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운명 가른 문화 수용,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4 14:30
  • 호수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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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으로 일본·유럽 문화 전문가인 조용준 작가의 새 책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 기간 일본과 유럽 문화 읽기에 집중한 조용준 작가의 새 책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는 조선 중기부터 우리와 일본의 다른 문화 수용 과정을 통해 스스로 나라의 운명을 바꾼 키워드들을 찾아가는 드문 저작이다. 그를 만나 이 책의 출간 배경을 들어봤다. 책의 시작은 일본이 유럽인과 처음 만났던 1543년이다. 메이지 유신 325년 전이고, 조선은 중종 37년일 때다. 그해 8월 명나라에 있던 포르투갈 배가 일본 규슈 남단 다네가시마(種子島)에 떠밀려온다. 이 배에는 100여 명의 선원과 화승총 등 서양식 무기가 실려 있었다. 이곳의 도주 도키타카는 이 무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현재 시세로 수억원에 달하는 2000냥을 주고 이 무기를 구입하고, 화약도 제조해 자기화한다. 이런 무기는 결국 조총 등 일본식 신무기가 되고, 임진왜란 등에서 일본의 주력 화기가 된다. 임진왜란 등을 겪고도 체계적인 무기 체계를 세우지 못한 조선에 비해 일본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일본은 해양국가였고, 조선은 대륙국가, 그것도 매우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대륙국가였습니다. 15세기부터 대항해 시대가 전개되면서 신문물은 대륙이 아닌 바다에서부터 왔는데, 조선은 그 흐름에서 완전히 차단돼 있었고, 스스로 차단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오랜 기간 전국시대를 거치며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본능의 DNA가 매우 발달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이 서양문물로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이 총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 총에 의한 무력이 결국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 조용준 지음|도도 펴냄|592쪽|2만6000원 ⓒ 조창완 제공

 

무기 체계 못 세운 조선, 일본과 무엇이 달랐나

이렇게 시작된 일본과 서양의 만남은 무기뿐만 아니라 가톨릭 같은 종교나 수많은 과학, 사상 등도 포함된다. 상대적으로 무기는 환영했지만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5년에 실시한 ‘바테렌 추방령’처럼 종교는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이런 기조는 수없이 반복됐다. 지금도 일본에서 이방의 종교는 큰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자생적인 사상과 철학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원시적 샤머니즘과 불교문화가 결합된 상태에서 근대 서양문화가 들어와 근대국가를 이루었습니다. 18세기 이후 국학(國學)이 발달하면서 그들의 고전 만들기에 몰두하면서 ‘야마토 다마시이(大和魂)’를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상황론에 의해 현실과 이익에 충실한 ‘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야마토 다마시이가 ‘닛폰 다마시이(日本魂)’로 변질돼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하고, 조선과 아시아 침략의 근간이 됐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이런 일본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임진왜란이나 경술국치 같은 위기를 만났다.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모한 일본과 달랐던 것이다. 우리 도자기 문화를 깊이 연구해 관련 저작도 출간한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일본 근대화의 큰 기틀에는 한국에서 가져간 자기 문화가 자리한다”고 봤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당시 실록을 보면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제기가 없어 전국에 제기를 올리라는 징발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도자기 산업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임진왜란은 한 나라 산업 기반을 통째로 도둑맞은 인류 전쟁사에서 둘도 없는 노략질 전쟁이었습니다.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원들을 적극 활용해 서구에 눈을 뜬 것과는 정반대인데, 이 점이 큰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근대 들어 두 나라는 더 큰 인식 차이가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문화를 받아 변혁을 시도했다. 바쿠후(막부) 시대를 떨치고, 근대국가가 됐다. 반면 조선은 쇄국을 고집하다가 무너졌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메이지 유신은 거창한 철학과 사상에 기초한 운동이 아니라, 오로지 살아남아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쿠데타에서 출발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것도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총과 대포, 군함 등 무기의 우수함에서 기인한 무력의 승리였습니다. 다시 말해 에도 막부보다 무기가 우수하지 않았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하극상 쿠데타였는데, 운 좋게도 영국 무기상 글로버와 손이 닿아 밀무역으로 우수한 총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무라이들에 의한 쿠데타로 출발한 메이지 유신 정권이었기에, 이들 후손들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의 일본도 옛 군벌(軍閥)의 정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필자는 사카모토 료마 등 사람 중심보다는, 맥락으로 메이지 유신을 이해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은 쇄국이 이어졌고, 민중 수준에서 동학이라는 흐름도 있었다. 반면 일본은 주체적 사상 흐름이 없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선택했다. 자민당 독주라는 상황과 미래에 대한 답답함이 보인다. 일본 관찰자로서 일본에 메이지 유신 같은 변화는 없을까.

“일본은 1989년 아키히토(明仁) 왕이 등장하며 헤이세이(平成)라는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일본이 진정한 평화를 이뤘나요? 일본의 시민들과 지성인들은 아시아의 평화를 원하지만, 집권층과 보수세력이 여전히 예전 군국주의 망령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자민당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일본의 변화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고, 아시아에서 갈등의 진원지로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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