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우리도 주세요!” 재계 화두로 떠오른 출산지원금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0 08:00
  • 호수 1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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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 ‘1억원 지급’ 발표 후 추가 참여 기업 잇달아
정부도 전액 비과세로 화답…“앞서서 치고 나가야 세상 바뀐다”

출산지원금이 재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부영이 ‘출산한 임직원에게 자녀 1인당 1억원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자 정부가 기업 출산지원금에 대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적용키로 하면서다. 저출생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노동력, 생산성, 소비시장 등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단순히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것을 넘어 자구책을 찾아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사회와 기업 모두 백척간두의 위기를 맞은 가운데 불고 있는 출산지원금 지급 바람은 돌풍을 넘어 열풍으로 진화할 기세다. 부영처럼 파격적인 행보에 나서는 기업이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부영의 1억원 출산지원금 지급에 정부가 기업 출산지원금 전액 비과세 방침으로 화답한 이후 사내 복지제도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논의의 초점은 저출생 문제 해소를 위해 임직원들에게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거나 지급해온 출산지원금을 늘릴지 여부에 맞춰졌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가운데)이 2월5일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쌍둥이를 출산한 직원에게 출산지원금 2억원을 지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가운데)이 2월5일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쌍둥이를 출산한 직원에게 출산지원금 2억원을 지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저출생 

현재 국내 주요 기업 중에는 부영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포스코, HD현대, KT, 금호석유화학, 매일유업, 한미글로벌, 쌍방울, IMM(사모펀드 운용사) 등이 임직원들에게 출산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9월 임금 및 단체협약을 통해 100만원이던 출산지원금 규모를 첫째 300만원·둘째 400만원·셋째 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포스코는 첫째 300만원·둘째 이상은 5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HD현대는 임신·출산 시 각각 축하금 500만원을, KT는 임신 시 200만원·출산 시 300만원을 준다. 금호석유화학은 그동안 재계에서 출산지원금을 가장 후하게 주는 회사로 꼽혀왔다. 첫째 500만원·둘째 1000만원·셋째 1500만원·넷째 2000만원을 지급한다. 

유제품 제조·판매사로 그 어떤 기업보다 저출생 문제에 많은 영향을 받는 매일유업의 경우 2023년부터 출산지원금을 최대 88%까지 늘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2022년까지는 자녀 1명 또는 2명을 낳으면 330만원을, 세 자녀 이상 낳으면 530만원을 줬다. 그러다 지난해 들어 첫째 400만원·둘째 600만원·셋째 이상은 10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김선희 매일유업 부회장은 “매일유업은 저출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회사라 더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며 “저출생 해소 노력은 국가적 이슈이면서 우리 회사의 생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매일유업은 저출생 심화 여파로 2017년 하반기 매출이 크게 줄어들고 지방 공장의 구인난이 극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내 출산장려책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업관리(PM) 기업인 한미글로벌은 첫째 100만원·둘째 200만원·셋째 500만원·넷째 이상은 1000만원의 출산지원금을 준다. 아울러 셋째 아이를 낳으면 업무 고과나 연차와 관계없이 한 직급 승진시킨다. 이 회사 김종훈 회장은 2022년 10월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출범하는 데 주축 역할을 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민간기업, 학계, 종교계 등이 함께 저출생 등 인구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정책 플랫폼 형태의 기관이다. 김 회장을 위시한 전사적 노력 덕분에 한미글로벌 기혼 임직원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57로 우리나라 평균(2023년 기준 0.72명)을 두 배 이상 앞선다. 

이중근 부영 회장이 2월5일 내놓은 출산장려책은 기업 출산지원금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2021년 이후 태어난 임직원 자녀 70명에게 1인당 현금 1억원을 지급하고 앞으로도 해당 정책을 계속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 발표 후 그야말로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인센티브 개념을 넘어 한 집안의 재산 증식에 상당 부분 보탬이 될 정도의 액수이기 때문이다. 연년생 자녀를 출산한 세 가족과 쌍둥이 자녀를 출산한 두 가족은 각각 2억원의 장려금을 받았다. 

