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돈 뺏고…끔찍한 지옥살이
  • 박인호│데일리NK 대표 ()
  • 승인 2012.03.0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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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 북송되면 어떤 일들을 겪나

중국의 투먼 구류장에 있던 탈북자들은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의 국가보위부로 송환된다. 정면의 김일성 사진이 있는 건물이 남양역이며 왼쪽이 국가보위부 건물이다. 오른쪽은 남양세괸이다. ⓒ데일리 NK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들은 통상 짧게는 1주, 길게는 약 2개월 정도의 조사를 받고 북한으로 송환된다. 탈북자들을 상대로 중국 공안이 벌이는 조사는 기본적인 신원 확인부터 중국 입국 이후 체류 현황까지 다양하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사이 두만강 지역과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일대에 탈북자 체류가 늘어나자 중국은 탈북자 체포, 조사, 송환 업무의 편의를 위해 투먼에 탈북자만 임시 수용하는 시설을 짓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탈북자 북송 정책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투먼 구류장’이다. 탈북자들의 북송 루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압록강에서는 단둥-신의주 국경을 넘는 길이 대표적이고, 두만강에서는 투먼-남양 국경 다리를 건넌다. 일반적으로 지린 성, 헤이룽장 성 등에서 체류하다 체포된 탈북자들이 두만강을 넘어 송환되고, 랴오닝 성에서 체류했거나, 동북 3성을 벗어나 제3국행을 시도하다 체포된 탈북자들은 압록강을 넘어간다.

다만 이번에 선양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처럼 국제 사회가 송환 여부를 주목하게 될 경우에는 투먼 구류장에 일단 구금한 다음, 국제 여론이 조용해지면 남양으로 송환하는 수순을 밟는다. 중국 정부는 단둥-신의주의 경우 도시 자체가 개방적이고 외국 언론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탈북자 북송과 같은 민감한 사안을 처리하는 데는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송된 탈북자들은 일단 신의주나 남양에 위치한 보위부에서 신원 확인 등의 기초 조사를 받은 후 거주지 관할 보위부로 넘겨져 본격적인 조사를 받게 된다. 거주지 관할 보위부 조사에서 재판 없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낼 사람과 재판을 거쳐 교화소(교도소)로 보낼 사람을 분류하는데, 재판을 받게 되는 사람은 3년에서 9년 사이의 교화형(징역형)에 처해진다.

보위부 1차 조사 기간에 탈북자들의 탈북동기, 탈북 방법, 중국 체류 실태, 체포 경위 등에 대해 대략적인 ‘밑그림’이 그려지는데 이는 거주지 관할 보위부에 이송되어 본격적인 조사를 받을 때나 훗날 재판을 받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갈 때까지 매우 중대한‘증거 자료’로 평가된다.

북송 탈북자들이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게 되는 순간 그들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서류가 하나 있다. 바로 중국 공안이 작성한 탈북자들의 검거 기록이다. 한국행을 시도 하다가 체포되었거나, 종교 단체 활동가 및 외국 기자들과 함께 체포되었을 경우 중국 공안은 이같은 사실을 모두 기록에 남긴다. 북한에서는 탈북 자체가 ‘최고 지도자와 조국을 배반한 죄’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 종교, 기자 등의 연관어로 인해 단순 ‘배신자’가 순식간에 ‘간첩’으로 둔갑한다. 결국 탈북자들이 종교 단체나 외국 언론과 접촉을 했느냐가 가장 집중적인 논쟁거리인데, 대다수 탈북자가 중국에서 활동중인 종교 단체나 NGO(비정부 기구)의 도움을 받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피 말리는 조사가 이루어진다. 탈북자들은 가능한 한 자신의 중국 생활을 단순화시켜 진술하려 하고, 보위부 요원들은 이를 확대 해석해 죄를 부풀리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심각한 폭행과 폭언, 협박으로 얼룩진다.

