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공천’은 없었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8 15:00
  • 호수 179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쇄신 공천’ 기대, 이재명은 물론이고 한동훈도 사라져
‘누가 누가 덜 못하나’ 경쟁의 악순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두 거대 정당의 지역구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총선은 언제나 쇄신 경쟁이 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 공천에서는 여야 불문하고 쇄신이 보이지 않는다.

먼저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국민의힘에서는 큰 폭의 변화를 낳을 쇄신 공천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인요한 혁신위 이래로 ‘친윤·주류’ 희생이 숙제처럼 여겨졌던 국민의힘이기에 당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꿔놓을 만한 공천을 한동훈 위원장이 하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했다.

3월5일까지 국민의힘 지역구 현역 의원 90명 가운데 13명만 교체가 확정되어 현역 교체율은 14.44%에 머물렀다. 4년 전 총선 당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현역 교체율이 43.5%를 기록했던 것과는 큰 차이다. 현역 교체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잘된 공천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물갈이가 없으니 청년과 여성, 정치 신인의 공천 비율이 지극히 저조하게 된다. 국민의힘의 공천 과정이 더불어민주당에 비해 조용했던 것은 특별히 잘된 공천이라기보다는 현역 물갈이가 적으니 반발도 적은 데 따른 현상이었다.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임혁백 민주당 공관위원장이 2월23일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정영환 국민의힘 공관위원장이 3월2일 경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동 없는 공천’ 비판에 韓 “조용한 게 감동”

한동훈 위원장은 국민의힘의 공천이 ‘감동 없는 공천’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조용한 게 감동”이라고 반박했다. “조용한 건 여기 있는 분들과 최근 승복하신 분들의 감동적인 헌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기들끼리의 감동이다. 국민이 원했던 감동은 자기들 내부에서의 승복과 헌신이 아니라 우리 정치를 새롭게 바꿔놓을 보다 파격적인 공천이 주는 감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저 ‘조용한 게 감동’이라는 생각은 우리 정치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미약함을 드러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다만 한동훈 위원장이 이끈 공천에서 평가해줄 몇 가지 대목은 존재한다. 우선 한 위원장은 불공정 공천 논란에는 휩싸이지 않았다. ‘용산’(대통령실)의 특별한 개입과 간섭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당초 야당에서 ‘윤석열 아바타’라고 낙인찍은 한 위원장이 공천을 하면 ‘윤심(尹心)’ 공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공천은 전적으로 한 위원장의 책임하에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 민주당에서 탈당한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전 국회부의장을 곧바로 영입해 전략공천하거나, 평소 친윤 정치에 대해 쓴소리를 자주 하던 이현웅 변호사, 중도 성향의 최원식 전 민주당 의원 등을 공천한 것은 공천의 이념적 개방성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국민의힘은 감동 없는 기득권 공천이라는 비판이 대두하자 그동안 주저하던 ‘국민 추천 프로젝트’를 5개 선거구에 도입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서울 강남갑·을, 대구 동-군위갑, 대구 북갑, 울산 남갑 등 5곳이 대상인데 과연 국민의 눈높이에 맞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새로운 인물들이 공천을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

국민의힘의 공천도 문제를 드러냈지만 그 문제를 덮어준 것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이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신조어까지 만든 민주당의 공천은 ‘이재명 사당’을 만들기 위한 ‘사천’이라는 비명계의 반발과 탈당 사태를 낳았다. 평소 민주당에 우호적인 언론들까지 민주당의 공천을 납득할 수 없다며 비판한 사실을 보면 이재명 대표의 공천이 얼마나 무리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친명 지도부는 시스템 공천의 결과라고 정당성을 강변했지만, 문제는 각 항목에 대한 점수를 사람이 매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현역 의원에 대한 평가는 주로 상호평가인 정성적 평가에서 갈리게 되는데 여기서 친명과 비명을 구분하는 불공정 평가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번 공천은 여론의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선거 판세를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여론조사 기관들의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대표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선후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길을 냈다고 생각하겠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자신의 앞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도 밀실공천 논란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추진에 한발 앞서가고 있는 민주당에서는 비례대표 후보와 관련해서도 밀실공천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는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을 위해 투표일 60일 전에 비례공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후보자 2배수 압축을 위한 예비 경선은 전당원 투표로, 비례 순위는 중앙위원 투표로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번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을 당 전략공관위에서 담당하도록 하고 산하에 비례후보추천관리위를 구성했다. 당내에서는 밀실공천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밀실에서 소수가 후보를 결정하는 과거의 방식으로, 혁신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여러 상황상 당헌·당규 절차에 따라 하기에는 물리적·시간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전략공관위의 설명이지만, 비례대표도 친명계의 입맛에 맞는 후보들이 공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리고 야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공천하는 후보 검증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 비례연합정당은 비례대표 후보를 새진보연합 3명, 진보당 3명, 시민사회계에서 국민후보 공모를 통해 4명을 추천한다. 그리고 민주당이 20명의 후보를 추천한다. 지난 21대 비례위성정당 때도 검증 부재의 문제가 드러난 바 있는데, 단지 야권 비례연합정당에서의 추천만으로 검증 부재의 공천이 이루어지는 문제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선대위원장은 21대에 이어 이번에도 위성정당 비례후보로 자신을 추천해 비례대표 재선을 노리는 염치없는 ‘셀프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거대 양당의 공천에 쇄신은 없었다. 상대방이 좋은 공천을 해야 이쪽도 긴장해 역시 좋은 공천을 하게 되는데, 일단 민주당이 ‘비명횡사’ 공천을 하면서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으니까 그 틈에 국민의힘도 긴장을 내려놓고 굳이 쇄신 공천의 진통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다.

서로 좋은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덜 나쁜가를 경쟁하는 악순환이다. 이런 정당들을 바꿔놓을 선택권이 우리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