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반 형사 두 명 잔혹 살해한 흉악범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4 12: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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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휴대 안 하고 무방비 상태였던 수사 경찰에 기습 공격

경기도 고양 출신의 택시기사 이학만(35)은 학창 시절부터 문제아였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에 툭하면 가출했다. 급기야 범죄의 늪에 빠져 절도, 폭력, 강간 등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며 전과 10범이 됐다.

이학만에게는 애인 이아무개씨(36)가 있었다. 그는 한동안 이학만과 거리를 두며 만남을 피해 왔다. 이학만은 이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2004년 7월29일 이학만은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의 한 모텔로 이씨를 유인해 “왜 만남을 피하느냐. 계속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며 협박하고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씨는 경찰에 이학만을 신고했다.

경찰관 살해범 이학만이 2004년 8월17일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치료를 받던 이대목동병원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이학만 도피 당시 수배 사진 ⓒ연합뉴스·경찰청 제공
경찰관 살해범 이학만이 2004년 8월17일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치료를 받던 이대목동병원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이학만 도피 당시 수배 사진 ⓒ연합뉴스·경찰청 제공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8일 만에 검거

경찰은 곧바로 검거 작전에 돌입한다. 이씨는 8월1일 오전 9시에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카페에서 이학만을 만나기로 약속했고, 이를 경찰에 알린다. 서울서부경찰서 강력2반 소속인 심재호 경사(33)와 이재현 순경(27), 정승화 경장(39)은 이씨 검거를 위해 미리 카페 주변에 잠복했다. 정 경장은 도주로 차단을 위해 바깥에서 대기하고 심 경사와 이 순경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이학만도 만일의 상황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그는 길이 24cm의 흉기를 휴대하고, 자신이 몰던 택시를 도주가 용이한 곳에 주차했다. 뿐만 아니라 지인을 대동해 경찰의 잠복 여부를 살피게 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오전 9시25분쯤 심 경사와 이 순경은 이학만에게 다가가 경찰 신분증을 제시했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던 그때 이학만이 흉기를 꺼내더니 심 경사의 심장과 옆구리를 찔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방어할 틈도 없었다. 이 순경이 심 경사를 부축하자 이학만은 이 순경의 등을 수차례 찔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순경은 끝까지 검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학만의 다리 한쪽을 붙잡고 카페 안 사람들에게 “119를 불러 달라” “도와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이학만이 “다가오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이 순경을 향해 마구 칼을 휘둘렀다. 이 순경은 9곳이나 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3단 경찰봉과 수갑, 포승줄만 휴대한 형사들은 흉기를 휘두르는 흉악범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치정에 얽힌 폭력 사건으로 비교적 경미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방심한 게 화근이었다. 이학만은 범행 후 카페 정문 쪽으로 뛰어나와 건너편에 세워둔 택시를 타고 도주했다. 그 뒤를 흉기에 찔린 심 경사가 따라 나왔으나 이학만을 잡지 못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 경장은 심 경사를 구하기 위해 이씨를 곧바로 뒤쫓지 못했다.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은 경찰관 두 명이 살해되자 직접 사건 지휘에 나서며, 서울 시내 전 경찰서 형사들을 이학만 추적에 투입했다. 경찰은 이학만이 몰던 영업용 택시의 위치추적장치(위성항법장치·GPS)를 가동했지만 오후 9시51분쯤 동대문구 용답동에서 발신이 끊겼다. 다음 날 오전 영등포구 신길6동 대방전화국 인근 주택가에서 이씨가 타고 달아난 택시가 발견된다. 차량 주변 공터에는 피묻은 바지와 양말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건 발생 3일째인 8월3일 경찰은 이씨가 도피처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민가에 침입하거나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며 현상금 2000만원을 걸고 전국에 공개수배령을 내린다. 같은 날 이학만의 주민등록번호로 가입된 인터넷 아이디가 성북구 돈암동의 주택가에서 접속된다. 경찰은 특공대, 기동대, 강력계 등 300여 명을 총기로 무장시켜 수색작전을 벌였고, 100여 가구를 수색해 접속자를 찾아냈다. 그는 다름 아닌 초등학생이었고, 수배 전단지에서 본 주민번호를 입력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다른 소동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수배 전단지를 모두 수거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사이 이학만은 행적을 완전히 감춘다. 더 이상의 추적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경찰은 현상금을 최고액인 5000만원으로 올렸다.

ⓒ연합뉴스
2004년 8월8일 경찰에 검거되면서 부상당한 경찰관 살해범 이학만이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연합뉴스

주택으로 숨어들어 할머니와 손자 위협

경찰과 이학만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경찰은 서울 시내의 모든 경찰력을 투입해 시외로 나가는 차량들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그러면서 토끼몰이 하듯이 점점 수사망을 좁혀갔다.

이학만도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그는 신길동에 택시를 버린 후 바로 옆 다세대주택에 걸려있던 바지와 티셔츠를 훔쳐 입은 다음 택시를 잡아탔다. 다음 날 밤에는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한 여관에 투숙했으며, 다음 날 아침 근처에 있는 검은색 크레도스 승용차를 훔쳤다.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곧바로 강서구 방화동으로 이동했다. 1996년부터 약 3년 동안 이 지역 옥탑방에 거주하며 포장마차 영업을 했던 적이 있어 주변 지리에 익숙했다. 낮에는 개화산에 들어가 인적이 없는 숲에서 잠을 잤다. 밤이 되면 산에서 내려와 방화대교 옆 한강 둔치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와 물을 빼 마시며 허기를 채웠다.