이 회장은 “지금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20년 후 국가 존립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면서 “저출생에는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 그리고 일과 가정생활 양립의 어려움이 큰 이유로 작용하는 만큼 파격적인 출산장려책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 첫 아이를 출산한 부영 직원은 “출산 전후로 (경제적 부담 탓에) 걱정이 많았지만, 회사의 파격적인 지원 덕분에 둘째도 계획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2월28일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관계자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2월28일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관계자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부영發 출산지원금 돌풍, 열풍으로 번질까 

부영의 1억원 출산지원금 지급이 끌어낸 파급효과도 상당했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이 업계 최초로 출산지원금 지급 정책(1000만원 지급)을 도입한 데 이어 쌍방울은 첫째와 둘째를 낳으면 각각 3000만원, 셋째를 낳으면 4000만원을 주기로 했다. 기업 출산지원금에 부과되는 세금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되자 정부는 세제 개편안을 신속히 구상했다. 그리고 부영의 출산장려책이 나온 지 정확히 한 달 만인 3월5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은 전액 비과세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더 많은 근로자가 혜택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공표했다. 

월 20만원 한도인 출산지원금의 비과세 한도를 없애 직원의 추가 세금 부담을 없애고 기업은 여전히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세제 개편안의 골자다. 현재 6세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에게 기업이 지급하는 출산·양육지원금은 연 240만원까지만 비과세 대상이다. 연봉이 5000만원인 부영 직원에게 현행 제도를 적용하면 출산지원금 1억원에 따르는 근로소득세 2750만원을 내야 한다. 이에 부영은 직원들의 세 부담을 덜어주고자 출산지원금을 자녀에 대한 증여(최저세율 10%) 방식으로 지급한 바 있다. 그러면 세금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서다. 증여 방식이더라도 회사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해 세 부담이 커진다. 

세제 개편으로 부영 임직원들은 ‘억대’ 출산지원금을 고스란히 수령할 수 있게 됐다. 이미 증여 형태로 받은 출산지원금은 회사에 반납했다가 근로소득으로 재수령할 전망이다. 과세 대원칙 파기,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 논란 등 부담을 무릅쓰고 이번 세제 개편안을 내놓은 데 대해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최대한 파격적으로 지원하자는 측면에서 전액 비과세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통 큰 정책 지원에 힘입어 출산지원금을 지급하는 기업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다. 

부담과 논란에도 기대감 싹트는 이유 

실제로 다수 기업이 출산지원금 확대 또는 신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영(22위)보다 재계 순위가 높은 기업 가운데서도 출산지원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게 주는 기업이 많다. 재계 10위권 내 한 대기업의 과장급 남자 직원은 “우리 회사는 출산지원금이 아예 없어 부영 소식을 듣고 너무 부러웠다”며 “아내와 둘째를 낳을지를 놓고 고민만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부영처럼 1억원을 준다고 하면 (출산)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뀔 것 같다”고 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전 통계청장)은 “기업 저마다의 사정과 대·중소기업 간 격차, 조세 형평성 문제 등으로 인해 (기업에도 정부에도) 출산지원금이 쉬운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일단 지금처럼 미리 앞서서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야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어 “저출생 대응에 나서는 가족친화 기업에 인적자본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추가 정책 지원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면서 “정부 지원이 더 확실해지면 일·가정 양립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대한 기업들의 의지와 책임감도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여전히 최저, 최저…해외토픽 된 한국 출산율 

각종 정책적 노력과 캠페인이 무색하게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이 2월28일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전년(24만9200명)보다 1만9200명(7.7%) 감소했다. 2016년(40만6200명)까지 40만 명을 웃돌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35만7800명) 40만 명 선을 지키지 못한 데 이어 2020년(27만2300명)과 2022년(24만9200명) 각각 30만 명, 25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에 또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이었다. 전년(0.78명)보다 0.06명 줄며 역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합계출산율은 2015년(1.24명)을 정점으로 8년째 내림세다. 2021·2022년 각각 0.03명이었던 하락 폭도 지난해 두 배 수준으로 커지는 등 하락 속도도 빨라지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1년 전보다 0.05명 감소하며 0.70명 선마저 무너졌다. 사상 첫 0.6명대 분기 출산율이다. 

한국의 저출생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00명에 못 미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는 올해도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이 추계한 올해 합계출산율은 0.68명이다. 임영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올해 출생아 수는 지난해 23만 명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합계출산율도 작년 추계치에 수렴할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의 저출생 문제가 해외토픽감으로 떠오를 정도다. 지난해 12월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인구 감소 상황을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같은 달 29일 미국 CNN방송도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때문에 충분한 군인 수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올해 2월8일엔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한국 국가 소멸 위기감’이란 제목으로 1면과 3면에 걸쳐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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