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가 호출하면 거부 못한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6.15 05: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역 프로골퍼가 밝히는 ‘골프 로비’ 진상 / 신삼길 회장은 자사 선수 동원해 정·관계 인사들과 동반 라운딩 의혹

ⓒ시사저널 자료사진

‘골퍼 로비’까지 등장했다. 흔히 지금까지 알려졌던 ‘골프 로비’ ‘골프 접대’와는 또 다른 용어이다. 최근 삼화저축은행의 신삼길 회장이 자사 골프단의 프로골퍼들을 대동해 정·관계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신회장은 골프를 좋아하는 정·관계 인사들과 라운딩을 할 경우 삼화저축은행단 소속의 유명 프로골퍼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삼화저축은행은 지난 2006년 골프단을 창단했다. 골프계의 한 관계자는 “신회장은 골프에 대한 애착이 무척 컸다. 본인도 골프를 잘 쳤지만, 사람들과 골프 만남도 잦았다. 또 골프단 창단 이전부터 ‘골프 신동’이라고 불리던 김 아무개 선수를 후원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 과정에서 골프단 창단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흔히 골프 로비라고 하면,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이해찬 총리의 부산 ‘3·1절 골프 회동’과 현 정부 초기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의 경주 ‘성탄절 골프 회동’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로비가 필요한 쪽에서 골프장을 미리 부킹하고 로비 대상자들을 초청해 라운딩을 함께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 골퍼 접대이다. 라운딩에 프로골퍼들을 직접 부르는 경우이다. 골프를 통한 로비에 선수들이 실제 불려나가는 경우가 있을까. 취재 중 만났던 골프계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프로골퍼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선수는 “일부 톱클래스급 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선수는 스폰서(혹은 구단주) 앞에서는 약자이다. 스폰서가 부르면 선수 입장에서는 그 자리에 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후원사의 입김이 절대적이라는 얘기이다.

한 번 동반 라운딩에 수고비 100만원 이상

▲ 2007년 1월3일 열린 삼화저축은행 골프단 입단식. 가운데가 신삼길 회장이다. ⓒ시사저널 자료사진

골퍼에게 스폰서나 소속 구단은 매우 중요하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에서 경제적 안정은 성적과 직결된다. 국내 KPGA 투어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은 한 해에 보통 5천만~6천만원 정도이다. 자비로 출전하는 무적 선수와 후원 계약을 맺고 출전하는 선수 사이에 서로 다른 환경은 성적과 직결된다. 취재 중에 만난 한 프로골프 선수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지 않고서는 천재라고 불리던 선수도 스폰서가 없어 불안한 나머지 결국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기도 한다. 로고 없는 모자를 쓰고 경기에 나설 때가 가장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라고 말했다.

스폰서 관계를 맺은 뒤, 프로골퍼는 다양한 ‘프로암 이벤트’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스폰서가 주최하는 VIP 마케팅 행사가 대표적이다. 프로들은 아마추어 ‘큰손’ 고객들과 필드를 돌며 골프를 즐기고 때로는 원포인트 레슨도 해준다. 대표적인 경우가 금융권에서 고액 유치 고객을 대상으로 벌이는 이벤트인데, 이런 활동은 스폰서십 계약을 맺을 때 문구로 삽입되기도 한다. 한 프로 선수는 “최근에는 프로골퍼들만을 모은 소속사도 있는 것으로 안다. 프로골퍼들과 접촉면이 없는 기업의 이벤트에 소속 골퍼들을 보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형식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적인 호출이 있을 경우이다. 만약 후원사나 소속 구단이 사주가 운영하는 기업일 경우 이런 입김은 더욱 강한 편이라고 한다. 만일 스폰서가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접대할 일이 있을 경우 보통 손님 3~4명에 프로 선수 한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라운딩을 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프로 선수와의 동반 라운딩만큼 좋은 선물은 없다. ‘○○○ 선수랑 골프 쳤다’라는 것은 큰 자랑거리가 된다.

선수 입장에서도 경기에 영향만 없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한 프로 선수는 “월등하게 성적이 뛰어나다면 상관없다. 성적으로 후원사를 구하면 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성적만큼 중요한 것이 인맥이다. 필드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한 2세 경영자의 경우 파티에까지 자기 회사의 선수들을 대동한 사례도 보았다”라고 말했다.

선수도 동반 라운딩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얻는다. 보통 투어를 뛰는 프로 선수들의 경우 최하 100만원 이상의 수고비를 받는다. 때로는 부수입도 생긴다. 주최하는 쪽에서 참가자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내기 비용으로 쓰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달에 서너 번만 뛰면 수백만 원이 생겨서 이쪽 일을 주업으로 하는 프로도 있다.

삼화저축은행의 경우 일반적인 스폰서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구단 형식으로 운영했다. 선수들에게 연봉을 지급했고,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신회장은 자사의 골퍼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름만 걸어놓은 명목상 구단주가 아니라 창단 과정부터 선수 영입까지 직접 관여했고 선수들에게 불편 사항은 없는지 직접 체크했다고 한다. 전 삼화저축은행 소속이었던 한 선수는 “신회장은 선수들에게 더 잘해주려고 하는 스타일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소속 선수에 대한 영향력도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삼화저축 선수들 “나는 모르는 일” 답 꺼려

지난 1월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던 시점에 삼화와 계약을 맺고 있던 선수는 총 여덟 명이었다. 프로골프 투어 상금왕 출신인 강경남을 비롯해 남자 선수 다섯 명, 여자 선수 세 명이었다. 삼화저축은행이 2월 우리금융지주에 인수된 뒤 선수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 중 대다수는 소속팀을 옮겨 현역 선수로 활동 중인데, 그래서인지 골프를 통한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대부분 언론과의 접촉을 꺼렸고, 그나마 연락이 닿은 선수들도 자신들과 골프 로비는 무관하다고 항변했다.

ㄱ씨는 “골프는 개인 스포츠라서 같은 팀이라고 해도 다른 선수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알 수는 없다. 보도된 내용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ㄴ씨 역시 “삼화저축은행에 대한 보도는 많이 보았지만 왜 이런 기사가 나갔는지 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다. 혹시 있더라도 주변에 쉽게 말하겠느냐”라고 말했다. ㄷ씨는 “신회장에게 그런 지시를 전혀 받은 적이 없다. 경기 기간 중에 이런 의혹을 받았다면 경기력에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은 “골프 라운딩이 로비와 직결된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신회장이 대가성 있는 금품을 전달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이들의 골프 현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