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느 정도길래? 불법 사금융과 전쟁 선포한 尹 정부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1 07:30
  • 호수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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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원 빌렸다 성 착취까지…악랄한 추심에 신음하는 서민들
범정부 TF 구성해 대대적 단속 착수했지만 효과는 ‘글쎄’

# 20대 여성 A씨는 인터넷 대출 중개 사이트에서 알게 된 불법 사금융업체에서 20만원을 빌렸다. 업체는 담보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지인들의 연락처와 주소, 직장명 등을 요구했다. 상환액은 일주일 만에 원금의 두 배까지 불어났다. 업체는 상환기간이 지난 경우 1시간에 20만원에 달하는 높은 연체료를 요구했다. A씨는 다급한 마음에 다른 불법 사금융업체에서 대출을 받아 ‘돌려막기’를 했다. 이로써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 상환이 늦어지자 불법 사금융업체는 A씨 직장 동료들에게 대출 사실을 알리며 압박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협박과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A씨는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지만 빚은 계속 늘어났다.

A씨가 벼랑 끝에 내몰리자 사채업자들의 성 착취가 시작됐다. 상환기간을 유예해 준다는 식으로 회유해 나체 영상을 전송하도록 했다. A씨는 두려움에 불법 사금융업체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나 이후 성 착취 강도는 계속 높아졌다. 불법 사금융업체는 급기야 스스로 음란행위를 하는 영상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런 영상들은 A씨 가족을 협박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불법 사금융업자들은 A씨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나체 영상 등을 빌미로 돈을 요구했다. 이 일로 A씨와 가족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됐다.

# 30대 남성 B씨 역시 불법 사금융업체로부터 2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업체에 카카오톡을 통해 차용증과 가족과 친척, 직장 동료 등의 연락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 등을 제공했다. 상환이 지연되자 불법 사금융업체는 가족과 직장은 물론 B씨 자녀의 담임 교사에게까지 대부 사실을 유포했다. 불법 사금융업체의 도를 넘은 추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SNS를 통해 B씨의 나체 사진을 게재한 것이다. 이 업체는 B씨가 과거 다른 대부업체에 제공한 나체 사진을 불법 사금융업체들이 연합해 개설한 텔레그램방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불법 사금융, 코로나19 이후 더 활개

불법 사금융으로 인한 서민 피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법 사금융업자들은 매주 원금에 가까운 이자를 물리고 대출 연체료 등 다양한 명목으로 추가 채무를 지게 한다. 그 결과 수십만원의 빚이 불과 수개월 사이에 수천만원까지 불어나기도 한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악랄한 불법 추심이 자행된다. 최근에는 A씨의 사례처럼 성 착취 추심을 벌이는 업자도 대거 등장했다. 추심 대상은 채무자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은 물론 친구나 직장 동료 등 주변인까지 포함된다. 불법 추심의 먹잇감이 된 피해자 중에는 가정이 무너지거나 극단적 선택에 내몰린 이도 적지 않다. 불법 사금융은 코로나19 사태로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더욱 활개를 쳤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 신고 건수는 2019년 5468건에서 2020년 8043건, 2021년 9918건, 2022년 1만913건 등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고금리 여파로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 대출을 축소하면서 금융 약자들이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기 더욱 쉬운 상황이 됐다.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및 상담 건수는 1만3751건으로 전년 대비 26%나 증가했다. 불법 사금융 피해자가 특성상 피해 신고나 상담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자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민금융연구원은 2022년 불법 사금융에 내몰린 저신용자가 최대 7만여 명, 1조2000억원대에 달한다고 추산한 바 있다.

불법 대부업체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진 점도 불법 사금융 피해가 증가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과거에는 길거리에서 전단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채업자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대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금융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온라인에 각종 대출 플랫폼이 생겨났다. 대부업체들은 이들 플랫폼에 광고를 하는 식으로 먹잇감을 찾기 시작했다. SNS를 홍보 창구로 활용하는 업자도 적지 않다.

