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앞 교수 사진에 눈물”…벼랑 끝에 선 환자들
  • 정윤경 기자 (jungiz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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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의대 교수 사직서 제출 가시화…전공의 집단 이탈 6주만
사직서 낸 교수, 외래 진료 축소·주 52시간 근무 돌입
암 환자 “사직 교수, 환자가 내 부모·동생이라고 생각해 보길”
3월25일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병원 측이 재진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보고 있어 한산한 모습이다. ⓒ시사저널 정윤경
3월25일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병원 측이 재진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보고 있어 한산한 모습이다. ⓒ시사저널 정윤경

전공의가 의사 가운을 벗은 지 한 달 만에 교수마저 줄줄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은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까지 외래 진료를 대폭 축소하고 주 52시간 근무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병원에 남은 환자들은 “사람 목숨을 가지고 이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25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입학 정원의 일방적 결정과 정원 배분으로 촉발된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 누적된 피로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주 52시간 근무, 중환자 및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외래진료 축소는 금일부터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진료실 앞 붙은 교수 사진 보고 눈물 왈칵”

이날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한 달 전에 비해 한산한 모습이었다. 지나갈 틈 없이 환자와 보호자로 빽빽하게 차있던 복도는 썰렁하게 비어있었다. 병원 측이 의료진 부족으로 초진 예약을 줄이고 재진 환자 위주로 받고 있어서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보호자들은 대기 좌석이 없어 병원 곳곳에 서서 기다렸지만 이날은 빈 좌석이 수두룩했다. 오전 11시께 불이 꺼진 소아외과 진료실도 보였다.

3월25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의 한 진료실에 불이 꺼져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3월25일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의 한 진료실에 불이 꺼져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어린이병원 1층에서 만난 보호자 이아무개(47)씨는 “진료 예약을 받을 때 간호사들이 최소한 인원만 받고 있는 것 같다”면서 “모바일로는 초진 예약이 아예 안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류마티즘을 앓는 자녀를 3년째 진료해 준 교수가 사직할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전했다. 그는 “4주마다 SRT를 타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진료를 받으러 올라오는데 오늘 담당 교수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다”며 “특히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들은 시시각각 상태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이제껏 지켜봐 온 교수가 아이 상태를 가장 잘 알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3년 전 폐이식을 받은 자녀의 정기검진을 위해 충남 천안에서 왔다는 이아무개(40대)씨도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에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는 “여기(서울대병원)까지 왔다는 건 동네 병원에서는 해결이 안 되는 큰 질환이라는 것”이라면서 “‘빅5’ 병원마저 마비가 돼버리면 환자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2·3차 병원으로 내려갈 수 있는 질병을 가진 사람이면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대처를 할 수 있겠지만, 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2월20일 서울대병원 본관 1층(위쪽)과 3월25일의 모습(아래쪽) ⓒ시사저널 정윤경
2월20일 서울대병원 본관 1층(위쪽)과 3월25일의 모습(아래쪽) ⓒ시사저널 정윤경

이날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도 시시각각 바뀌는 의료계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들은 의료계와 정부 간 대화의 물꼬가 극적으로 트이기를 기대했다.

서울대병원 본관에서 만난 김아무개(60)씨는 “수술 날짜가 잡히기를 중증 환자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데 한시라도 빨리 의사 단체와 정부가 협의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인근 암병원에서 만난 이아무개(58)씨는 “서로 한 발씩만 양보를 하면 될 텐데 사람 목숨을 가지고 이럴 수가 있느냐”라며 “입장을 바꿔 내 부모, 동생이 환자라고 생각을 해 달라”고 지적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이씨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 담당 교수가 변경됐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병원에 남은 환자들은 교수들에게 지금이라도 사직서 제출을 철회해달라고 당부했다. 폐 질환으로 5년째 한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다는 남아무개(78)씨는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실 앞에 선생님 얼굴이 붙어있는 걸 보는 순간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면서 “만나 뵙게 되면 ‘감사하다. 자리를 비우면 절대 안 된다’고 환자들의 바람을 전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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