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떠난 ‘송파 세 모녀’…“10년 간 복지 제도, 빈 수레였다”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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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활용 가능한 복지제도 자체가 없었던 것”
“위기가구 발굴 52만 명…기초보장 연결은 2.4%”
2월26일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에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이 ‘송파 세 모녀 10주기 좌담회’를 주최했다. ⓒ시사저널 강윤서
2월26일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에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좌담회’가 개최됐다. ⓒ시사저널 강윤서

서울 반지하방에서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원,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세 모녀의 사건이 10주기를 맞았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를 재조명하며 법 개정에 나섰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10년이 지난 현재도 복지 정책은 취약계층 ‘발굴’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빈 수레”라고 지적했다.

2014년 2월26일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어떠한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당시 모녀 중 큰 딸은 지병을 앓았지만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둘째 딸은 생활비와 병원비로 생긴 빚에 내몰려 신용불량자 신세였다. 유일한 소득은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임금 약 150만원이었지만 이마저도 어머니가 부상으로 실직하면서 수입이 끊겼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지만, 가난에 의한 일가족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후로도 계속 됐다. 2019년 11월 서울 성북구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이, 2022년 8월 경기도 수원에선 60대 어머니와 40대 두 딸이 비슷한 사연으로 세상을 등졌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26일 서울 용산구에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좌담회’를 열고 “세 모녀의 죽음은 복지 제도를 잘 몰라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제도 자체가 없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 동안 52만여 명이 위기가구로 발굴되었으나 기초보장으로 연결된 비율은 2.4%였다. 긴급복지로 연결된 비율은 1.3%에 불과했고, 일시적인 민간서비스로 연결된 비율이 29%로 가장 높았다. 절반이 넘는 30만 명(57.9%)은 어떤 서비스도 지원받지 못했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한 수급자는 급여 보장수준이 낮아 건강을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홈리스야학 학생인 요지(가명)씨는 희귀난치성 질환인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다. 그는 “검사 비용 50만원이 없어서 아랫마을 홈리스야학에서 대출받았다”며 “매달 5만원씩 생계비를 쪼개서 겨우 갚고 나니 이젠 생활비가 마이너스”라고 호소했다.

이어 “올해 생계급여가 역대 최대 폭으로 인상됐다는데 그래봤자 모든 물가가 올라서 생활비는 여전히 마이너스”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급자라서 병원비를 안 내는 것이 절대 아니”라면서 “인상된 생계급여가 전혀 체감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수급자들은 일자리 마련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림보(가명) 홈리스야학 학생은 “5년간 행복하게 일했던 중학교 청소 자활사업의 참여기간이 이제 끝났다”며 “저 같은 차상위계층은 5년 뒤에야 다시 자활 참여를 할 수 있다고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국민취업지원제도를 통해 다시 구직 활동 중이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림보씨는 “지난 3개월간 전기세와 수도세, 월세가 모두 연체돼서 야학학생복지기금을 빌렸다”며 “얼른 일을 구해서 갚아야 하는데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기초법 바로 세우기 공동행동,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관계자들이 2월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 연합뉴스
기초법 바로 세우기 공동행동,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관계자들이 2월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송파 세 모녀 10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 연합뉴스

“발굴에만 치우친 법 개정…제도 개선 요원”

세 모녀 사건 당시 정부는 ‘송파 세 모녀 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을 개정했다. 또 취약계층 발굴을 위한 사회보장급여법도 신설했다. 그러나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현행 제도는 “다리 아픈 환자 목에 깁스를 채운 격”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정부가 개편한 기초생활보장법은 이전 최저생계비 단일기준의 통합급여 방식에서 현재의 기준중위소득을 활용한 맞춤형 개별급여 방식을 적용한다. 

이에 정 사무국장은 “실제 급여별 선정기준이 이전 최저생계비와 별반 다르지 않게 책정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당시 최저생계비는 의료급여 선정기준인 기준중위소득의 40%와 비슷했다”며 “상대적 빈곤선(기준중위소득의 50%)에 맞춘 급여는 교육급여 뿐이고 생계급여 선정 기준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낮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계급여의 보장수준도 큰 변화가 없다”고 했다. 맞춤형 개별급여 시행 전 월 최대 현금급여는 49만9000원으로 이중 명목상 생계급여가 80%, 주거급여는 20%였다. 그러나 맞춤형 개별급여로 개편된 이후 생계급여는 43만7000원으로, 명목상 생계급여(최대 약 38만원)는 높아졌지만 현금급여는 오히려 낮아진 셈이 됐다. 

최근 정부가 부정수급 근절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급여 보장 수준이 낮아 약간의 추가 소득 활동을 하는 이들까지 보건복지부가 ‘부정 수급자’로 규정, 낙인을 찍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제도 취지와 달리 불투명한 행정 처리도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키우는 요소로 지적됐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정부는) 취약계층을 발굴하겠다는 명목으로 온갖 개인정보를 수집하지만 정작 사회보장급여 수급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초생활보장 급여의 요건 및 수준을 정할 때 예산 규모를 미리 정한 상태에서 빈곤층의 필요는 고사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준중위소득 결정방식 등 최소한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는데 근본적 해결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2015년부터 최저생계비가 아닌 상대적 빈곤선인 기준중위소득이 도입됐지만 산정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새로 변경된 기준중위소득 산정원칙이 준수된 경우는 2022년 딱 한 번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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