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변주와 진화로 극장가 장악한 K오컬트의 세계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0 10:00
  • 호수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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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부터 《파묘》까지…한국적 색채 더한 공포물로 장르적 한계 넘어서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다소 마니아적인 장르로 여겨진 오컬트 공포물이 한국적 색채를 더해 이른바 ‘K오컬트’라 불리게 되면서 그 장르적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이다. 도대체 한국형 공포물은 어떻게 진화해온 걸까.

영화 《파묘》 포스터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 포스터 ⓒ㈜쇼박스 제공

《파묘》, 무엇이 신드롬 만들었나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는 3·1절 연휴 동안 무려 233만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서울의 봄》 이후 다시 꽃샘추위가 이어지던 극장가에 봄기운이 돌았다. 무속인과 풍수사가 등장하고 여지없이 귀신 들린 집안 이야기가 나오는 데다 소재 자체가 섬뜩한 ‘묫자리’ 이야기라는 점까지 《파묘》는 오컬트 장르 특유의 으스스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의외로 이 영화가 으스스하지만은 않은 ‘재미’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또 오컬트 장르 같은 공포물을 잘 즐기지 않는 관객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은 《파묘》가 공포물이면서도 순식간에 관객몰이를 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다. 오컬트인데, 어딘가 오컬트를 벗어나 있다?

일단 등장하는 무속인과 풍수사의 이미지가 다르다. 무속인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한마디로 MZ세대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물론 굿판을 벌일 때면 무속인 특유의 색색 옷을 입고 등장하고 섬뜩할 정도의 카리스마와 에너지를 보여주는 점은 같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화림은 가죽 롱코트를 휘날리며 활보하고, 전신 타투(물론 부적의 글귀들이다)를 한 봉길은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채 다닌다. 또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그들끼리 모여있을 때는 MZ세대 특유의 톡톡 튀는 일상들이 비친다. 그래서 무속인이라기보다는 스페셜리스트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이들과 함께 일종의 귀신 쫓는 팀으로 함께하는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도 마찬가지다. 현재 점점 없어져가는 직업인지라 이들은 기성세대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데, 일할 때의 진지함과는 사뭇 다른 평상시의 일상적인 모습들이 담긴다. 막걸리를 마시며 ‘돈벌이’ 이야기나 딸 결혼식 이야기 같은 일상적인 대화들을 나눈다.

그래서 이들 스페셜리스트가 힘을 합쳐 관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할 ‘험한 것’과 맞서는 이야기는 공통의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오컬트적 요소가 있지만 공포에 집중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어, 공포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일제강점기의 ‘쇠말뚝’으로 상징되는, 민족 정기를 끊어버린 일제의 행위들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래서 귀신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갈수록 공포가 깊어지는 후반부는 이를 흥미로운 은유로 보게 되고, 민족 정기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읽게 만든다. 공포가 존재하지만 못 견딜 정도로 으스스함에만 빠뜨리지 않는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이건 최근 이른바 ‘한국형 공포물’이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가 가진 특징이다. 오컬트물을 포함해 공포물이 가진 마니아적 경향을 넘어서게 만드는 대중적인 전략이랄까. 《파묘》의 성공에서 한국형 공포물이 그간 해왔던 진화를 읽게 되는 이유다.

한국형 공포물이 서구의 그것들과 확연히 다른 지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형 공포물의 전통이자 보고라고 불리는 《전설의 고향》에서부터 지금껏 이어진 중요한 특징이다. 산골 외딴집의 흐릿한 호롱불 아래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한 남편 때문에 기묘한 분장의 괴물로 변신함으로써 한여름 밤 이불을 쓰고 봐야 했던 ‘구미호’ 같은 초자연적 존재는 인간을 해코지하는 살벌한 존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여기에 당대의 억압들을 투영시킨다.

