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떠나자 ‘대란’…기형적 구조 드러낸 한국 의료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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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전공의 의존도 10%에 전문의 비중 높지만 한국은 반대
의료계·전문가, 전공의 수련비용 및 전문의 고용 지원 필요성 강조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근무 중단을 선언한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근무 중단을 선언한 전공의 대표들이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이탈이 의료대란으로 이어지면서 대형병원의 기형적인 인력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병원의 지나친 전공의 의존 구조가 의료 현장 혼란을 더 키우고 있어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7일 오후 7시 기준 전국 주요 99개 병원에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전체의 80.8%인 9937명으로 집계됐다. 근무지 이탈 전공의는 73.1%인 8992명이다. 전공의가 열흘 넘게 병원을 떠나면서 대형병원은 부분 마비 상태가 됐고 환자들은 기약없는 기다림 속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태 ‘키’를 쥔 전공의는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뜻한다. 교육을 받으며 의료 업무 수행하는 ‘초보 의사’지만 국내 상급 종합병원의 전체 의사 중 37.8%를 차지한다. 중증·응급환자가 몰리는 상급병원을 전공의가 떠받치고 있는 구조다. 

전공의 집단행동의 주축이 된 ‘빅5 병원’ 상황은 더 심각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빅5 병원 전공의는 2745명으로 전체 의사(7042명)의 40%를 차지한다. 응급실과 수술, 당직 등 중추 역할을 해 온 전공의 대거 이탈로 인한 대혼돈은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특히 서울대병원은 전체 의사의 46.2%(740명)가 전공의다. 세브란스병원은 40.2%(612명), 삼성서울병원은 38%(525명), 서울아산병원 34.5%(578명), 서울성모병원 33.8%(290명)를 차지한다.

대형병원의 전공의 비중이 높은 것은 저렴한 인건비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월평균 임금은 397만9000원으로 주당 평균 근무 시간(77.7시간)을 고려하면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이다.

박단 대전협 전 회장은 자신의 SNS에 “전공의가 주 80시간 이상 근무하며 최저 임금 수준 보수를 받고 있다”며 “(정부는)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고 값싼 인력인 전공의와 진료지원인력(PA)으로 대체하고 있는 병원의 행태를 눈감아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이탈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 “전문의 중심 인력구조 필수”

보건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과 일본의 상황은 다르다. 미 하버드대학병원과 메이오 클리닉은 전공의 비율이 각각 15%, 10.9%에 그친다. 일본 도쿄대 병원도 10.2% 수준으로 국내 대형병원 전공의 비중의 약 4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를 많이 고용한다. 하버드대학병원은 전문의 인력이 1만 명에 달하는데 이는 국내 전문의가 가장 많은 서울아산병원(지난해 12월 기준 1079명)의 무려 10배 수준이다. 같은 기간 빅5 병원 중 전문의가 가장 적은 서울성모병원은 566명이었다.

국내에서도 의료계 안팎으로 ‘전문의 중심’ 인력구조 개편을 요구해왔다. 대전협은 업무를 중단하기 시작한 지난 20일 성명서에서 “피교육자인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이 정상 운영되지 않는 작금의 병원 구조는 과연 바람직한가”라며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를 촉구했다.

하지만 대형병원은 전문의 추가 고용에 많은 비용 부담이 수반돼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는 입장이다. 선진국처럼 전문의 비중을 끌어올리려면 재정적 뒷받침이 필수적인데 현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 비용과 전문의 고용에 대한 지원이 없는 한 전공의에 기댄 의료 현장 개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서 전공의 직간접 지원 비용을 18조원 가까이 투입한다. 의료서비스가 국영화된 영국도 전공의 수련 기간 급여나 교육 비용 대부분을 지원한다. 독일과 일본, 캐나다 등도 의사 수련에 투입되는 비용 일정 부분을 정부가 부담한다. 

최근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를 발표하며 전문의 고용 확대 및 전공의 위임 업무 축소를 진행하는 병원엔 '가산 수가'로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전공의 수련 비용을 병원이 부담하는 구조적 문제를 비롯한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전문의 중심 대형병원 운영 밑그림과 구체적인 전공의 지원 방안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주요 선진국은 병원이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잘 마련돼 있다”며 국내 정책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미국은 병원 규정상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려면 응급 환자를 수술하고 진료하는 인력이 24시간 365일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문의를 진료 분야별로 6~7명씩 고용하게 된다”며 “지침서 내용이 굉장히 세부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주요 선진국은 공공병원이 많기에 국가가 전공의 월급을 주지만 한국은 병원에서 지불하는 체계”라며 “병원은 전공의가 수련받는 단계니 돈을 적게 주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일 수 밖에 없다”면서 구조적 한계를 메우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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