8월8일 이씨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자동차를 몰고 방화3동 주택가로 나왔다가 연료가 떨어지자 가정집으로 숨어들 계획을 세운다. 오후 2시쯤 언덕길에 인접해 있는 데다 창문에 창살이 없는 연립주택 2층집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침입한다. 그는 중간방 창문을 통해 들어간 후 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박아무개씨(여·48)와 박씨의 외손자(4)를 흉기로 위협했다. 이학만은 “내가 경찰관 살인범”이라며 흉기를 휘둘렀고, 박씨는 본능적으로 이씨의 손을 잡으며 “살려 달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박씨는 그 와중에도 침착하게 “나도 당신만 한 아들이 있다. 절대 신고하지 않겠다”고 안심시켰다. 박씨는 더렵혀진 이학만의 옷을 보고 함께 사는 사위의 셔츠를 가져와 갈아입게 했다. 이어 “배가 고플 테니 국수를 끓여주겠다”며 점심을 챙겨줬다. 당시 박씨는 딸과 사위가 출근한 후 손자와 함께 집에 있었다.

오후 6시40분쯤, 이학만은 자신에 대한 경찰의 추적이 궁금했던지 박씨에게 “컴퓨터를 쓸 수 없느냐”고 물었고, 박씨는 작은방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줬다. 이학만이 기사 검색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박씨는 “청소를 해야겠다”며 안방에 들어가 진공청소기를 켜고 경기도 광명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해 “경찰을 죽인 살인범이 지금 집에 있으니 빨리 신고하라”고 말했다. 경찰이 들어오기 쉽도록 베란다 창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2004년 8월5일 서울 신당동 서울경찰청 기동단에서 열린 서울 서부경찰서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의 영결식에서 심 경위의 관이 경찰의장대에 의해 운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얼마 후 112 신고를 받은 관할 강서경찰서 공항지구대 경찰관들이 출동하자 베란다 쪽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걸 보지 못하고 현관문 초인종을 눌렀고, 위험을 감지한 박씨는 손자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경찰이 곧바로 현관문 진입을 시도하면서 박씨가 빠른 대처를 하지 않았으면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이학만은 인터폰 화면을 보고 경찰이 온 것을 확인한다. 그는 화장실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아줌마, 그러면 나 죽어요”라고 괴성을 지른다.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자 안방에 들어가 흉기로 복부와 허벅지를 찔러 자해를 시도했다. 그사이 경찰은 베란다를 통해 집 안으로 진입해 이학만을 붙잡은 후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 응급수술을 받게 했다. 이로써 이학만의 도주극은 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씨가 몰고 다니던 훔친 차량 안에서는 애인 사이였던 이씨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애를 태우는 심정과 경찰을 두 명이나 죽여 자신도 죽고 싶다고 적어놓은 메모가 발견됐다.

경찰은 침착한 대처와 신고로 이학만 검거에 도움을 준 박씨에게 용감한시민장을, 아들에게는 감사장을 각각 수여했다. 또 신고보상금 5000만원도 두 사람에게 공동으로 전달했다.

이학만은 경찰관 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으며, 1심 재판부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관을 흉기로 찌른 것은 우발적인 사고였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경찰관을 마구 흉기로 찔러 현장 사망케 한 점을 볼 때 범행 수법이 매우 잔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이 국민의 생명 보호와 범죄 예방을 담당하는 점에 비추어볼 때 피고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적법한 공권력에 정면 도전했으며 또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국민적 염원과 피해자들의 원혼, 유가족의 고통을 고려해 피고인에 대해 극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학만은 형량에 불만을 품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며 “사전에 경찰관 살해를 계획한 것이 아니었고, 이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어 아직은 교화의 필요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학만은 현재 교도소에서 20년째 복역 중이다.

 

■미제로 남은 또 다른 경찰 피살 사건

1996년 8월9일 새벽 5시쯤, 서울 송파구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한 잠실1파출소에서 조성호 경사(46)가 방범대원실 바닥에 쓰러진 채 발견된다. 머리를 둔기에 맞아 많은 피를 흘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진행했지만 이날 오후 사망한다. 범인은 조 경사가 소지하고 있던 38구경 리볼버 권총과 실탄 3발, 공포탄 2발, 탄띠를 탈취해 간 상태였다. 조 경사의 양쪽 눈과 왼쪽 팔 등은 주먹으로 맞아 멍이 심하게 들어있었고, 왼쪽 눈썹 위 이마에도 자상을 입었다. 방범대원실 내벽 전체에 피가 흩어져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조 경사와 범인 사이에 상당한 격투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전국 경찰서에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전담반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대대적인 인원을 투입했지만 경찰 수사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는 파출소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때였다. 사건 현장을 정밀 감식했지만 지문 등이 나오지 않았다.

조 경사의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서도 의심 가는 사람이 없었다. 권총 탈취를 위한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도 열어뒀지만 수사는 제자리만 맴돌았다. 결국 영구미제가 되고 말았다. 파출소 안에서 경찰관이 살해됐지만 대대적인 수사에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의 흑역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파출소에는 CCTV가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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