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0.6명’…1년간 한국 여성 추적한 BBC 진단은
  • 김민지 디지털팀 기자 (kimminj2028@gmail.com)
  • 승인 2024.02.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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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어머니 역할 더딘 변화에 사교육·경쟁으로 부담 가중”
장시간 노동·직장 내 불이익, 높은 주거비 등도 막대한 영향 분석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작년 4분기 합계 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영국 공영방송 BBC가 그 배경을 집중 조명했다. BBC는 문제의 핵심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비해 아내와 어머니 역할의 더딘 발전이라고 짚었다.

BBC는 28일(현지 시각) 한국 통계청 출산율 발표에 맞춰 ‘한국 여성은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서울특파원발 기사를 공개했다. BBC는 취재 경위에 대해 “저출산 정책 입안자들이 정작 청년들과 여성들의 필요는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 지난 1년간 전국을 다니며 한국 여성을 인터뷰했다”고 설명했다. 

TV 프로듀서 예진(30)씨는 BBC에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고 혼자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한 평가는 친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외곽에 산다는 예진씨는 “저녁 8시에 퇴근하니 아이를 키울 시간이 나지 않는다”며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힘들게 한다”고 전했다.

BBC는 월요일에 출근할 힘을 얻기 위해 주말에 종종 링거를 맞는다는 이야기를 예진씨가 일상인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다”며 여동생과 뉴스 진행자 두 명이 퇴사하는 걸 봤다고 밝혔다.

기혼자인 어린이 영어학원 강사 스텔라(39)씨는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일하고 즐기다 보니 너무 바빴고 이젠 자신들의 생활 방식으론 출산·육아가 불가능함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눈빛으로 답을 대신하며 “설거지를 시키면 항상 조금씩 빠뜨린다. 믿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또 서울에서 점점 더 멀리 밀려나고 있다는 그는 집값이 너무 비싸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했다.

BBC는 주거비에 대해서는 세계 ‘공통 문제’라고 본 반면 사교육비는 한국의 ‘독특한 점’이라고 평했다. 아이를 실패하도록 하는 것은 초경쟁적인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BBC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4세부터 수학, 영어, 음악 등 고가의 수업을 받는다고도 전했다. 스텔라씨는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700파운드(120만원)까지 쓰는 걸 봤는데 이런 걸 안 하면 아이들이 뒤처진다”고 전했다.

BBC는 과도한 사교육은 비용 자체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면서 부산에 사는 민지(32)씨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20대까지 공부하면서 너무 지쳤으며 한국은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털어놨다. 가끔 마음이 약해진다면서도 아이를 원하던 남편도 이제는 그의 뜻을 들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전에 사는 웹툰 작가 천정연씨는 아이를 갖는 일을 중대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산 후에 곧 사회·경제적 압박을 받게 됐고 남편은 도와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고 무척 화가 났다”며 “주변을 보니 다들 우울해서 사회적 현상이라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BBC는 바로 이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가 지난 50년간 빠르게 발전하면서 여성을 고등 교육과 일터로 밀어 넣고 야망을 키워줬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을 구조적 문제로 다루겠다고 밝혔지만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미지수라고 BBC는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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