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 기준 ‘엄격’, 대피 훈련 ‘수시로’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0.10.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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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초고층 빌딩 안전 관리 실태 / 미국·일본, 법 규정 상세히 정해 건축물에 그대로 적용시켜

 

▲ 63빌딩 ⓒ시사저널 우태윤

전세계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보통 100층 빌딩의 경우 1만명의 상시 인원과 5만명의 유동 인구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초고층 빌딩에서의 화재 방지책은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사소한 사고가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초고층 빌딩에 대한 화재 방지 기준이 엄격하다. 세계 각국의 초고층 빌딩 안전 관리 실태를 살펴보았다.

지난 2003년 10월18일 미국 시카고의 35층 건물인 쿡 카운티 청사에서 화재가 나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화재 사고에 2천여 명이 대피하고 퇴근길 혼잡이 가중되는 등 큰 혼란을 빚었다. 이날 화재는 건물 12층에서 처음 발생해 고층부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22층에 고립되었던 13명 중 6명이 사망했으며 16~22층의 계단과 복도에서 대피하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부상당했다. 검찰, 주 정부 장관 사무실을 비롯한 각종 주 정부 기관이 들어서 있던 이 건물의 방재시스템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당시 제임스 조이스 소방청장은 “쿡 카운티 건물은 화재 경보 시스템은 갖추고 있었으나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계단실의 출입 통제도 문제였다. 계단실을 통해 비상 대피하던 중 계단실에 연기가 가득 차 다시 건물 내부로 대피하려 했지만, 출입 통제 장치에 의해 문이 잠기면서 계단실에서 질식사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해당 화재조사위원회는 최종 보고서를 통해 화재가 났을 때 계단실 문이 자동으로 잠금 해제되었다면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고를 계기로 미국 정부 기관과 관련 전문가는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례나 법령을 수정해 매 다섯 번째 층과 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동 잠금 장치를 해제하도록 규정했다.

▲ 타이베이금융센터(TFC) ⓒ연합뉴스

이러한 조치 외에도 미국의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방재 관련 법규는 매우 구체적이고 까다롭다. 미국 소방청(U.S. Fire Administration)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고층 빌딩 화재로 연간 60명이 사망하고 9백30명이 부상을 당하며 재산 피해만도 무려 2억5천2백만 달러에 이른다. 물질적 피해는 차치하고라도 인명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엄격한 조항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방재 대책의 기본적인 지침은 미국 방화협회(NFPA)와 소방기술사회(SFPE)가 제시한다. 그리고 이 지침에 따라 각 주와 도시는 해당 지역의 특성에 맞춰 건축물 규정을 상세하게 정한다. 뉴욕의 경우 건축물 바닥이나 기둥, 계단실, 엘리베이터, 배관과 도선 등에 이르기까지 재질이나 크기 등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자동 소화 장비에 관한 의무 조항은 엄격하다. 초고층 빌딩에서 화재가 났을 경우 고가 사다리차의 이용이나 공기 매트를 통해 인명을 구조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각 층마다 자동으로 작동되는 스프링클러 방호를 의무화한 것이다.  

일본은 소방법·건축기준법 규정에 따라 대형 건물의 소유주는 방재센터를 만들거나 방화벽·스프링클러 설치 등을 위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스프링클러 설비 또한 최첨단이다. 랜드마크 빌딩의 경우 ‘신속 반응 스프링클러’를 갖춰 일반 스프링클러보다 세 배가량 빠른 30~90초 정도에 반응하도록 했다.

또 일본 소방법은 해치형 내림식 사다리를 적응성을 갖춘 피난 기구로 인정하고 계단이 한 개밖에 설치되지 않는 소규모 건축물에서도 두 방향 피난로를 확보하기 위해 피난 해치를 설치한다. 피난 해치는 발코니나 다용도실에 설치되어 누구나 손쉽게 조작해 아래층으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게 하는 피난 기구이다. 방범·보안의 기술적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지만 피난 통로로서 해치가 필요함을 절감한 데 따른 것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미국은 공동주택의 층수가 4층 이하이고 각 층당 4세대 이하로서 스프링클러 설비를 갖춘 경우에 한해 한 개의 직통계단을 설치할 수 있다. 화재 예방책과 즉시 대응도 중요하지만 만에 하나 화재가 커졌을 경우 대피해야 하는 상황을 철저히 고려한 규정들이다. 

▲ 부르즈 칼리파 ⓒ연합뉴스
화재 대피 훈련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일본 도쿄의 한 초고층 빌딩은 방재센터 주도로 화재 등의 상황을 가정해 놓고 수시로 훈련을 한다. 대피 방법, 진화 작업의 순서, 인명 구조 등에 관한 지침을 만들고 실제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하는 것이다.  

홍콩·두바이, 대피층 확보에 주력

홍콩은 대피층과 관련한 규정이 엄격하다. 우선 25층을 초과하는 모든 빌딩에 대피층 설치를 의무화하고 용도에 따라 규정을 달리 적용한다.

산업용 빌딩의 경우 20층마다 대피층을 설치해야 하고 산업용 빌딩 이외의 건물은 25층마다, 거주용 빌딩은 지붕을 피난처로서 실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두바이의 대표적인 건축물 ‘부르즈 칼리파’에도 대피층 조항은 엄격히 적용된다. 총 1백60층의 부르즈 칼리파는 모두 4개층에 피난 안전 구역을 두고 있다. 이 구역에서는 건물에 화재가 일어나도 최대 두 시간 동안 피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부르즈 칼리파뿐만 아니라 두바이에서는 연면적 20만 평방피트 이상 또는 21층 이상의 건물은 의무적으로 소방서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RMS)의 모니터 대상이 된다. 이것은 화재가 일어났을 때 해당 건물을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과 함께 조기 진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방재 시스템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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