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조항 없앤다”…‘간호법’ 재논의, 뭐가 달라지나
  • 강윤서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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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간협 협상 기류에 의협 ‘반발’…대통령실 “간호법 제정 취지 부정한 적 없어”
간호사가 의료 현장에서 더 많은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사가 의료 현장에서 더 많은 진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됐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무산된 간호법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이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진료지원(PA) 간호사 역할의 법제화 추진을 검토하면서다. 직역간 갈등으로 좌초됐던 간호법이 ‘의대 증원’ 시국에 맞춰 제정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12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의료공백이 장기화되자 이를 메우기 위해 PA 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고 법·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일 시범사업 지침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더불어 대통령실은 간호법 제정을 재검토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간호사법’이라는 새 명칭으로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며 “과거에 마련된 (간호법의) 기본적인 틀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을 소거한 상태로 새롭게 논의하면 진척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당과 협조 중인 것으로 파악했다”며 “대한간호협회(간협)도 취지에 공감하고 있으며 지난해 타 직역의 반대로 인해 좌초됐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해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당시 간호법의 핵심 골자는 범위가 모호한 간호사 직역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 책무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특히 PA 간호사는 관행적으로 일부 의사 업무를 대신해왔지만 이는 현행법상 불법으로 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당시 제정안을 두고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불거졌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의사단체는 간호법 목적에 명시된 “모든 국민이 지역사회에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도록 한다”는 내용을 지적했다.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허용하는 근거가 된다며 반발한 것이다. 또 임상병리사 등 다른 보건직군에서는 업무 범위 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며 반대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같은해 5월 “유관 직역간 과도한 갈등, 사회적 갈등이 직역간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존 간호법의 취지를 전면 반대한 것이 아닌 간호사의 단독 개원 여지를 열어두는 몇 가지 독소 조항을 반대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이 부분을 고려해 국민의힘에서 중재안을 냈지만 공론화되지 않았고 부득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현재 (의료대란) 상황과 당시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목적을 비추어봤을 때 과거 독소 조항을 배제한 형태로 새로운 간호사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다.

11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한 의사가 복도를 지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자 지역 거점국립대병원에 공보의와 군의관을 파견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에서 한 의사가 복도를 지나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하자 지역 거점국립대병원에 공보의와 군의관을 파견했다. ⓒ연합뉴스

간호법 제정 가능성…간협 ‘반색’ vs 의협 ‘격앙’

일각에선 의료공백이 장기화될수록 간호법 제정안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을 메울 대안이 현재로선 마땅히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료계 일각에선 직역 간 갈등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독소 조항’을 없애겠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간호법 제정을 둔 의료단체 각 시각차가 선명하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안을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며 반색했다. 간협은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간호인력 활용 의료체계 개편’에 맞춰 논란 여지를 없앤 간호법이 재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추진했던 간호법은 국민의 권익을 지키고 의료의 안정성을 만드는 법”이었다며 “일부 이익단체의 ‘의료계를 분열시키는 악법’이라는 프레임 속에 결국 좌초됐다”고 밝혔다.

간협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지난해에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간호사의 헌신이 알려졌고, 올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간호사들의 현실이 드러났다”며 “굉장히 큰 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 구분이 안 되는 의료현장의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간호법 제정 추진에 동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의협은 지난 7일 간호법 제정과 관련해 “불법 의료행위 양성화”라며 “제대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PA 간호사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인 면허 범위가 무너지면서 의료 현장은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련해 정부는 간호법 제정을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직역 간 의견 조율 과정을 충분히 거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이런 유사사항이 추후에 발생할 것을 대비해서라도 간호사 의료행위에 대한 충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차원”이라며 “법제화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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