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⑧] 예능계 뒤흔든 ‘이영자 대활약’ 비결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1 14:10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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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분야] 2018 예능 키워드…이영자·박나래·송은이·김숙 등 여성 예능인의 귀환

예능계 2018년 이슈 중 하나는 여성의 반격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서 관찰 예능 시대로 넘어온 최근 몇 년간 예능에선 여성들이 사라져갔다. ‘남성과 아저씨’의 전성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경규의 예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경규 본인도 KBS 《남자의 자격》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 이후 강도를 높여가는 자극성과 가학성이 체력 약한 여성들에겐 불리했다. 영하의 날씨에 야외에서 잠을 자며 온갖 험한 일에 도전한다든가, 아주 힘든 벌칙을 수행한다든가, 극한 스포츠 또는 오지탐험까지 나서는 상황에서 여성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리얼리티 관찰 예능에서 꾸미지 않은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일상에서의 망가짐을 드러내는 설정은 남성들에게 유리했다. 시원시원하게 많은 양을 빨리 먹어야 사랑받는 먹방 코드 역시 대식가 남성들에게 수월한 성정이었다.

이런 이유로 여성들은 한동안 밀려났다. 하지만 반격이 시작됐다. MBC 연예대상 후보에 이영자·박나래 등이 오를 정도로 여풍(女風)이 일었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선 여성주의 목소리가 거셌다. 미투운동,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공분과 함께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남성 위주 예능에 대한 식상함과 맞물려 여성들이 약진할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때 이영자·박나래와 같은 준비된 여성 예능인들이 ‘굴기’했다.

이영자의 귀환이 가장 화려했다. 이영자는 199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2001년 구설 이후 고난의 시기를 겪었고 MC로서 명맥은 이어갔지만 핫한 스타는 아니었다. 그랬던 것이 올해 한때 예능인 브랜드 평판 1위에까지 오르며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출연으로 벌어진 일이다.


ⓒ 시사저널 박정훈


 

먹방 끝판왕 이영자의 귀환과 자기 몸 긍정주의

먹방, 쿡방 등 음식 방송 열풍이 거세게 일었지만 이영자는 소외됐다. 관찰 예능하고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이 이영자를 관찰 대상으로 선정하자마자 이영자는 순식간에 ‘먹방 끝판왕’으로 폭주했다. 이영자의 진정성 있는 음식 내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방송을 위한 설정이나 작가의 자료 조사가 아니라, 전국의 행사 무대를 다니며 그녀 스스로 축적해 온 맛집 정보들이 대방출됐다. 유명 셰프의 화려한 음식이 아닌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메뉴들이었기 때문에 더 큰 반향이 나타났다. 이영자의 한마디에 고속도로 휴게소와 음식점들의 매출이 춤을 추고, ‘소떡소떡’ 같은 대형 히트 메뉴들이 생겨났다. 이영자가 매니저에게 베푸는 푸근한 인정의 모습도 사람들에게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시대 흐름하고도 맞물렸다. 최근 여성주의 흐름과 함께 탈코르셋, 자기 몸 긍정주의가 대두됐다. 그동안 남성들의 시선에 맞추어 자기 몸을 깎아내느라 고통을 겪던 여성들이 이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흐름과 맞물려 이영자의 인기가 하나의 현상이 됐다. 그녀가 방송 중에 수영복 입은 모습을 흔쾌히 공개하거나, 몸매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식을 향유하는 모습이 여성들에게 ‘당당한 언니’로 비쳤다.

박나래도 자신의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자기 몸 긍정주의 대열에 섰다. 예능에서 여성들이 예쁜 모습을 지키느라 답답한 모습일 때가 있었는데, 박나래는 그런 틀을 탈피해 시원시원하게 망가졌다. 인간 복사기 수준의 유명인 모사 분장으로 프로정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하여 박나래도 ‘멋진 언니’가 됐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출연으로 2018년 예능계를 점령한 이영자 ⓒ MBC 캡쳐

 

사회 흐름을 공부해야 하는 시대

송은이도 2018년 빛났다. 기혼 여성 예능인은 가족 관련 프로그램에라도 나오지만 자신과 같은 비혼 여성에겐 기회가 없는 현실에서 그녀는 방송국 바깥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했다. 팟캐스트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함께 설 자리를 잃은 김숙을 소환해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한 코너였던 ‘김생민의 영수증’이 2017년에 뜨며 송은이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2018년에도 그녀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 Olive 《밥블레스유》,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웹예능 《판벌려(판을 벌이는 여자들)》 등에서 활약을 이어갔다. 특히 송은이가 기획하고 이영자가 출연한 《밥블레스유》는 여성들만의 예능이어서 남성들 예능 속 의미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송은이는 일반적인 예능인과 다른 스타일로도 호평받는다. 보통은 자신이 튀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송은이는 주변 사람들의 장점을 소개해 주려 애쓴다는 느낌이다. 자신이 나서기보다 전체 흐름을 챙기는 정도로 역할하면서 남이 나설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송은이가 방송사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길을 개척하면서 제작자·기획자로서의 성격이 강해진 것과 이런 진행 스타일이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성들을 밀어낸 예능 환경이 송은이로 하여금 제작자가 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의 여성주의 시대에 빛을 발한 것이다.

‘쑥크러시’ 김숙도 2017년에 이어 꾸준히 인기를 모았다. 김숙은 그전부터 《무한걸스》 《언니들의 슬램덩크》와 같은 여성 중심 예능에 연이어 출연하며 존재감을 이어왔는데, 거기에 ‘쑥크러시’로 멋진 언니 캐릭터까지 더해져 2018년 빛을 발했다. Olive 《밥블레스유》,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 EBS 《배워서 남불랩》, JTBC 《랜선라이프-크리에이터가 사는 법》, tvN 《주말 사용 설명서》 등에 출연하며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광고계에서도 엠버가 자기 몸 긍정주의 스타일로 출연하며 “다른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제 몸을 창피하다고 여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MBC 아침뉴스의 임현주 아나운서는 지상파 여성 아나운서 최초로 안경 쓰고 정규 뉴스를 진행해 탈코르셋 흐름을 이끌었다. 가수 에일리는 “몸무게 49kg 시절, 보기에 좋았지만 제일 우울했다”며 “이제 체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 몸을 사랑한다”고 말해 큰 반향이 일었다.

김숙은 “개그의 흐름이 달라졌다.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처럼 약자를 비하하고 차별적 편견을 드러내거나 1차원적 코미디로는 사랑받기 힘드니 시대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흐름이 지금은 여성주의로 나타난다. 오랜 침체기 끝에 여성 예능의 반격은 이제 막 시작이다. 여성들의 자각이라는 시대 흐름과 맞물려 여성 예능인의 활약도 더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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