탈북자들은 일단 신의주나 남양에서 1차 조사를 받을 때부터 엄청난 인권 유린을 겪는다. 이 단계에서는 탈북자들이 소지하고 있는 중국 돈이나 각종 소지품에 대한 보위부 요원들의 강탈이 눈에 띈다. 보위부 요원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른 ‘법 집행’ 외에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탈북자들을 과도하게 학대한다. ‘처음부터 기(氣)를 꺾어 놓아야 고분고분하다’는 식의 노하우가 나름으로 작동하는 셈인데, 탈북자들이 겁을 먹을수록 다루기가 좋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생 여기에 잡아다 둘 수도 있다”라는 황당한 거짓말로 탈북자들의 소지품을 챙기는 보위부 요원이 한둘이 아니다. 북한의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의 사유 재산은 모두 보호받게 되어 있지만 보위부 요원들은 각종 회유와 협박으로 탈북자들이 가지고 있는 현금·옷·장신구 등 소지품을 거의 대부분 빼앗는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자기 재산을 지키려는 탈북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탈북자들은 현금이나 귀금속에 대한 애착이 강한데, 이는 훗날 집결소나 교화소 등에서 간부들을 매수할 뇌물 밑천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거주지 관할 보위부에 이송되면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다. 북한에서는 피의자 조사를 ‘취급’이라고 부르는데, 이 취급 기간 탈북자들은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는 것으로 증언되고 있다. 관할 지역 보위부의 경우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 탈북하는 주민이 거의 없는 강원도·황해도 지역 보위부의 수사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판이 나 있다.

간첩 혐의 벗으려 손가락까지 자른 경우도 또한 뇌물이나 인맥을 동원해 처벌을 완화시키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함경북도나 양강도 국경 지역의 경우 탈북자도 많고 이들을 체포해 수사한 보위부 요원들도 워낙 많은 경험을 갖고 있어서 가장 극악한 인권 유린이 벌어지는 곳으로 지목된다. 이 지역에서 보위부 조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은 조사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자술서를 최소 8회 이상 써야 한다는 점, 구금 기간 내내 겪는 배고픔과 가혹 행위, 보위부 요원들의 폭행·폭언 등을 주요 인권 유린 실태로 꼽는다.

특히 자술서가 조금이라도 다를 경우 보위부 요원들의 폭행과 가혹 행위가 이어지는데, 이것이 탈북자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고통이다. 인천 계양에 거주하는 탈북자 김 아무개씨는 2009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북한 국경 경비에 체포되어 보위부 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다. 보위부 요원들은 김씨의 ‘자진 귀향’을 의심하며 ‘남조선 국정원의 사주를 받아 침투한 것’으로 몰고갔다.

그가 11번째 자술서를 쓰고 나서도 보위부 요원들의 매질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감방 취침 시간에 숟가락을 이용해 왼손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스스로 자르는 독한 선택을 했다.

탈북자들에 대한 보위부의 조사는 통상 2~4개월 정도 걸린다. 그러나 한국행을 시도했거나 종교 단체, 외국 언론과 접촉한 혐의가 있는 탈북자들의 경우 1년 이상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보위부는 먹는 것과 자는 것, 입는 것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보위부의 조사가 장기화될 경우 불구가 되거나 생명을 잃는 탈북자가 많다.

특히 보위부 구류장에서의 생활은 ‘휴식’이 아닌 ‘단련’의 연장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하루 종일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 하고, 취침 시간에도 마음대로 다리를 뻗거나 돌아누울 수 없다. 보위부 조사를 오래 받게 되면 집결소나 교화소에 가서도 크게 고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만큼 몸이 심하게 망가지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 전문가들은 ‘집결소’를 가장 극악한 인권 유린 현장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범 수용소나 교화소에서는 수형자들의 노동력을 중시해 오랫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계속 일을 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반면, 집결소는 재판이나 이감을 앞둔 수형자들이 임시로 머무르는 개념이기 때문에 “있을 때 최대한 이용해먹자”라는 인식이 간부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나 교화소로 이송되면 비로소 다른 수형자와 동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절도, 강도, 살인, 비사회주의 행위 등의 죄를 지은 일반 수형자에 비해서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동정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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