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패러다임부터 확 바꿔라”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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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연속 헛발질에 비판 잇따라…“수사 능력 떨어지는 검사들이 핵심 차지해 문제” 지적도

 

▲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2월1일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회장 소환은 검찰이 공개수사를 본격화한 지 77일 만에 이루어졌다. ⓒ시사저널 임준선

요즘 검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2009년 8월 김준규 검찰총장이 취임한 이후 1년 반 동안 수시로 야심차게 칼을 빼어들었지만 대부분 힘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날에 녹이 슬어버렸다. 김총장 체제 검찰의 행보에 대한 안팎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근본 이유이다. 벌여놓은 일들이 모두 실망스런 결과로 나타나다 보니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지난 1월30일과 31일 이틀 동안 한화그룹과 태광그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단락된 대기업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표적이다. 수사에 착수하면서 내놓은 검찰의 일성, 장기간에 걸친 수사에 비해 마무리는 실망만 안겨주었다. 한화그룹에 대한 수사는 김승연 회장을 비롯해 11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그쳤고, 태광그룹에 대한 수사는 이호진 회장만 횡령 및 배임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을 뿐 나머지 관계자 여섯 명은 불구속 기소로 마무리했다. 정·관계 인사 비리로 확산될 것이라는 예상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처럼 계속되는 검찰의 헛발질 수사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진술과 자백에 의존하는 구시대식 수사 방식을 이제는 바꿀 때가 왔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수사에 먼저 착수하고 나서 혐의 입증 자료를 구하는 식의 검찰 수사 패러다임이 막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화그룹 수사의 경우, 1백37일 동안 서울서부지검은 김승연 회장을 세 차례 소환하고 전·현직 임원 3백여 명을 8백여 차례 이상 소환했다. 20여 개 계열사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핵심 관련자 여섯 명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모두 기각되면서 역풍을 맞았고, 결국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었다.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검찰 수사 방식에 요구되는 투명성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 수사 방식이 지능화되는 범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세상이 변하고 범죄의 형태가 변했기 때문에 이를 들춰내고 입증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검찰을 떠난 한 변호사는 “수사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수사 대상들이 법망을 피하는 능력도 점점 전문화되고 세밀해지고 있다. 구속 수사 중심의 속전속결 수사 방식으로 대기업이나 정·관계 인사들의 비리를 척결하는 시대는 지났다. 검찰의 수사 시스템을 새롭게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너무 잦은 순환 인사도 문제 있다”

검찰 수사 능력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검찰과 법원의 대립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사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단순한 파워게임이 아니라 사회 변화의 한 흐름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법무부에 파견된 한 검사는 “법원의 결정이 점점 피고인의 인권을 강조하는 식으로 내려지고 있다. 영장을 받아내기 위해서 이전보다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에 맞춰가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계속된 영장 기각을 검찰의 수사 능력 부족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항변이다.

김준규식 인사에 대한 불만도 검찰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국제·기획통으로 분류되는 김총장의 성향이 인사에서도 드러났다는 것이다. 김총장 부임 이후 수사통으로 분류되는 검사들보다는 기획에 능한 인물들이 대검 중수부와 각 지검 특수부에 배치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법무부의 검찰 관련 한 관계자는 “검찰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적절한 인물을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검사들이 핵심 수사 부서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다. 총장의 인사 스타일이 믿을 만한 사람들을 주요 부서에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군이나 검찰이나 모두 일선에서 뛰는 ‘야전’들이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기획통들만 인사에서 혜택을 받는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문화이다”라고 비판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사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교육시스템과 수사 전문 인력이 수사 노하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수사 부서에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특수수사통으로 이름을 날린 한 전직 검찰 인사는 “너무 잦은 순환 인사가 문제이다. 특수부로 가는 것을 출세의 사다리에 오르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경력 쌓으려고 아무나 가서 6개월이나 1년 정도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장기 수사도 하지 못하고 수사 노하우도 쌓이지 않는다”라고 검찰의 인사 문제를 지적했다.


ⓒ시사저널자료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대검 중수부장을 맡는 동안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자 살아 있는 권력으로 불리던 김현철씨를 구속하기도 했던 특수수사통이다.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검찰을 위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심 전 고검장에게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검찰의 수사 능력이 예전에 비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많다.

예전보다 수사 방식이 미숙하거나 담당자들의 자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사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김준규 총장 체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인사와 사건 배정에 문제가 있다. 이번 재벌 수사만 해도 대검 중수부가 해야 할 사건이다. 지검은 수사 전문 인력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골치 아프고, 압력이 예상되니까 지검으로 넘긴 것 아니겠나. 김총장 자체가 수사가 전문이 아니다. 소리만 요란했지 1년 반 동안 수사 예행연습만 잔뜩 한 셈이다.

김총장이 “신속히 환부를 도려내 기업을 살리는 수사를 하라”라는 말을 많이 강조했는데.

말이야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구속 수사 하나 못하면서 어떻게 신속하게 하나. 이번 사건이 장기화되었다고 보지도 않는다. 내가 한보그룹 사건을 맡았을 때도 5개월이 걸렸다. 이번 것은 3~4개월 하다가 중도에 봉합한 것 아니냐. 그러면 검찰의 권위도 서지 않는다. 말은 옳은데, 검찰이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검찰 조직에 변화를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사 조직이 광역화되어야 한다. 자기 관할도 아닌데 먼저 본 팀이 수사하고 그러는 것은 맞지 않다. 요즘 지검 단위에 수사 능력이나 여건이 잘 안 갖추어진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나. 수사받는 사람도 불편하고 수사 자체도 성공률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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