불법 사금융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반면, 적발은 더욱 어려워졌다. 피해자들에 대한 대출이 불법 사금융업자의 실명과 얼굴, 사업장 등을 알지 못한 채 온라인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법 사금융업자들도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활용해 감시망을 피하고 있다. 또 불법 추심에 활용되는 성 착취 자료 전송에는 추적이 쉽지 않은 텔레그램 등을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n번방 사태’로 성착취물 등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범위나 수위를 상향한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됐음에도 여전히 폐해는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세청과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으로 구성된 ‘범정부 불법 사금융 척결 태스크포스(FT)’는 2월20일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국세청과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 등으로 구성된 ‘범정부 불법 사금융 척결 태스크포스(FT)’는 2월20일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n번방’ 닮아가는 업자들

여기에 불법 대출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 지능적 수법도 등장했다. ‘폰테크’ 내지는 ‘휴대폰깡’으로 불리는 ‘내구제대출’이 대표적이다. ‘나를 구제하는 대출’의 줄임말인 내구제대출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휴대전화를 개통해 불법 업자에게 넘긴 후 일정 수수료를 제외한 현금을 받는 불법 사금융이다. 휴대전화를 개통해 당장 돈을 받고 다달이 요금만 내면 된다는 업체들의 홍보에 피해자들은 별다른 거리낌 없이 내구제대출을 받는다. 그러나 내구제대출은 실행 시 갚아야 할 돈이 크게 불어남과 동시에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불법 사금융이다.

이처럼 불법 사금융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수법이 지능화하면서 피해자들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내구제대출 업자들은 제도권 내 금융 이용이 어려운 청소년과 청년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공정특별사법경찰단(특사경)은 최근 SNS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최대 10만원까지 소액 대출을 해준 불법 사금융업자를 적발하기도 했다. 이 업자는 연체료 대신 수고비나 지각비 등 청소년에게 친근한 용어로 접근해 최고 5475%에 달하는 초고금리를 챙겼다.

불법 사금융으로 인한 서민의 피해가 날로 늘어나자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불법 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불법 사금융을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고 인권을 말살하고 가정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악랄한 암적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를 평생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처단하라고 주문했다.

범정부 불법 사금융 척결 FT는 1차 조사에서 431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범정부 불법 사금융 척결 FT는 1차 조사에서 431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후 정부는 국세청과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으로 구성된 ‘범정부 불법 사금융 척결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조사에 착수했다. TF는 2월20일 1차 조사 결과, 불법 사금융업자들로부터 431억원을 추징·징수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는 취업준비생과 신용불량자 등 신용 취약계층으로부터 연 9000%의 고금리 이자를 편취하거나 나체 사진 공개 협박 등 불법 추심을 일삼은 불법 사금융업자가 대거 적발됐다. 1차 조사를 마친 국세청은 이날부터 바로 2차 전국 동시 조사(179건)에 착수한다고 예고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시장 영세상인으로부터 200%가 넘는 이자를 편취한 미등록 불법 사채업자와 내구제대출업자 등이 2차 조사의 주요 유형이다.

여기에 윤 대통령은 불법 사금융 관련 법과 양형기준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중심으로 과도한 추심 행위에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하는 안을 검토했다. 불법 사금융업체들에 대한 국내의 처벌 수위가 싱가포르와 일본 등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다는 지적을 의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 국내에서 미등록대부업이나 이자율 위반 등 대부업법 위반 형사사건은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불법 사금융 같은 민생약탈 범죄는 강력히 처벌하고 불법 이익은 남김없이 환수한다는 원칙에 따라 관련 법률과 규정 개정 등 제도 개선 노력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불법 사금융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시적인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서민들의 수요가 지속되는 한 언제든 새로운 형태로 불법 사금융이 번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속 및 처벌과 함께 금융 약자들을 위한 정책금융 확대와 피해 예방 홍보 강화 등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법사금융피해지원센터 관계자는 “일시적인 단속과 처벌 강화로 불법 사금융업체들의 영업활동이 위축될 수는 있지만 근절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수법을 바꿔가며 단속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 들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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