사람이 되기 위해 천일을 버텨야 한다는 상황이나, 끝내 남편의 배신으로 인간이 되지 못했을 때 보복하는 게 아니라 그 한을 토로하는 구미호의 모습은 여러모로 가부장제 시스템 아래서 억압받던 며느리들을 떠올리게 한다. 부임하는 사또마다 죽어나가는 마을에 새로 부임한 사또가 그 원인인 한 맺힌 귀신의 원을 풀어주는 ‘아랑 전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거기엔 부정한 권력자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한이 투영돼 있다. 이처럼 한국형 공포물은 공포를 위한 공포라기보다는 이 장르를 통해 넘을 수 없는 금기를 넘어서고 억눌렸던 한을 풀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SBS 드라마 《악귀》의 한 장면 ⓒSBS 제공
SBS 드라마 《악귀》의 한 장면 ⓒSBS 제공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는 한국형 공포물

이런 전통은 작년에 방영됐던 김은희 작가의 《악귀》 같은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여기 등장하는 악귀는 ‘욕망을 들어주며 커지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구산영(김태리)이라는 청춘이 가진 아픈 현실을 툭툭 건드린다. 열심히 살아도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세상이 주는 절망감 속에서 분노와 복수심이 피어오르고 누군가를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걸 갖고픈 욕망 또한 생겨나는 것. 그것이 이 작품 속의 악귀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였다. 돈이라면 사람을 죽여서라도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악귀 같은 세상이 악귀를 탄생시킨 이유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즉 악귀는 그 자체의 공포에 목적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그 안에 함의된 사회의 억압이나 욕망을 끄집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다.

그래서 귀신이라는 현상은 과거의 끔찍한 범죄나 잘못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로 작동하는데, 그것은 《파묘》도 마찬가지다. 《파묘》의 ‘묘를 파낸다’는 그 행위는 과거의 잘못된 걸 원상태로 돌린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귀신 이야기들이 해온 서사 구조와 다르지 않다. 이건 아마도 한국인이 가진 불가해한 것들을 바라보는 특유의 정서가 깔린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파묘》가 절묘했던 건 그저 ‘묫자리’를 잘못 써 후대에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막는 풍수적이고 무속적인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 이야기나 일제의 잔재에 대한 과거사 청산 이야기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파묘》는 마치 하나의 미션을 저마다의 스페셜리스트들이 능력을 발휘해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케이퍼 무비 같은 장르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같은 다양한 장르와의 퓨전은 한국형 공포물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이다. 장재현 감독이 2015년 만든 《검은 사제들》은 오컬트 장르를 우리 식으로 해석해 시도한 작품으로 당시에도 500만 관객을 넘기는 흥행을 기록했다. 물론 당시에는 사제복이 특히 섹시한 배우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 역할을 잘 소화해낸 강동원의 티켓 파워가 단단히 한몫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작품 역시 좀 더 대중적인 오컬트 장르를 추구해온 장재현 감독의 공이 분명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검은 사제들》이 보여주는 오컬트의 대중적 장르와의 퓨전은 이미 1990년대에도 시도된 것이었다. 1994년 이우혁 작가의 판타지 소설 《퇴마록》이 그것이다. 1998년에 영화화된 이 작품에는 사이비 종교집단과 맞서는 3명의 퇴마사가 등장하는데 여자의 혼이 봉인된 칼을 사용하는 무사, 기도로 악마와 싸우는 신부, 그리고 부적술과 독심술을 사용하는 아이가 그들이었다. 물론 당시에 《퇴마록》은 오컬트 장르로 분류되기보다는 판타지 액션 장르로 여겨졌다. 그만큼 오컬트 장르 같은 공포물에 대한 대중적 저변이 없던 시대의 이야기다.

2016년 방영돼 한국형 오컬트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역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경찰 종구(곽도원)의 시선으로 추적하는 범죄스릴러 장르와 결합된 한국형 공포물이었다. 이처럼 범죄를 추적하는 형사와 귀신을 좇는 무당, 퇴마사가 함께 등장하는 범죄스릴러와 결합한 한국형 오컬트는 《손 더 게스트》로도 이어진다. 박일도라는 귀신이 빙의해 벌어지는 범죄들과 이를 막기 위해 형사와 영매, 사제가 힘을 모아 싸우는 이 작품은 그 인물 구성만으로 알 수 있듯이 오컬트와 범죄물이 결합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악귀》가 그러한 것처럼, 현실에서 실제 벌어진 너무나 끔찍한 사건들을 ‘귀신이 씌었다’는 관점으로 풀어냄으로써 오컬트와 범죄를 엮어냈다.

