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포로에서 일본 민중의 성녀가 된 ‘조선 소녀’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6 10:43
  • 호수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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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넘어 자신의 삶 기록한 안병호·장상인의 《오타 줄리아》

세상에는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에로스와 죽음의 욕구인 타나토스가 공존한다고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갈파했다. 동아시아에는 에로스의 시간도 많지만 타나토스의 시간도 많다. 중국사는 수많은 학살을 통해 왕조가 바뀌는 처절한 역사였다. 이민족에 의해 벌어진 일도 있다. 일본이 한반도를 유린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나 여진족의 병자호란도 그렇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민족이 한 민족 속에 들어가 생명을 살리는 에로스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왕자라는 신분을 버리고 당나라에 들어가 지장보살의 화신이 된 김교각 스님이나 전쟁에서 평화의 상징이 된 나이팅게일 같은 이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처절한 일본의 한반도 학살 과정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꽃 같은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온 안병호(안토니오) 작가와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수필가로 활동하는 장상인 작가가 소개하는 오타 줄리아도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다. 장상인 작가를 만나, 이 책의 출간 배경을 들어봤다.

 

《오타 줄리아》 장상인, 안병호 안토니오 지음·이른아침 펴냄·268쪽·1만5000원 ⓒ 조창완 제공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아

10년 전 표성흠 작가의 소설 《오다 쥬리아》의 다큐멘터리 버전에 가까운 이번 책의 첫 장에 북한에서 천주신앙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여인에게 보낸다는 말이 있다. 어떤 계기로 이렇게 시작했을까?

“요즈음, 미국이 북한의 핵(核)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미국은 북한의 인권 문제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고 안병호 작가는 생각하더군요. 그래서 평양성에서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오타 줄리아’와 같은 여인이 북한에도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정 인물이 아닌, 평범한 북한의 한 여인을 지칭한 것입니다. 교황께서 북한에 가실 때 신자가 있는지를 보는 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오타 줄리아는 앞서 말한 일본군에 의한 무차별한 죽음이 상존하던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끌려간 한 소녀의 이야기다. 당시 다섯 살가량으로 추정되는 소녀는 왜군의 제1군 선봉장이자 크리스천 무장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 의해 일본으로 보내진다. 소녀는 의학에 대한 소질로 병든 고니시의 부인을 고친 후 모녀처럼 지내다가 서양인 신부에 의해 세례를 받는다.

그러나 급박한 정세 변화로 그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川家康)의 궁으로 넘어가서 역시 의녀(醫女)로서의 일을 하면서 지낸다. 이에야스는 그녀에게 결혼을 요구하지만 정절과 신앙을 지키다가 머나먼 섬으로 유배되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후 가장 낮은 민중들 속에 들어간 줄리아는 열성적으로 전교 활동을 하다가 체포돼 재판을 받고 추방되는 등 신앙인으로서의 고귀한 삶을 지속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천주의 품에 안겼다. 작가들은 왜 그녀를 한국에 다시 소개했을까.

“소설 《대망》 등으로 알려졌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일본을 세운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 앞에서도 오타 줄리아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종교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가톨릭이라는 특정 종교에 갇혀 있는 오타 줄리아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특정 신앙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앞은 안병호 작가가 오타 줄리아 삶을 정리했고, 뒤에는 장상인 작가가 일본 답사 길에 만난 오타 줄리아의 흔적을 정리했다. 그녀의 흔적은 일본에 어느 정도 있을까.

“유적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도쿄도(東京都)의 고즈시마(神津島)입니다. 도쿄에서 178km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이지요. 2008년 이전부터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습니다. 누구의 요청이 아닌 스스로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또 하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슨푸(駿府)성이 있던 지금의 시즈오카(靜岡)에 있는 정토종계 사찰 호다이인(寶台院)에서 ‘기리시탄(크리스천의 일본식 발음) 석등’을 직접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2층 형태로 만들어진 이 석등의 아랫단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 부분이 당시에는 땅에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석등을 만든 사람은 전국시대의 무장으로 유명한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입니다. 사실 유적보다는 많은 서양 선교사의 글에 오타 줄리아가 수차례 소개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4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한국인 소녀에서 성녀가 된 오타 줄리아는 어떤 모습일까. “오타 줄리아가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어려운 민중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고즈시마입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5월 셋째 주말 오타 줄리아 제(祭)가 열립니다. 모두가 일본 사람들인데, 자발적으로 참가합니다. 병든 육체도 치유해 준다는 것을 넘어 믿음의 상징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 내 한국 인물 발굴 끝나지 않았다”

오타 줄리아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뮤지컬 버전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뮤지컬 오타 줄리아의 한국 공연도 가능합니다. 오타 줄리아를 공연한 극단을 만났는데, 규모도 아주 큽니다. 최근 배상 문제로 골이 커지고 있는데, 이런 뮤지컬이 상연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한·일 합작으로 하면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일본 문화 전문가인 장상인 작가의 일본 내 인물 발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타 줄리아 같은 피로인(被虜人)들 가운데, ‘권 비센떼라’는 조선인이 있었습니다. 한양 출신의 양반 자제로, 1593년 13세의 나이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포로가 됐습니다. 그는 서양인으로 조선 땅을 최초로 밟은 세스페데스 신부에 의해 일본으로 갔습니다. 교토신학교를 거쳐 1603년부터 예수회 수사가 되어 전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천주교 탄압을 피해 나가사키의 시마바라(島原)에 숨어 지내면서 일본인 및 조선인들을 전도했습니다. 1625년에 체포돼 그다음 해인 6월20일, 소라 신부 및 바체코 신부 등과 함께 순교(화형)했습니다. 이런 분들의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 제 소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음 작업도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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