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둔다는 강제징용 피해자 할아버지 협박하면서 재판 이끌었죠”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11.09 14:12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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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제징용 소송 승소 이끈 김세은 변호사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

일본이 ‘한 방’ 먹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우리 대법원이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10월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범 기업 신일철주금이 이춘식 할아버지(98)를 비롯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05년 소가 제기된 지 13년 만의 결론이다.

강제징용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번 판결의 중심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연로한 피해 할아버지들과 20여 년간 소송을 이끈 주역이다. 고(故) 여운택·신철수 할아버지와는 1997년 일본 오사카 법원에 처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때부터 함께했고, 이춘식·고 김규수 할아버지와는 2005년 국내 소송 때부터 연을 이었다. 오랜 소송에 지친 할아버지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준 것이 그였다. 

 

10월30일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판결이 확정됐다. ⓒ 시사저널 최준필


법무법인 해마루도 빼놓을 수 없다. 해마루 소속 변호사들은 13년간 이어진 국내 소송에서 할아버지들의 법률 대리인으로서 모든 재판을 준비했다. 시작은 장완익 대표변호사와 김미경·장영석 변호사가 맡았지만, 마무리는 후배 변호사인 김세은·임재성 변호사가 했다. 최종 판결이 나온 날 이춘식 할아버지 옆에서 눈물을 글썽인 것도 후배 변호사들이었다.

역사적인 판결을 이끌어낸 이들은 어떻게 재판을 준비했을까. 11월5일 서울 서초구 해마루 회의실에서 김세은 변호사와 이희자 대표를 만났다. 지난한 세월을 함께한 이들은 90여 분 인터뷰 시간 동안 서로의 손을 붙잡고 동료애를 과시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괘씸한 일본 앞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13년 만에 나온 최종 판결이다. 오래 기다린 끝에 승소를 받아낸 기분이 어떠한가.

김세은 변호사(이하 김): 이제 시작이다. 이번 재판은 끝이 났지만 남은 사건들이 많다. 당장 이번 달에만 두 사건의 변론기일이 잡혔다. 예상컨대, 법원에서 인사이동을 하는 내년 2월 전에 관련 사건의 선고를 마무리 지으려는 것 같다. 하급심에서 정지돼 있던 재판들이 이제야 시작됐다. 정신없이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이하 이): 판결 이후 일본 반응을 보면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주 괘씸하다. 한 나라의 대사를 불러다가 무슨 죄인 다루듯이 혼을 냈다. 아베 총리까지 나서서 비난을 퍼붓더라. 이춘식 할아버지도 굉장히 뿔이 났다. 너무 무리해서 몸살도 걸렸다.

일본의 반발이 이렇게 거센데, 할아버지들이 위자료 1억원을 실제 받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신일철주금은 위자료를 주고 싶어 한다. 과거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니까. 기업이 할아버지들을 강제 노동시켰다는 역사는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저렇게 막는다.

신일철주금이 위자료를 주고 싶어 한단 근거는.

일본에서 재판을 지원하던 사람들 중에 신일철주금의 주주가 된 사람들이 있다. 2012년 주주총회 때 이 사람들이 임원들에게 질문했다. 한국 재판에서 신일철주금이 패소하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당시 임원들은 확정된다면 그에 따라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정부에선 강하게 반발하면서 기업들에 임의로 배상금을 지급하지 말고 사과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상황이 이런 터라, 일본 기업 측에선 내심 지급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에 반해서 협상에 나아가진 못할 것 같다.

그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서 해결해야겠다.

우리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관할권 자체가 생기지 않아서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 일단 ICJ에 제소하면 정부와 정부 사이의 분쟁이 되기 때문에 우리 손을 떠나게 된다. 전문가들 의견도 나뉜다. 일각에선 사실관계 자체가 일본에 불리하기 때문에 제소하는 게 낫다고 보는데, 국제사회에선 우리나라와 일본의 협상력에 수준 차가 크니까 무리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일본과의 외교와는 별개로, 국내에서 합의가 필요한 것이 있다. 이 사건은 단 4명에 대한 판결이지만, 사실 그 의미는 20만 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전부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각자 소를 제기해서 권리 청구를 하게 할 것인지, 정부 차원에서 절차를 거쳐 구제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향후 재판은 어떻게 예상하나.

