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스트레스’, 그 비극의 굴레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4.1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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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학생 또 자살…학교측 상담 인력 추가 계획은 여전히 답보 상태

카이스트 학생이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4월7일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진 채 발견된 박 아무개씨(20)는 카이스트 수리과학과를 휴학한 상태였다. 올해 들어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은 지난 1월8일 조 아무개씨(19)와 3월20일 김 아무개씨(19)에 이어, 3월29일 장 아무개씨(25) 그리고 이번에 숨진 박씨를 포함해 총 네 명이나 된다.

지난 3월23일 <시사저널> 취재진은 김씨 사건을 계기로 카이스트의 끊이지 않는 자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직접 학교를 방문한 바 있다. 당시 시험 기간이기 때문인지 학생들이나 학교 관계자들 모두 김씨의 자살 사건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 가운데 취재진의 눈에 띈 곳은 상담센터였다.

카이스트에는 총 네 명의 상담 전문가가 상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개인 심층 상담과 전화 상담을 포함한 업무를 소화하느라 몹시 분주한 모습이었다. 취재 당시만 해도 카이스트측은 불거지는 자살 문제로 인해 두 명의 상담 전문 인력을 더 보강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상황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4월8일 학교측에 상담 인력 보강에 관해 문의한 결과 ‘아직 추진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앞서 세 명의 학생이 자살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카이스트는 별다른 대책 마련 없이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 7일 박씨의 자살로 학교 내부에서도 학생들의 분노가 치솟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바로 서남표 총장의 개혁 시책을 전면적으로 뒤엎는 것이었다. 서총장은 지난 2006년 7월 부임한 후 학생들의 성적에 따른 차등 등록금제와  전 과목 영어 수업 등을 시행했다. 그동안 서총장의 시책은 학생들에게 학업 부담과 경쟁 스트레스를 안겨준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학교측, 차등 등록금제 사실상 폐지키로

▲ 4월8일 오후 카이스트 창의관 앞에서 한 학생이 서남표 총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4월6일 카이스트 학생식당 앞 게시판에 붙은 허 아무개씨의 대자보에는 ‘성적에 따른 차등 수업료와 실패를 용납 않는 재수강 제도 등이 학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학점 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어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다’라고 적혀 있다. 또, 이에 앞서 지난 4일부터 이 학교 새내기 이 아무개씨는 대학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학생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학교측은 성적에 따른 차등 등록금제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다. 카이스트의 서총장은 4월7일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 학기부터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에게 차등 부과하던 수업료를 8학기 동안은 면제해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단, 8학기 이내에 학부 과정을 마치지 못하면 현행 방침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지난 8일 카이스트 학부 총학생회 역시 이번 자살 사건과 관련해 서총장과의 간담회를 열었다.

최근 잇따른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에 대해 이홍식 연세대 정신과 교수는 “지금 카이스트에는 ‘자살의 전염병’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학생들을 보면서 모방 자살을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학생들과 같이 한 분야에만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정서적인 발달은 오히려 취약한 경우가 많다. 경쟁 위주로 몰아가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이나 스트레스, 열등감 등을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 아무리 우수한 과학자를 양성한다고 하더라도 그 바탕에 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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