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자율배상 유도하는 당국…은행권은 요지부동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2.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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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은행 자율배상 시 과징금 감면”…재차 당근책 제시
은행권 “배임 이슈 등으로 어려워…물리적 시간도 없다”
당국 기준안엔 협조한다지만…향후 법적 분쟁은 수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를 두고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자율배상을 유도하는 모양새다. 자발적으로 배상에 나설 경우 제재나 과징금을 감면하겠다며 당근책을 내민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배임 등 법적 문제가 걸려 있어서다. 향후 당국과 은행권의 장기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율배상하면 처벌 수위 감경해주겠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자율배상안을 재차 꺼내들었다. 이 원장은 전날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과거 잘못에 대해 금전 배상을 해준다고 해서 없던 일로 할 순 없지만 이를 시정하거나 책임을 인정하고 소비자와 이해관계자에 대한 조치를 한다면 제재, 과징금에서 감경요소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쟁조정안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고 이해관계자의 갈등을 축소하는 측면에서 보면 유의미한 금액의 배상은 제재라든가 과징금에 반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분쟁조정절차를 앞두고 금융권에 대한 자율배상 압박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은 앞서 지난 5일에도 자율배상안 카드를 꺼내든 바 있다. 그는 "최소 50%로라도 먼저 배상을 진행하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자율배상이 어렵다는 회사에 불이익을 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의 이번 발언은 그간 은행권의 우려에 선을 긋는 조치다. 자율배상에 나서면 향후 제재 수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반영하겠다고 공식화한 셈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완전판매 인정하는 자율배상 어려워“

은행권은 이 원장의 당근책에도 당국의 공식적인 불완전판매 검사 결과와 기준안이 나오기 전까지 선제적인 배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금융당국의 현장 검사 결과나 책임분담안이 나오지 않고서 자율배상을 하기엔 배임 이슈 등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현재로선 과징금 감면 메시지가 나왔다고 해서 특별한 조치를 취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2차 현장검사를 마친 금감원은 이르면 내주 책임분담안을 발표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당장 은행이 자율배상안을 마련하기도 어려울뿐만 아니라, 실제 배상을 하기 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업계에서 기준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는 게 아니다”며 “다만 다음주에 기준안이 나온다는데 갑자기 선제 배상을 진행하기엔 시간적으로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서울 시내에 설치되어 있는 주요 은행들의 현금인출기 ⓒ연합뉴스

배상은 하되 제재엔 법적 대응 반복될까 

향후 은행권이 당국의 제재를 적극적으로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앞서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은행은 책임이 분명한 사안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협조한 반면, 향후 제재에 대해선 강력 대응한 바 있다.

당시 당국은 불완전판매가 입증된 대표 사례 6건에 대해 하나·우리은행이 손해액의 40~80%를 배상토록 했다. 이에 따라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투자자 1000여 명에 대해 배상을 완료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 처분을 받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금감원을 상대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손 전 회장은 최종 승소해 징계가 취소됐고, 함 회장은 이날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원고 패소 판결을 받은 1심 결과가 뒤집어졌다. 

금융당국은 과징금 등 제재 수위에 대해선 아직 정하지 않은 모습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은행의 과징금에 대한 계획에 대해 “눈앞의 현안이 많은데 과징금은 한참 뒤의 문제다”고 답을 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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