긍정적이다. 보통 동일한 쟁점을 갖고 있는 사건이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이 나면 대법원에 계류 중이던 다른 사건들도 빠른 시일 내에 취지에 맞게 선고가 내려진다. 개별 사건별로 소멸시효라든지 다른 쟁점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재판 준비 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없었나.

영화 한 편 찍었다. 좌절과 희망과 고통을 넘나들었다. 신일철주금 관련 재판은 1997년 일본 오사카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이제야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지 일본에선 매번 패소했다. 기력 없는 어르신들이 법정에서 기각당할 때마다 얼마나 축 늘어지던지. 그러다가도 옆에서 힘내라고 응원하면 끝까지 싸워본다고 했었다. 기복이 가장 심했던 분이 여운택 할아버지였다. 심지어 나 모르게 해마루까지 찾아와서 재판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만큼 재판을 견뎌내기 힘드셨단 거다. 할아버지만을 위해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냐고 설득했다. ‘진짜 안 해요?’ 거의 협박하듯 이끌었다.​ 위임장에 기어코 도장을 안 찍어준다고 했는데, 마감일 아침에 도장을 가지고 왔다. 밀당(밀고 당기기)의 고수였다.

 

ⓒ 시사저널 임준선


반복되는 희망과 좌절 속 어쩔 수 없던 ‘밀당’

할아버지들이 대부분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다른 할아버지들께는 알리지 않는다. 다음엔 내 차례구나, 이렇게 마음 아파하고 실망하니까. 이번에 이춘식 할아버지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당일에 혼자가 됐다는 걸 알았다. 여운택 어르신은 2013년 12월에, 신천수 어르신은 다음 해에 돌아가셨는데, 신천수 어르신은 여운택 어르신이 돌아가신 것도 알지 못한 채 운명했다.

이 대표는 해마루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내가 매달렸다. 1997년도에 일본에서 강제징용 관련 법률가들 모임에 피해자 대표로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때 장완익 변호사를 만났다(장완익 변호사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장에 선출되면서 해마루에서 잠시 떠나 있다). 내 아버지도 강제징용 피해자 중 한 명이라서 기록을 찾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막상 해 보니 이건 유가족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법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그래서 장 변호사에게 읍소했다. 법 좀 만들어 달라고(2004년 통과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안’).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이후 재판도 전부 장 변호사가 맡았다. 장 변호사가 없었다면 재판에서 이기기 힘들었을 거다. 이제야 하는 말인데, 혹시나 재판이 안 좋게 끝났으면 장 변호사 얼굴 다신 못 볼 뻔했다(웃음).

오랜 기간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내가 한 살 때 아버지가 중국으로 강제징용돼 떠났다. 그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었던 그 옛날, 할머니는 나와 내 엄마가 복이 없어서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구박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내가 딸이라고 차별했을까. 그게 궁금했다. 나는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핏줄을 이은 딸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피해 할아버지들이 곧 내 아버지라는 생각으로 도왔다. 일본 앞에서 무너지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겠다는 다짐. 이 두 개가 전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청와대·외교부가 재판거래를 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사법농단이 없었다면 이번 판결도 더 일찍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허망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정부가 피해자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깨고 있다. 수십 년의 아픔을 가진 피해자를 두고 어떻게 그런 일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라더라.

걱정된다. 이번 판결이 큰 의미를 가지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피해자들에게 1억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판결은 아니다. 그 차이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데, 무작정 피해자들을 모아서 이기게 해 주겠다고 하는 건 선동에 불과하다. 나는 여태껏 소송하면서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고 올 수 있었다. 피해자를 가지고 장난질하면 안 된다. 혹시라도 이권이 개입할 생각 말라. 정말 너무 화가 난다.

소송한다면서 피해자를 모아 돈 받을까봐 우려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정부가 공익소송을 통해 피해구제를 해 주겠다고 나서지 않는다면, 개별 법무법인이 사건을 맡아서 수행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한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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