 비롯해 모두 5개다. 충남 서산·태안에서 현역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과 민주당의 조한기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마찬가지로 세 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충남의 ‘정치 1번지’로도 불리는 천안갑에선 현역인 문진석 민주당 의원과 국민의힘의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이 지난 21대 총선에 이어 리턴매치를 갖는다. 21대 총선에서 두 사람 간 표차는 단 1328표(1.4%포인트)에 불과했다.

충남 당진에서도 3선에 도전하는 현역 어기구 민주당 의원과 정용선 전 충남경찰청장이 21대에 이어 재대결로 만났다. 21대 선거에서는 정 전 청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보수진영 표가 갈린 것이 결정적 패인으로 평가된다. 2파전으로 치러지게 되면 초박빙 승부가 예상된다. 대전 유성을에선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긴 5선 이상민 의원에 맞서 민주당이 영입인재인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을 맞붙여 놓았다. 민주당의 전략공천이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외에도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에선 도전자인 민주당이 이재한 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단수공천하며 일찌감치 경쟁에 나섰고 국민의힘에선 현역인 박덕흠 의원과 박세복 전 영동군수 간 경선으로 후보를 확정한다. 지난 총선에서 단 3.1%포인트 차로 국민의힘이 패배했던 충북 청주서원엔 국민의힘에서 김진모 전 대통령실 민정2비서관이 단수공천됐고, 민주당은 현역 이장섭 의원과 이광희 전 충북도의원, 안창현 전 충청일보 부국장이 경선으로 최종 후보자를 낼 계획이다. 역시 21대 총선 2.8%포인트 차에 불과했던 충북 증평·진천·음성에선 현역인 임호선 민주당 의원이 단수공천된 가운데 경대수 전 당협위원장과 이필용 전 음성군수 간 경쟁 승자와 대진표가 짜인다.

與 “14~15석 자신”…野 “20석 유지 목표”

충북 청주상당에선 2022년 3·9 재보선으로 당선된 5선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과 경선을 치르는 가운데 민주당에서도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강일 전 지역위원장 간 경선이 치러진다. 정치권에선 5선 정 의원과 3선 의원 출신인 노 전 실장이 본선에 올라 중진 간 빅매치가 치러질지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현역인 충남 논산·계룡·금산에선 김 의원이 다시 출마해 3자 대결이 치러질지 주목된다. 민주당에선 황명선 전 논산시장을 단수공천했고, 국민의힘에선 박성규 제1야전사령관과 김장수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경선을 치른다.

지난 총선에선 단 0.8%포인트 차 승부가 펼쳐졌던 충남 아산갑에선 현역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이 경선 탈락 위기에 처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설욕을 노리는 복기왕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단수공천했다. 충남 홍성·예산에선 현역인 4선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이 경선 포기를 선언하면서 강승규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후보로 확정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민주당에선 2월23일 천안을에서 출마를 준비했던 양승조 전 충남지사를 홍성·예산에 전략공천해 탈환 도전에 나섰다. 대전 대덕구는 민주당에서 현역 박영순 의원과 박정현 당 최고위원이, 국민의힘에서 박경호 전 국민권익위 부패방지부위원장과 이석봉 전 대전시 경제과학부시장이 경선을 치른다. 지난 총선에서 3.15%포인트 차로 민주당이 승리한 가운데 국민의힘의 설욕전이 주목된다.

양당은 모두 충청권에서의 승부를 자신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승리한 8석에 더해 6~7석을 더 탈환해 이번 총선에서 14~15석까지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단은 지난 총선 수준으로 20개 정도는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되 최소 절반 이상인 15석 이상은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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