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만으론 역부족”…시중은행, 동유럽으로 향하는 이유는?
  • 정윤성 기자 (jy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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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시중은행 세 번째로 헝가리 진출
신사업 ‘요충지’로 떠오르자 기업 금융 수요도 증가
들쭉날쭉한 동남아 실적에 사업 영토 확장 나서

국내 시중은행이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간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진출에 공을 들여왔지만, 동남아만으로는 글로벌 수익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분위기다. 이에 동유럽을 글로벌 영토 확장의 새로운 돌파구로 마련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5대 시중은행에서 2200여명이 자발적으로 은행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1인당 퇴직금 지급액은 평균 6억원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 연합뉴스
국내 시중은행이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 연합뉴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 22일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사무소를 개소했다. 부다페스트 사무소는 하나은행 본사 소속으로 동유럽 시장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현지 진출 국내 기업의 금융 수요에 맞춘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 연계하고 동유럽 기업과의 관계 확장을 위한 교두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체코 오스트라바에도 사무소를 둔 하나은행은 폴란드에도 신규 채널 개설을 추진 중이다. 하나은행뿐만 아니라 국내 시중은행은 이미 동유럽 주요 도시에 거점을 두고 세를 넓히고 있다. 신한은행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우리은행은 폴란드 카토비체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조만간 동유럽 진출을 가시화할 전망이다. 국민은행은 폴란드 페카오 은행 내에 사무소 격인 ‘코리아 데스크’ 설치를 추진 중이다. 2022년 페카오 은행과 업무 협약을 체결한 우리은행은 코리아 데스크를 통해 현지 진출 국내 기업과 영업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지원에 나선 모습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4일부터 5대 시중은행 및 기업은행 관계자들과 폴란드를 방문 중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국내 은행들의 원활한 폴란드 현지 진출을 위해 인허가 신청에 대해 폴란드 금융당국에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또한 한국 금융기관의 원활한 폴란드 현지 영업활동 지원을 위한 감독 협력 업무협약(MOU)도 상반기 중 체결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하나은행 사무소 개소식에서 왼쪽부터 김행범 헝가리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피터 사트마리(Peter Szatmari) 헝가리 투자청 수석국장 홍규덕 주헝가리 한국대사 이승호 하나은행 유럽중동지역본부장, 이기훈 하나은행 부다페스트 사무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 제공
지난 21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하나은행 사무소 개소식에서 왼쪽부터 김행범 헝가리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피터 사트마리(Peter Szatmari) 헝가리 투자청 수석국장 홍규덕 주헝가리 한국대사 이승호 하나은행 유럽중동지역본부장, 이기훈 하나은행 부다페스트 사무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나은행 제공

동유럽 전초기지 세우는 기업은행도 덩달아 집결

시중은행이 폴란드, 헝가리를 중심으로 동유럽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이 지역이 2차 전지, 방산 등 글로벌 신사업의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몰리는 상황에서 미래 가치가 크다고 판단, 이들 기업의 금융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폴란드는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등 7개 국가와 국경을 접한 산업 중심 국가다. 이 같은 지정학적 가치 덕분에 유라시아 중심의 관문이자 물류센터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국내기업 진출도 활발하다. 23년 기준 LG에너지솔루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을 비롯해 삼성SDI, 포스코홀딩스(재활용품 공장), SKC(동박 공장) 등 370개 기업이 터를 잡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현지에 법인을 두고 있다.

특히 최근 ‘K방산’ 업체들이 폴란드와 교역을 확대하면서 시중은행의 진출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폴란드 수출은 90억2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4.8% 증가했는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한국 방산 기업들의 무기류와 항공기 수출이 이를 주도했다. 지난해 무기류와 항공기 항목을 합친 한국의 전체 폴란드 방산 수출액은 11억7200만 달러로 전년에 비해 184% 급증했다.

헝가리 또한 지리적 강점과 노동력으로 300여 개의 국내 기업이 진출해 있다. 특히 최근 2차 전지,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하면서 헝가리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에서 한국 기업 투자가 1위를 기록할 정도로 국내 기업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선 이처럼 국내 기업 진출이 활발한 상황에 사업상 자금조달에 있어 시중은행이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정보력이 높은 국내 시중은행이 현지 자금력이 높은 현지 은행과의 MOU 등을 통해 시너지를 내면 유럽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한캄보디아은행 ⓒ연합뉴스
신한캄보디아은행 ⓒ연합뉴스

동남아 편중된 해외 법인수익은 주춤

시중은행의 동유럽 공략은 동남아에 편중된 해외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의도로도 읽힌다. 그간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은 동남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집중하면서 견조한 실적이 유지되고 있지만, 최근 동남아 대형은행과 빅테크 등의 성장으로 수익성에 한계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대 시중은행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각 은행 해외 법인의 총 순이익은 7118억원으로 전년(1643억원)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났다. 우리은행을 제외하면 모두 전년보다 실적이 개선됐지만, 동남아 법인에서 눈에 띄는 실적 감소가 있는 만큼 영토 확장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지난해 해외 법인을 통해 가장 많은 수익(4824억원)을 거둔 신한은행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일본과 베트남에서 순이익의 약 74% 이상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신한인도네시아 은행의 경우 전년(126억원) 대비 순익이 50억원 가량 감소했고, 신한캄보디아 은행은 전년(236억원)에 비해 143억원 줄며 60.6% 급락했다.

동남아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시중은행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우리소다라은행도 지난해 순익이 전년에 비해 11.81%(81억원) 감소했고, KB프라삭은행도 53.5%(1318억원) 줄었다. 그간 동남아 금융산업의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틈새시장으로 꼽히며 견조한 실적을 거둬왔지만, 다른 지역으로도 발을 넓혀야 한다는 판단이 나온 이유다.

이종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 2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계 은행은 현지 저원가성 예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수익성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국계 은행이 현지 대형은행 M&A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있지만, 동남아 은행들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현실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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