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는 일 없는 김준규의 검찰, 최후 승부수 던지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2.1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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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반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위기에 몰려 있던 김준규 총장 체제의 검찰이 중수부를 앞세워 새롭게 기지개를 펴고 있다. 현재 방산 비리를 비롯해 일부 대기업이 검찰의 사정권에 포착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검찰의 반격은 성공할 것인가.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의 임기는 오는 8월이면 끝난다. 불과 6개월 정도 남았다. 전체 임기의 7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하지만 김준규 체제의 검찰은 역대 최약체라는 안팎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렇다 하게 내세울 ‘작품’은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다. 2009년 8월 취임 당시 ‘수사통’이 아닌 ‘국제통’인 김총장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조차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는데,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소리’만 요란했던 한화·태광·C&그룹 등 대기업 수사는 어느 때부터인가 흐지부지되고 있다. ‘한명숙 사건’은 오히려 검찰을 코너에 몰았다. 방산 비리 수사에, ‘청목회’ 수사에 칼끝을 이리저리 휘둘렀으나, 되돌아온 것은 “무리하게 수사를 했다”라는 비판이었다.

실제 김준규 체제의 검찰에서 가장 공을 들인 사건은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 자금 의혹 수사였다. 하지만 검찰은 ‘한명숙 재판’에서 연달아 ‘물’을 먹고 있다.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는 지난해 4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이와 별개로 검찰이 새롭게 빼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을 받았다’라는 의혹도 지난해 12월20일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라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급반전되었다.

검찰이 작심하고 달려들었던 정·재계 수사들도 변죽만 울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변변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던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재계를 비롯한 정치권에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한화그룹 수사를 필두로, 하루가 멀다 하고 태광·C&그룹 등에 검찰 수사진이 들이닥쳤다. 관련자들도 대거 검찰청사로 불려가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 서초동 법조타운과 여의도 정가에는 정체불명의 불법 로비 리스트가 나돌았다. 특히 한화와 태광그룹 수사를 ‘타고난 칼잡이’로 불린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이 진두지휘하면서 무언가 터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검찰은 또 현직 국회의원 다수가 연루된 청목회 입법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칼을 빼들었다. 경기도 고양시 식사지구 재개발 사업 비리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세 차례 압수수색을 단행하는 등 강한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식사지구 시행 사업자들이 호남 출신인 까닭에 민주당으로 수사의 불똥이 튈 것이라는 소문이 여의도 정가에 파다했다.

하지만 이러한 검찰의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나는 분위기이다. 지난 2월8일 기자와 만난 대검의 한 간부는 “한화·태광·C&그룹 수사는 사실상 종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수사도 생물이어서 수사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 의미는 없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대기업 수사 등에서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라며 씁쓸해했다.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0층에 있는 중앙수사부.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서부지검이 지난해 9월부터 20여 곳을 압수수색하고, 3백여 명을 소환 조사한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의 경우, 지난 1월30일 김승연 회장 등 11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그 다음 날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시킨 것이 고작이었다.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은 이 두 사건 수사가 마무리된 1월28일 갑자기 사표를 냈다. 대검 고위 간부는 이와 관련해 “한화 수사 당시 구속영장을 아홉 번이나 신청했는데 모두 기각당한 적도 있다. 단일 사건에서 영장이 아홉 번이나 기각된 사례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안다. 이 문제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을 남 전 지검장이 책임진 것으로 보면 된다”라고 전했다.  

‘호남 정치인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 C&그룹 사건도 임병석 회장이 배임·횡령 등으로 지난해 10월 구속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무성한 소문이 나돌았던 정·관계 불법 로비 의혹은 ‘단 한 건’도 드러나지 않았다. 식사지구와 청목회 사건 역시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설 연휴 이후 움직임 빨라져

새해 들어 검찰 내에서도 ‘레임덕’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준규 총장 체제가 사실상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더군다나 1월28일 느닷없이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 등 여섯 명의 고검장급 인사가 단행된 것을 두고, 김총장에 대한 청와대의 ‘질책’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설 연휴를 보내고 난 대검의 분위기는 또 한 번 반전하는 양상이다. 오히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긴장감도 흐른다. 검찰 안팎에서는 “김총장이 마지막 회심의 카드를 빼들었다”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월 중순께부터 검찰 내에서는 “대검 중수부가 또 움직이고 있다”라는 말이 나왔다. C&그룹을 전담하는 중수2과는 공소 유지를 위해 다른 사건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 대신, 그동안 ‘워밍업’하고 있던 중수1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설 연휴 직전에 만난 ‘중수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두고 봐라. 설 연휴가 끝나면 중수부가 활기를 띨 것이다. 중수1과에서 대기업과 방산업체 비리 내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것이다”라고 자신 있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그의 ‘예언’은 어느 정도 적중하고 있다. 설 연휴 직후인 2월7일, 중수부가 지난 1월부터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공금 유용 혐의를 잡고 내사를 벌여왔던 사실이 드러났다. 중수부는 그 다음 날(2월8일) 이 사건을 대전지검으로 이송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관계자는 “중수1과에서 다른 ‘큰 사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사건’(정옥근 사건)은 지검으로 내려보낸 것으로 안다”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중수부는 현재 어떤 ‘큰 사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일까. 검찰을 비롯해 사정 당국 관계자들을 여럿 접촉한 결과 대기업 서너 곳과 방산업체 한 곳이 중수부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 검찰 수사를 받고 구속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왼쪽)과 임병석 C&그룹 회장(오른쪽). ⓒ시사저널 윤성호 , ⓒ 연합뉴스