《손 더 게스트》의 한 장면 ⓒOCN  제공
《손 더 게스트》의 한 장면 ⓒOCN 제공

범죄물과의 결합, 위험사회의 은유 같은 것들이 더해진 한국형 오컬트는 그래서 단지 공포의 자극만이 아닌 보편적인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세계관으로 나아간다. 연상호 감독이 대본을 쓴 《방법》은 사진과 물건 그리고 한자 이름을 알면 그 사람을 일그러뜨려 죽일 수 있는 저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오컬트에 종종 등장하는 ‘저주’라는 소재를 가져와 SNS 시대에 벌어지는 혐오사회의 징후로 은유해 냈다. 또한 저주를 보내는 방법으로서 ‘살을 날리고’ 그게 실패하면 ‘역살을 맞는’ 무속적인 요소들을 마치 슈퍼히어로물처럼 해석해 냈다. 오컬트 장르의 으스스함이 다이내믹한 스릴러 액션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이유다.

《파묘》에 등장하는 화림과 봉길 같은 스타일리시한 MZ 무속인처럼, 최근 한국형 공포물들은 옛이야기들 속에 박제돼 있던 틀에 박힌 이미지들을 현재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 등장하는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모습이 저 《전설의 고향》의 그것과 달리 세련된 스타일로 재무장함으로써 대중의 각광을 받았던 건 단적인 사례다. 이런 흐름은 《전설의 고향》의 상징처럼 돼있는 구미호 캐릭터의 변주에서도 나타난다. 《구미호뎐》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구미호뎐1938》의 한 장면 ⓒtvN 제공
《구미호뎐1938》의 한 장면 ⓒtvN 제공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로 ‘현재화’

현대를 배경으로 그려진 이 작품 속 남자 구미호 이연(이동욱)은 슈트 차림에 우산을 들고 다니며 이를 무기로 활용한다. 스타일만 보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대사로 유명한 《킹스맨》이 떠오르는 외형이다. 《구미호뎐》이 새로운 스타일로 현재화한 건 구미호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전설의 고향》 속 존재들인 이무기, 어둑시니, 우렁각시 같은 토착 설화와 전설 속 캐릭터들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러한 외형의 변화는 공포물의 색채에 판타지 액션 히어로물의 결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판타지 액션으로 흐르면서 공포물 특유의 주제의식 같은 깊이가 흐려진 아쉬움이 있지만, 어쨌든 우리네 옛이야기의 캐릭터들을 현재로 소환해 냈다는 점은 의미 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구미호뎐》은 그래서 《구미호뎐1938》로 시리즈화하면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서의 구미호 서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시도는 600년 동안 죽지 못하는 요괴의 이야기를 다룬 《불가살》에서도 이어진다. 불가살이 전설을 가져와 현대화한 이 작품에서도 불가살만이 아니라 어둑시니 같은 《전설의 고향》에서 봤던 귀신들도 재해석돼 등장한다.

《파묘》에는 이처럼 현재 한국형 공포물이 진화해온 여러 유전자가 어른거린다. 으스스한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다양한 장르를 더함으로써 좀 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색깔을 부여하고, 공포 그 자체만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현재적 함의를 찾아내려 하며, 무엇보다 과거의 틀에 박힌 스타일들을 벗어내고 현재화하려는 노력이 그것들이다.

최근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좀비물(《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크리처물(《스위트홈》 《지옥》 《경성크리처》) 같은 작품들을 보면 이처럼 진화한 한국형 공포물들이 다양한 갈래로 확장되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 무한한 변주와 진화의 세계가 또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앞에 새로움을 가져다줄까. 한국형 공포물에 쏠린 전 세계적 관심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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