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유연·대화’ 꺼냈지만…‘직’ 던지는 의대 교수들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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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 433명·서울대 400명 규모…고대·연대 사직서 일괄 제출
정부, 강경대응 보류했지만…‘2000명 증원’ 백지화 요구에 난항 전망
3월25일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25일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이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향해 한 목소리로 '대화'를 꺼내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연한 대처' 주문에 따라 사태 해결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읽히지만, 집단 사직 행렬에 돌입한 의대 교수들은 '2000명 증원'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이 예고된 첫 날인 25일 전국 40개 의대 소속 교수 대부분이 사직서를 제출했거나 사직을 결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비대위)는 전날 사직서 제출 결의 입장문을 통해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는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상대, 계명대, 고려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별도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40개 의대 대부분이 사직서 제출에 동참할 것으로 보고 있다. 

3월25일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병원 측이 재진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보고 있어 한산한 모습이다. ⓒ시사저널 정윤경
3월25일 오전 9시께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병원 측이 재진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보고 있어 한산한 모습이다. ⓒ시사저널 정윤경

집단사직 예고 첫 날에만 1000명 안팎의 교수들이 사직 행렬에 동참한 것으로 파악됐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소속 교수 767명 중 56.4%에 해당하는 433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경우 병원 근무 중인 의대 교수 233명 중 93명이 교수협의회에 사직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의 전임·임상교수들은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도 의대학장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했다. 이들 대학은 정확한 사직서 제출 규모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교수 400여 명도 사직서를 제출했거나 제출 예정이다. 방재승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원장은 전날 총회 종료 후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며 "앞서 1400명 교수 가운데 900여 명이 답변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의대 교수들은 정부에 '2000명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증원 규모 원점 재검토 없이는 사직이 불가피하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의대 교육 여건이나 의사 수 추계가 어느 정도 증명되는 상황에서 숫자가 발표되는 게 합당한 절차이며, 그래서 증원에 대한 백지화를 얘기하는 것"이라며 "백지화가 '0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과 정확한 추계, 현재 교육 및 수련 여건에 기반한 결과가 나오면 누구나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 위원장도 "일방적인 의대 증원 추진은 의료 현장의 엄청난 혼란을 만들었다"며 "국민과 대한민국 의료를 위해 지금의 의대 증원 정책을 즉시 멈춰달라"고 촉구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화 테이블 앉아도…'첩첩산중'

전공의 이탈에 이어 의대 교수 줄사직까지 가시화되자 정부는 의료계와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직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도 집행 직전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잠정 보류하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건의를 수용해 미복귀 전공의 면허정지에 대해 '유연한 처리'를 한덕수 국무총리 등 내각에 주문했다. 전날에도 윤 대통령은 한 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와 더욱 긴밀히 소통해달라"고 강조했다.

다만 양측이 '2000명 증원'을 두고 첨예하게 입장이 갈려 곧장 봉합 수순으로 나아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일관되게 전공의 즉각 처분 입장을 펼치다 선회한 데 이어 증원 규모까지 축소할 경우 '결국 정부가 밀렸다'는 메시지를 주게 되고, 여론 지지 속 추진한 정책인만큼 원칙 훼손에 따른 역풍도 일 수 있다. 

'중재자'를 자처한 한 위원장은 전날 인요한 국민의미래(비례 위성정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만나 "내 역할은 '의'와 '정'을 연결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을 맡고 있는 인 위원장은 의사들의 요구사항과 의대 증원 숫자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에 한 위원장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 이상의 개입은 내 영역은 아니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당의 역할은 대화의 물꼬를 트도록 측면 지원하는 것이며, 실질적인 논의·합의는 정부와 의사들이 진전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의료계 주요 관계자들과 의료개혁 정책 전반에 대해 논의한다. '대화 테이블' 구성에 돌입한 정부는 총리실을 중심으로 대화 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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