중수부는 우선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그룹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 그룹에 대해 내사를 벌여왔다는 것이다. 이 그룹은 2000년대 중반 이후 해외에 벤처 기업을 설립한다는 명목으로 거액을 투자했다. 그렇게 세운 회사들이 10개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가운데 몇몇 회사들은 손실 처리되면서 문을 닫았다. 검찰은 이 ‘문 닫은 회사들’이 그룹 오너의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유령 회사, 다시 말해 ‘페이퍼컴퍼니’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이 그룹이 해외에 설립한 벤처 기업들 가운데 일부는 현지인들을 고용한 흔적이 없다. 사업 실적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룹 오너 일가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비자금을 챙긴 것으로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다른 그룹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 그룹의 건설사는 수도권에서 대형 건축 사업을 벌이기 위해 시중 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면서 자금난에 크게 허덕이게 되었다. 이에 ‘여권의 유력 인사’에게 구원 요청을 했고, 이 여권 인사가 직접 나서서 이 그룹의 대출금 상환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당 은행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밖에 또 다른 그룹도 몇 년 전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재조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수부는 방산업체의 비리 의혹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정부 말기에 해군 관련 사업에 뛰어든 기업이 내사 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업이 사업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당시 정치권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전달하고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급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는 이 가운데 어떤 사건을 먼저 수사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중수1과가 여러 건을 내사했지만 사건 하나에 수사를 집중할 수밖에 없다. 확실한 범죄 혐의를 포착한 기업부터 수사에 들어갈 것이다. 나머지 내사를 진행했던 사건들은 일선 지검으로 이송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수사에서 이렇다 할 ‘재미’를 못 본 검찰이 이번에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검찰의 명예, 특히 김준규 총장의 체면이 중수부의 수사 행보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총장도 수사 성과를 올리기 위해 최근 들어 검찰 간부들을 자주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한 송년 모임에서 기자와 만난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는 “막상 검찰총장이 되고 나니까 ‘내가 재임하고 있는 동안에 역사에 기록될 만한 큰 사건들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라는 욕심이 생기더라”라고 회고한 바 있다. 김총장 역시 ‘조용히’ 임기만 채운 ‘그저 그랬던’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김총장의 최근 표정을 보면 독기를 가득 품은 듯이 보인다.


▲ 지난해 서울고검·중앙지검에 대한 국정 감사에서 노환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오른쪽)이 그랜저 검사와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검찰총장은 상당한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집권 4년차 이후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통령의 레임덕은 권력 비리를 불거지게 만들고, 이는 검찰총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후반기 검찰총장 인사에는 특히 신경을 써서 측근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중 정부 때의 신승남 전 총장이 그랬고, 노무현 정부 때의 정상명 전 총장 역시 그랬다.   

김준규 검찰총장의 임기가 오는 8월에 만료됨에 따라 차기 총장 후보군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자신의 마지막 검찰총장 인사에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을 발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차기 총장으로 유력하게 점쳐지는 이는 노환균 대구고검장이다. 그는 지난 1월28일 서울중앙지검장에서 대구고검장으로 전격 발령 났다. 그의 ‘대구행’을 놓고 검찰 안팎에서 갖가지 관측이 나돌았다. ‘좌천’으로 보는 시각이 컸다. 중앙의 모든 특수수사를 관장하던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지방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인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김준규 총장과 갈등을 겪고 있던 노환균 고검장을 (청와대에서) 배려한 것이었다. 노고검장을 차기 총장으로 앉히기 위해 잠시 고향으로 내려보낸 것일 뿐이다. 오는 8월에 금의환향할 것이다”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 내부에서 노고검장은 ‘성골’로 통한다. 경북 상주 출신이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이력 때문이다. 집권 4년차로 접어든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도 여권 핵심부와 두루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노고검장을 검찰 수장으로 낙점할 가능성이 크다.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차기 총장 임기는 이대통령의 퇴임(2014년 2월) 이후인 그해 8월까지다.

여권 일각에서는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도 차기 총장감으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09년 6월 ‘박연차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사표를 던졌던 임채진 전 총장의 후임으로 가장 유력했던 권수석이 2년 만에 다시 ‘친정’으로 화려하게 복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감사원장 내정 단계에서 낙마하자 권수석 얘기도 다소 시들해졌다. 정 전 수석이 낙마한 결정적인 계기는 로펌에서 월 1억원을 받은 전관예우 논란도 있었지만, “청와대 출신이 감사원장을 맡게 되면 감사원의 독립성이 지켜지겠느냐”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더 컸다. 권수석에게도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킬 수 있겠느냐”라는 지적이 쏟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의 총장 후보군으로는 지난 1월28일 전보 발령된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과 박용석 대검 차장검사, 차동민 서울고검장 등이 거명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사법연수원 13기 출신으로 노고검장보다 1년 선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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