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나는 스포츠’ 떴다
  • 이용균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6.12.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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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한 수영의 박태환·귀족풍 승마의 김동선 ‘인기’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간지 나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일본어에서 따온 ‘간지 난다’는 말은 ‘스타일이 멋지다’는 뜻이다. 반대로 멋스럽지 않고 촌티 난다는 뜻의 ‘구리다’는 ‘찌질이’로 몰리는 기피 대상 1호다.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볼 때 바야흐로 ‘간지’와 ‘스타일’의 시대다. 폼 나는 것이 최고다. 스포츠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전 시대의 스포츠가 땀과 열정을 칭송받고 노력과 고통을 보상받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스포츠는 겉보기에 폼이 나고 스타일이 ‘죽여야’ 한다.
카타르 도하에서 12월1일부터 15일까지 열린 2006 아시안게임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물씬 반영됐다. 럭셔리 스포츠가 뜨고 헝그리 스포츠는 졌다.

이번 아시안게임 최고 스타는 역시 수영 3관왕을 이룬 박태환(17·경기고)이다. 박태환은 자유형 2백m와 4백m, 그리고 1천5백m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물론 100m에서 은메달, 계영 3종목에서 동메달 세 개를 따며 메달을 일곱 개나 목에 걸었다. 기록도 세계 수준이었다. 2백m와 1천5백m에서는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1천5백m에서 세운 14분55초03은 올해 기록 중 2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태환이 주목된 데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폼 나는 스타일이 큰 몫을 했다. 귀공자 같은 얼굴에 수영 선수답게 잘빠진 몸매는 최근 트렌드인 ‘얼짱’과 ‘몸짱’을 한데 합쳐놓은 셈이었다.
외모뿐만 아니다. 박태환이 수영장에 들어와 입수(入水)하기 전까지 귀에 쓰고 있던 커다란 헤드폰은 패션 아이콘이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MP3를 듣는다는 고백은 ‘쿨’하기 짝이 없었다.


복싱·육상 트랙 등 ‘헝그리 종목’ 노 골드

박태환을 둘러싼 이미지에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나 ‘고난을 이겨낸 땀’ 등이 깨끗하게 탈색되었다. ‘수영 신동’이었고, ‘체계적인 조기 교육’과 ‘과학적인 훈련’ 등의 이미지만 남아 있다. 고통과 땀은 ‘구린’ 이미지이고, ‘영재의 과학적인 조기 교육’이라는 이미지는 ‘스타일리시’하고 ‘럭셔리’하다.
사실 수영은 ‘럭셔리’한 종목이다. 옛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헤엄치던 시절에는 강과 바다가 훈련장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좋은’ 수영장은 ‘회원권’을 가져야 들어갈 수 있는 럭셔리한 장소다. 럭셔리한 곳에서 럭셔리한 몸매를 가진 이들이 더욱 럭셔리하게 자신을 다듬는 곳이다.
물론 수영은 힘들다. 하물며 세계 기록 수준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된다. 그러나 수영이 가진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이같은 고통을 제거한 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스포츠에 요구하는 것도 자학 수준의 혹독한 훈련이 아니라 ‘럭셔리’한 자기 과시로 옮아가고 있다. 모두들 먹고 살기 바쁜 지금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는 시대다.

이같은 시대의 흐름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박태환보다 앞서 주목된 선수는 승마의 김동선이었다. 승마라는 종목 자체가 갖고 있는 ‘귀족풍’ 이미지에 그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라는 점이 덧붙어져 눈길을 끌었다. 말 한 마리 값은 수억원을 넘었고, 대회 기간 말 한 마리의 사료값만 해도 6백만~7백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김형칠 선수가 낙마해 사망하는 사고가 더해져 승마는 대회 기간 내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표적 럭셔리 스포츠인 골프는 전통의 메달밭 양궁 못지않았다. 양궁처럼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을 싹 쓸었다. 특히 단체전에서는 2위 그룹과 넉넉한 차이를 보이며 골프 강국 이미지를 이어갔다.
20년 전 육상 여자 장거리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임춘애는 “라면 먹고 뛰었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라면 투혼’은 헝그리 정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헝그리 종목들은 사라졌다. 헝그리 정신의 대표 격인 종목 복싱은 노 골드에 그쳤다. 1986년 12체급 전체급 석권을 이룬 지 딱 20년 만이다. ‘간지’ 안 나게 ‘열라’ 뛰어야 하는 육상 트랙 종목 또한 노 골드다. 유도와 레슬링이 금메달을 수확했지만, 더 이상 눈길을 끌지 못하는 종목이 되었다. 폼 나게 한판승으로 이겨 준 이원희만 ‘간지가 나기’ 때문에 제외된다.

헝그리에서 럭셔리로 넘어가는 한국 스포츠의 흐름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나라에 충성’하기 위해 온 젊음을 자학하며 바쳤던 구시대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신호로 해석될 수도 있다. ‘럭셔리 스포츠’라고 하더라도 이것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인구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지 모른다. 다만 스포츠가 그 자체로 계급화되는 일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 ‘구린’ 스포츠가 천대받지 않도록 지원을 강화하는 체육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단, ‘럭셔리’ 한 선수들이 전혀 ‘럭셔리’하지 못한 태도를 보일 때 비난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증폭된다. 야구·축구·농구 등 프로 종목은 ‘구린’ 플레이를 보여줬고 통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이 다시 ‘럭셔리’ 이미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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