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픈 우리를 볼모로 잡나”…절규하는 환자들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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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응 정부와 ‘퇴사’ 전공의 사이에 끼어” 타협 호소
전공의 집단 휴진 ‘면죄부’ D-1…“미복귀자 경찰 고발”
간협 “전공의 빈자리 메꾸느라 간호사 대리처방까지”
전공의 복귀 시한을 하루 앞둔 2월28일 오전 9시께 서울대병원 1층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외래 원무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전공의 복귀 시한을 하루 앞둔 2월28일 오전 9시께 서울대병원 1층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외래 원무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갑상선암 환자 윤아무개(59)씨는 암 수술 날짜를 잡으러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전공의 휴진으로 진료가 밀려 다음 주에 다시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 측은 다음 주에도 수술 날짜를 확정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28일 오전 9시께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암병원 앞에서 만난 윤씨와 남편 하아무개씨는 빈손으로 정문을 나서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윤씨는 “암 진단을 받고 7개월 동안 서울대병원만 다녔다”며 “이제 와서 동네 병원을 알아볼 수도 없고 참 답답할 노릇”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씨는 “집단 휴진을 하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아픈 사람을 볼모로 잡아서는 안 된다”며 “환자가 병마와 싸우는 것도 힘든데 수술을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까지 떠안아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내일 전공의 돌아오나요?”…암 수술 앞두고 환자 발동동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복귀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부와 의사 단체 간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이날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자 집을 찾아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사실상 전공의 고발 준비를 매듭지은 셈이다. 전공의는 ‘최후통첩’에도 꿈쩍 않고 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의대 교수 단체의 협상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커지는 의·정 갈등에 환자와 보호자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날 서울대학교암병원에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는 전공의가 복귀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뉴스만 본다고 했다. 이들은 취재진에 “내일 전공의가 돌아오는 건가”, “언제쯤 화해할 것 같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연신 쏟아냈다.

정아무개(60대 중반)씨는 “전쟁통에도 물 밑에서 조율을 하는데 정부와 의사 단체는 타협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정씨는 “정부가 총선 표심을 겨냥해서인지 말 안 듣는 의사를 잡아넣겠다는 식으로 강경하게 나오는데 그럴수록 의사 반발이 크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전공의 빈자리는 교수와 PA(진료보조)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이 땜질식으로 메꾸고 있다. 그러나 소수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면서 피로도가 한계에 달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의료진도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시간 반 만에 외래 접수 번호가 500번대를 넘길 정도로 몰려드는 환자를 응대하는 중이었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자 대한간호협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간호사가 대리처방·기록, 치료 처치와 검사, 수술 봉합까지 떠맡고 있다”며 “법적 보호 장치 없이 간호사가 불법진료에 내몰리면서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주요 99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10명 중 8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약 1만 명 수준이다. 이들 사직서는 모두 수리되지 않았지만 소속 전공의 8939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일주일째인 2월26일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전공의 탈의실에 가운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이탈 일주일째인 2월26일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전공의 탈의실에 가운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되면서 입원·수술도 줄줄이 미뤄졌다. 상급종합병원 신규 환자 입원은 24%, 수술은 상급종합병원 중 15곳 기준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김아무개(53)씨는 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충북 청주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김씨는 “의사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이렇게 한 번에 병원을 빠져나가 버리면 남겨진 환자는 불안하지 않겠느냐”며 “당장 내 수술에도 전공의가 투입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무조건 ‘강경대응’하겠다는 정부와 ‘퇴사한다’는 전공의 사이에 환자들이 낀 상황”이라며 “아픈 사람들을 봐서라도 원만한 타협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한편 정부는 복귀 시한 이후 정상 근무일인 3월4일까지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해 사법 절차를 밟겠다고 경고했다. 복지부가 미복귀자를 경찰에 고발하면 정식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고발된 대한의사협회 전현직 간부 5명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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